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별로 본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들- 김원호
세대별로 본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들- 김원호
2014-10-04 01:15:55
세대별로 본 한국교회의 성장 동력들
김원호
이번 강좌에서는 한국교회가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급속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는지를 역사적 상황 가운데서의 성장 동력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 이를 토대로 하여 현재의 한국교회가 해결하여야 할 당면 과제들과 이에 대한 해결책이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적 판단에 의한 것이지만 이에 대한 편리성을 위하여 한국의 역사 속의 개신교 세대들을 다음과 같이 4세대로 분류하였다.
1세대: 한국에 개신교 선교사들의 정착과 더불어 일제 강점기를 경험한 세대
2세대: 해방과 6.25를 경험한 세대
3세대: 6.25가 끝난 후 베이비 붐과 더불어 급속한 경제성장의 소용돌이 가운데에서 70년대와 80년대에 청년기를 보낸 흔히 말하는 7080 세대들
4세대: SNS의 발달과 더불어 성장한 세대로 주로 198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
1. 세대별 특징과 성장 동력들
A. 1세대
a. 국권의 상실로 인한 전통적 배타성의 상실
한민족이 역사상 처음으로 일제의 식민지 통치 하에 놓이게 되면서 이조 5백년의 전통 가운데 깊숙이 뿌리를 내렸던 유교의 기반이 무너지고 청나라마저도 일본에 패배함으로 인하여 조선은 개신교 선교사들에 의하여 새롭게 전파되는 기독교 문화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또한 그들의 선교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 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처하게 되었다.
평양을 중심으로 조선을 뜨겁게 달구었던 부흥의 물결이 개신교가 조선에 전파 된지 불과 20년만의 일이었다는 사실은 개신교보다도 100년 일찍 조선에 들어온 천주교가 수많은 희생자들을 내고도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하였던 배타적이었던 상황과는 대조를 이루고 있다.
b. 전통 문화의 붕괴와 민족 문화의 중심에 선 개신교
일본에 의하여 실질적 지배를 받았던 반세기의 기간은 조선에 뿌리 깊게 자리를 잡고 있었던 유교 중심의 문화를 대신하여 기독교 문화가 자리를 잡기에는 어느 정도 충분한 기간이었다. 선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세워진 신식 학교와 병원들과 고아원들이 조선의 새로운 문화를 형성하는 기반이 되었고 나라를 잃어버린 조선에게 개신교의 천국 사상은 새로운 희망의 돌파구가 되었고 개신교는 유교 대신에 한민족을 상징하는 민족의 구심체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c. 교회 중심의 디아스포라 한국인
조국을 잃어버린 한민족은 타국으로의 유랑생활을 시작하면서 지역 연고로 현민회를 형성하였던 일본과 혈연관계로 종친회를 형성하였던 중국과는 달리 비록 짧은 역사임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민족의 공동체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조국에 대한 그리움 가운데 민족의 정체성을 유지하고자 만들었던 회당문화와 많은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형성된 한인교회는 후에 유학생과 선교사들에게 많은 도움을 제공해 주면서 한국교회가 선교 대국으로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기반이 되었다.
B. 2세대
a. 6.25와 실향, 지역적 배타성의 상실
6.25 전쟁은 우리 민족으로서는 커다란 비극이었지만 한편으로는 지역적 배타성을 제거하여 각 지역에 교회가 좀 더 원활하게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하였다. 어느 지역이나 나름대로의 배타성으로 인해서 외부의 새로운 문화가 지역에 뿌리를 내리기가 쉽지만은 않다. 6.25 전쟁은 각 지역이 본래부터 가지고 있었던 지역의 배타적 특성을 없애고 다른 지역의 문화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함으로서 실향의 고통을 짊어진 기독교인들이 자연스럽게 다른 지역 사회에서 신앙의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여건을 형성해 주었다.
