성경이 말하는 행복
성경이 말하는 행복이란 무엇인가?
배우는 자의 기도/소고(小考)
2015-01-07 20:32:32
새해가 되면 너나 없이 주고 받는 인사가 온통 복많이 받으라는 인사이다. 복을 받는다는 말은 복을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고 누군가가 주어야 한다는 말 아닌가?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디서 그런 복 받기를 기대하는 것일까? 또 사람들이 받기를 원하는 복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재물, 건강, 각자의 소원성취 등등 다양할 것이다. 그런데 정말 우리는 복이 무엇인지 알고 있을까? 재물이나 건강이나 개인적인 소원 성취 이런 것이 정말 복이되는 것일까? 사람들이 복받기를 바라는 것은 그 복이 자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것이라면 그것은 복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재물, 건강, 소원성취 이런 것이 정말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는 것일까? 누구나 행복하기를 바라지만 문제는 행복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이고 또 어떻게 행복해지는건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행복에 대한 이 두가지 무지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을 행복을 추구한다. 인간 존재의 비참함이 이런 것이 아닐까? 목적지도 모르고 그 목적지에 가는 길도 모른체 무작정 길을 떠난 사람들..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인생이 어디있단 말인가? 그러나 너나 할 것없이 우리 인생 모두가 그런 것임을 누가 부정할 수 있으랴?
성경은 복에 대하여 많이 말한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복은 무엇인가? 성경은 복이 무엇이라고 복 자체에 대하여 설명하기 보다는 복을 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에 대하여 말한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복이란 곧 삶으로 나타나는 것이며 복을 받은 자의 삶은 그렇지 않은 자의 삶과 다른 특징이 있음을 강조한다. 복에 대한 대표적인 구절은 구약에서는 "복있는 자"라는 말로 시작되는 시편 1편이고 신약에서는 역시 "복있는 자"라는 말로 시작되는 산상수훈의 팔복일 것이다. 시편 1편에서는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자라고 규정한다. 그런데 이렇게 율법을 즐거워하는 자의 삶의 모습은 어떠한가? 그는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 왜 그런가?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살기 때문이다. 두번째 삶의 모습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서 열매를 맺고 그 입사귀가 마르지 않는 것처럼 그가 하는 모든 일이 형통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왜 그가 하는 일이 모두 형통한 것인가? 그것은 그가 하는 모든 일이란 당연히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결론적으로 시편 1편이 말하는 복있는 자의 삶이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따라서 행하는 삶인 것이다. 그러니까 시편은 율법을 떠나서는 복이 없다는 것이고 당연히 행복도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경은 율법이 사람의 행복을 좌우하는 중대한 기준이 된다고 말하는 셈인데 도대체 왜 그런걸까? 여호와의 율법과 사람의 행복이 무슨 관계가 있다는 말인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먼저 대답해야 한다. 성경의 대답은 간단하다. 사람은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존재라는 것이다. 이 말은 사람은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떠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 왜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는 의미이다. 그러니까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만 자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존재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성경은 하나님은 사람뿐 아니라 다른 모든 만물도 다 지으셨는데 유독 사람만은 하나님과 닮은 꼴로 특별하게 지으셨다고 말하다는 점이다.
성경은 사람은 하나님과 닮은 꼴로 지어진 특별한 존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사람이 도대체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성경의 명쾌한 대답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이어지는 질문은 왜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셨고 또 자기를 닮은 존재로 특별하게 지으셨는가? 라는 점일 것이다. 이 질문에도 성경의 대답은 망서림이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신 목적은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는 것이라고 대답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과 사람의 행복이 무슨 관계에 있는지를 발견하게 된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율법이란 바로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할 하나님의 뜻인 것이다. 사람이 이 율법에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닮은 꼴로 지으신 이유이다. 그러니 여호와의 율법을 떠나서는 사람은 자기 존재 목적을 상실하게 되는 것인 셈이니, 존재 목적을 상실한다면 무슨 복이니 행복이니 하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는가? 그래서 시편 1편은 복있는 자는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대로 행하는 자라고 한 것이다.
그 다음은 산상수훈의 첫머리를 여는 그 유명한 팔복에 대해 생각해보자. 팔복에서 말하는 복이란 무엇인가? 팔복 역시 복에 대해 말하는 방식이 시편 1편과 유사하다. 즉 복이 무엇이라고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복이 있는 자의 삶의 모습 혹은 특성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들이 여덟가지로 예시되어 있는고로 흔히 팔폭이라고 부른 것인데 그러나 이것이 여덟가지의 서로 다른 복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복이 다양한 특성듫로 나타날 수 있음을 의미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 열거된 복있는 자의 특성은 상식적인 복과는 판이하거나 심지어는 그 반대인 점이 놀랍다. 가난하다든지 애통하다든지 심지어 박해를 받는 것이 특히 그러하다. 그런데 이렇게 다양하게 열거된 복들의 공통점은 그것이 모두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서 사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삶의 모습들이라는 점이다. 결국 산상수훈의 팔복의 메시지도 시편 1편이 말하는 복과 다른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서 사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팔복의 교훈은 천국이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라고 결론짓는다.
하나님은 사람을 자기 닮은 꼴로 특별하게 지으셨다. 그리고 그렇게 지으신 목적은 사람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뜻이 사람을 통하여 이루어지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인간 존재의 이유와 목적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뜻인 율법을 떠나서는 사람은 그 존재 목적을 상실하고 존재 이유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니 하물며 행복이야 말해 무엇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