b. 실향의 고통과 교회의 건립
6.25 전쟁을 통하여 평생 이별과 실향의 고통을 짊어지고 가야만 했던 실향민들에게 교회는 유일한 위로와 희망이 되었다. 부흥을 경험하며 한국 기독교의 뿌리를 형성하였던 이북지역의 실향민들은 남한 지역 전반에 걸쳐서 교회를 건립하며 실향의 고통을 견디어 낼 수 있었다. 실향민들이 남한에 건립하였던 교회의 특성은 디아스포라 한국인들이 한인교회를 건립하였던 것과 어느 정도는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c. 실향민들의 천국사상
일제 강점기를 보냈던 1세대와 마찬가지로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겪은 2세대에게 교회가 호소력이 있었던 것은 현세의 절망적인 상황을 위로 받을 수 있는 천국이라는 내세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실 도피적인 내세관은 한국교회의 특징적 뿌리를 형성하며 현실 문화와 밀접한 관계 가운데 형성되어가는 서구 기독교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C. 3세대
a. 베이비 붐에 의한 급속한 인구증가
마치 하나님께서 한국 교회의 부흥을 작정이라도 하셨듯이 1,2 세대를 통하여 어느 정도 안정적 기반이 형성된 한국교회는 자녀들의 양산이라는 베이비 붐을 통하여 모태 신앙을 가진 이들로 가득히 채워지기 시작하면서 부흥의 급물살을 타게 되었다.
b. 높은 교육 열
일본의 지배 하에서 힘이 없어 나라를 잃어버렸던 서러움과 전쟁을 통하여 경험한 가난은 경제 발전과 더불어 높은 교육열이라는 형태로 나타났다. 이러한 경제성장과 교육열은 교회당을 건축하며 목회자에 대한 높은 관심도 갖게 되며 신학교에도 많은 이들이 지원하는 분위기로 이어지며 신학교의 확대 발전에 커다란 역할을 하였다.
c. 급속한 도시화
농촌 인구의 급속한 도시 유입은 도시의 교회가 성장할 수 있는 커다란 기폭제가 되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공동체성을 가지고 있기에 마땅한 공동체가 형성되어있지 않았던 도시에서 교회가 공동체의 구심체가 되는 역할을 함으로서 도시로 유입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교회 공동체의 일원이 될 수 있었고 이로 인하여 도시의 교회들은 급속한 양적 성장을 이룰 수가 있었다.
d. 교회 간의 빈부격차
급격한 도시화로 인한 인구의 이동으로 인하여 농어촌 교회는 항상 힘써서 양육한 교인들을 도시로 떠나보내야만 했고 도시 교회는 이미 잘 양육 되어진 교인들로 인하여 교회의 기반을 비교적 쉽게 세울 수가 있었다. 이러한 일방 통행적 현상은 농어촌 목회자의 피해 의식과 도시 교회 목회자의 불편한 상황을 연출케 하여 교회 간에 빈부의 격차를 더욱 가속화 시키면서 교회의 체질을 건강하지 못하게 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D. 4세대
a. 저출신에 의한 교인 수의 감소와 교회의 변화
베이비 붐에 의하여 모태 신앙을 가진 3세대들이 교회를 가득 채울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4세대에 이르러서는 정반대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이미 증가의 가속이 붙은 목회자와 교회 수에 비하여 출산 감소로 인한 교인 수의 급감은 교회의 다변화의 계기가 되고 있으며 교회의 선교 사역의 확대와 더불어 사회 영역에의 참여로 인한 교회 성격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었다.
b. 고령화와 세대 간의 갈등
젊은 인구의 감소에 따른 교회 구성원의 고령화는 시대 변화에 따른 교회의 개혁적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1,2,3세대에서는 자연스러웠던 수직적이고 일방적이며 권위적인 전통적 교회 구조는 문화적인 측면에서 젊은이들에게 호소력을 상실하고 있다. 또한 식민지와 전쟁과 급격한 변화의 소용돌이에서 교회를 찾았던 1, 2, 3세대와는 달리 뚜렷한 동기를 찾을 수 없는 4세대에게 이전 세대의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c. 포스트모더니즘에 의한 전통적 권위의 상실.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표현되는 현 시대는 한마디로 상실의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이제까지 교회와 사회의 골격을 유지하였던 전통과 권위와 권력은 더 이상 예전과 같은 형태로 유지될 수가 없게 되었다. 주로 2,3세대로 구성된 전통적 교회는 점차 고령화되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시대를 살아가는 4세대에게 호소력을 상실하여 가고 있다. 이에 대한 돌파구로서 유학파들을 중심으로 서구의 포스트모더니즘의 신학을 접목하여 도입한 이머징미셔널 처치가 차츰 설득력을 가지고 침체된 한국교회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d. 네트워크에 의한 사이버 공동체 탄생
한국교회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일제 식민 정책에 의한 전통적 공동체의 상실로 인하여 인간이 본능적으로 추구하는 공동체성을 교회가 대신 제공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탈 문화의 출현으로 인한 SNS의 발달은 또 다른 형태의 사이버 공동체를 탄생시킴으로서 인간의 공동체성에 대한 요구를 또 다른 형태로 채워줌으로서 그 만큼 교회의 역할이 축소되고 있는 것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 넘는 사이버 공동체는 많은 부분에서 전통적 공동체가 가지고 있던 한계를 뛰어넘는 것이어서 전통적 교회가 극복하여야 할 또 다른 과제가 되고 있다.
e. 정통 신학의 붕괴
개인 중심의 문화가 비교적 일찍 형성된 서구 사회에서는 한국의 경우보다도 더 빠르게 전통적 교회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전통적 교회는 이제 실용주의적 마켓팅 처치를 넘어서 개인의 주관적 판단이 진리의 기준이 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이머징 처치로 형태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또한 정통주의 안에 있는 전통적인 교회들도 신칼빈주의라는 이름으로 개인 중심의 문화를 중시하는 미셔널 형태의 교회를 형성해 나아가고 있다.
문화를 중시하는 교회 성격의 변화는 신학의 변화를 요구할 수밖에 없고 이러한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는 신학의 성격이 이전과는 다른 이성과 과학에 의존하는 아래로부터의 신학이 되어야하는 것이다.
이성과 과학에 의존하는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접근 방법은 고대 유물을 통하여 이성적이고 과학적인 방법으로 성경을 연구한 결과 전통적 바울 이해가 잘못되었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예수 연구”라는 방법으로 탄생한 이론이 “바울에 관한 새관점”이며 톰 라이트에 의하여 새로운 교회의 이론으로 보편화 되고 있다.
2. 새로운 대안으로서의 다양한 움직임들
A. 이머징미셔널 처치
이미 교인 수의 감소를 경험한 서구의 교회들은 앞으로의 세대를 위한 교회는 포스트모더니즘과 문화라는 주제를 접목 이머징 처치가 되어야 한다고 많은 이들이 생각하고 있다. 이를 위해서는 확장된 하나님 나라의 개념으로서 회중 중심의 교회보다는 우주적 교회론의 정립이 필요하게 되었다. 회중 중심의 교회론은 일반 사회에 대하여 배타적인 이원론적 사고의 틀을 극복할 수 없기에 모든 피조계의 회복을 의미한다는 우주적 구원론(Universalism)을 말하는 칼 바르트의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바탕으로 정립한 교회인 이머징 미셔널 처치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B. 바울에 관한 새관점
해체와 재건을 기본 모토로 삼는 포스트모더니즘의 교회는 전통적 개념과는 다른 새로운 개념의 성경 해석을 필요로 하고 있다. 여기에 부합하여 "바울에 관한 새관점"은 이머징미셔널 처치의 신학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있다. 톰 라이트에 의하여 널리 알려진 "바울에 관한 새관점(the New Perspective on Paul)"은 "역사적 예수 연구"를 근거로 하여 어거스틴 이후의 성경 해석을 부정하면서 동시에 종교개혁을 루터의 잘못된 성경 해석에서 비롯된 과오라고 규정하면서 루터의 이신칭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특히 새관점은 교회의 범위를 넘어 피조계와 일상에서의 하나님 나라 개념을 확대 적용함으로서 서구 사회는 물론 윤리가 실종된 한국교회에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하지만 새관점은 전통적 성경 해석을 부정하면서 이제까지의 신학적 사고를 완전히 바꾸는 신율주의(언약적 율법주의)적 사고로서 만약에 새관점이 맞다면 어거스틴, 루터, 칼빈을 비롯하여 이제까지의 개혁주의 안에 있었던 믿음의 사람들은 잘못된 신학을 기초로 전부 오류를 범한 것이 된다.
C. 신칼빈주의
포스트모더니즘시대에 문화를 외면하고서는 교회의 성장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이제까지의 전통적 성경 해석을 부정하는 새관점을 수용하면서까지 교회의 변화를 추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이와는 달리 신칼빈주의는 전통적 칼빈주의를 고수하면서 교회의 문화적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2009년 타임지는 미국의 대중에 미치는 10대 영향력 중에 신칼빈주의를 3번째로 선정하였다. 신칼빈주의의 대표적인 인물로는 존 파이퍼, 팀 켈러, 마크 드리스콜 등을 들 수 있다.
존 파이퍼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간의 행복(extreme joy)을 접목시킨 기독교 희락주의(Christian Hedonism)를 디자이어링 갓(Desiring God)을 통하여 전파하고 있으며, 팀 켈러는 성경을 현대인의 요구에 부응하여 자유롭게 해석하며, 마크 드리스콜은 젊은 이들의 취향에 맞추어 파격적인 복장(예; Drag Queen Jesus)으로 예배를 드리는 등 젊은 이들에게 호소력을 가지고 예배를 드리고 있다.
이들은 이론적으로는 칼빈주의를 주장하지만 형식에 있어서는 문화와의 접목을 시도하는 미셔널 처치의 형태를 띄우기도 한다.
3. 개인적 제안
1. 종교개혁 신앙고백의 활성화
비록 한국교회가 외적으로는 많은 성도를 자랑하였지만 과연 이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이들이 종교개혁 신앙고백의 토대 위에 제대로 서 있는가에 대하여는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한국교회의 문제는 윤리의 문제 이전에 제대로 된 신앙적 체계 위에 있지 못함으로 인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이 종교개혁 후에 제대로 된 신앙교육을 위하여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또 다시 종교개혁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이 시대에 가장 필요한 대안이라고 생각된다.
이제까지의 한국교회의 혼란은 마치 이스라엘의 사사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제대로 전하는 이들이 없기에 백성들이 각자 자기의 주관적 판단으로 하나님의 일을 하였었다는 사실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교회는 많으나 제대로 성경 말씀을 전하여 주는 이들이 별로 없었기에 성도들은 진정한 신앙생활이 아닌 자신의 주관적 신념에 의지하여 신앙생활을 하였던 것이다. 종교개혁 신앙고백서들은 종교개혁 후에 성도들에게 성경을 제대로 가르치기 위하여 옳바른 기준을 제시하여 준 것이기에 한국교회의 현재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하여 가장 요구되는 것이다.
종교개혁 신앙고백이 중요한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인간 중심의 인본주의적 성경 해석이 아닌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적 성경 해석으로 성경을 정리하였다는 것이다. 그 중에 대표적인 신앙고백서를 꼽으라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세일치 신조(하이델베르크, 벨직, 도르트)를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불행 중 다행인 것은 이들 종교개혁 신앙고백에 대한 출판물들이 최근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형태로 보급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최근 급증한 신앙고백서 해설과 그룹스터디를 위한 출판물들의 출간은 침체된 한국교회의 새로운 희망을 제시하는 기준이 될 것이다.
2. 사회와 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앞에서 분류하였던 1, 2세대는 참혹한 세상을 지내오면서 교회와 세상을 이원론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었기에 이제는 사회와 문화에 대한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하다.
교회와 하나님 나라는 공간적 개념보다는 하나님의 통치 개념에서 생각하여야 하지만 한국교회의 전반적 분위기는 건물과 조직으로서의 공간적 교회 개념을 넘어서지 못하고 있다. 한국교회의 성도들은 아직도 공간적 교회는 거룩한 영역이고 시민 사회를 구성하는 세상 혹은 세속은 거룩하지 못하다는 이원론적 경향이 강하다. 하지만 시민 사회는 하나님의 자연법에 의하여 운행되고 있다는 사실(“반 두르넨-"하나님의 두 나라 국민으로 살기"-부흥과 개혁사)을 인식하며 그리스도인은 성도이기 이전에 시민으로서 기본적으로 하나님의 자연법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는 것이다.
4. 결론
건강한 교회의 성장을 위하여는 건강한 성령의 역사의 필요가 필요하다. 교회 성장의 원동력은 사람이 아니고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다. 교회의 성장을 위한 인위적인 노력은 오히려 성령의 사역을 가로막는 불신앙의 행위가 될 수도 있다. 바울이 고백하였듯이 성령께서는 우리의 약함 가운데 역사 하신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의 절망적 상황이 인간적인 관점에서 고통스럽기는 하지만 오히려 성령께서 역사 하실 가장 적절한 시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꿈이 많던 요셉은 인간적으로 희망의 가능성이 전혀 보이지 않았던 감옥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고 모세도 광야 생활로 인하여 더 이상의 희망이 보이지 않았던 80세에 하나님께서 부르셨고 다윗은 부르심을 받고도 쫒김을 당하며 교만의 씨가 거의 마른 뒤에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었다.
지금 한국의 교회는 요셉과 같이 꿈을 잃어버렸고 모세와 같이 너무 쇠약하여졌지만 자신의 죄를 눈물로 회개했던 다윗이 하나님의 영광에 참여했던 것과 같이 한국교회와 성도들이 눈물로 회개 할 때 다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다고 생각된다.
100여년 전부터 시작된 한민족에 대한 부르심의 역사는 한일합방과 6.25라는 피눈물 나는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간섭하심이 있으셨듯이 한국교회 앞에 놓인 현재의 고통스러운 상황들은 희망을 위한 하나님의 채찍임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드려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