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의 몰락과 종교 개혁의 배경
중세의 몰락과 종교 개혁의 배경
2014-10-01 15:11:45
중세란 소위 크리스텐돔(Christendom) 즉 기독교 중심의 세계, 정확히 말하면 교황 체제 아래 있는 세계였다. 이 체제가 무너진 것이 근세인데 교회의 권위가 무너져 내린다는 점에서 세속적 세계가 본격화된 것이다. 중세에서 근세로 이행하는데 3가지 중요한 전환점이 있는데 첫째는 1492년에 신대륙을 발견한 사건, 둘째는 1453년 비잔티움이 멸망하면서 고대 그리스 문헌들이 서방세계로 대규모로 유입된 사건, 셋째는 1517년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조 반박문을 내걸은 사건이다.
1. 신대륙 발견
중세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눈에 보이는 현상이나 물질적 세계가 경시되어 과학의 발전이 저해되었다. 십자군 전쟁을 기회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이 서방에 유입되기 시작한 후 중세말기에 나타난 유명한 논쟁이 실재론과 유명론 논쟁이다. 실제론은 물질이나 현상을 실재로 보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에 기초한 것이고 유명론은 그 반대로 플라톤 철학에 기반하여 현상이나 물질을 실재로 보지 않는 이론이다. 전자는 귀납법적 방법론으로 이후 과학적 방법론과 철학의 경험론으로 발전하고 후자는 연역법적 방법론으로 후일에 합리론이나 관념론으로 발전한다. 중세에는 플라톤 철학의 영향으로 유명론이 대세였고 감각의 세계를 비실제로 치부하여 자연과학의 발전이 저해되었다. 천동설이나 지구가 평평하다는 설, 연옥 교리 등은 중세의 유명론적 세계의 산물이었다. 중세에 문명의 중심은 지중해 연안이었고 유럽은 상대적으로 미개한 지역이었고 그래서 당시 유럽은 발달된 문명을 가진 중국이나 인도에 관심을 가지고 이들 국가와 원거리 무역에 도전하였다. 오스만 투르크의 점령으로 아프리카 서안을 끼고 희망봉을 돌아가는 동방무역로가 차단되자 대서양쪽으로 돌아가는 신항로를 개발하려고 하였는데 이것이 뜻밖에 신대륙 발견의 계기가 되었다. 중세 세계에서 1492년의 신대륙 발견은 지구가 평평하다는 중세의 관념이 거짓임을 폭로한 사건이었고 이것은 교황중심의 체제를 흔드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2. 르네상스
오스만 제국의 침략으로 동방의 비잔티움이 멸망하자 동방의 학자들이 수많은 고대 그리스 문헌들을 가지고 서로마로 피신하였는데 이때 서방 세계에 고대 그리스의 철학 예술이 알려졌고 특히 고대 그리스어 성경 사본이 알려진다. 당시 서방에서는 라틴어로 번역된 벌게이트 성경 뿐이었고 자국어 성경 번역을 금지하였으므로 일반인이 성경을 읽는 것은 불가능하였고 지방의 신부들 조차도 제대로 신학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따라서 교황제도가 만들어낸 거짓 신학과 교리를 성경으로 비판하는 것이 원천적으로 봉쇄되었다. 고대 그리스 문화가 서방세계에 유입되면서 그리스 문화를 알기 위한 그리스어 열풍이 불었고 결국 그리스어로 쓰인 성경도 읽게 된다. 이것이 소위 르네상스이다. 사람들은 기독교 인간관과는 판이한 고대 그리스의 긍정적 인간관에 접촉하게 되고 그리스어 성경을 읽으면서 무오라고 믿었던 벌게이트 번역의 오류를 발견하게 되며 교황 체제가 만든 교리에도 의심을 품게된다. 결국 중세를 지배한 교회에 대한 의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3. 종교개혁
종교 개혁의 도화선은 루터가 면죄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한 사건이었다. 원래 면죄부는 십자군 전쟁 당시 군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처음 등장하였는데 중세 말기에 바티칸 성당의 건축비 마련을 목적으로 다시 밸행된다. 중세 말기에는 축적된 부가 교회와 수도원에 집중되면서 교회와 수도원이 상당한 토지를 보유하게 되었고 돈을 더 끌어들이려고 교횡은 성경과 신학을 조작하였으며 성직 매매도 공공연히 이루어졌다.물질적 탐욕이 신학을 변질시키고 성직자를 타락시킨 것이다. 당시에 교황 체제는 권력을 교황에게 집중시키고 평신도들을 바보로 만듦으로써 신학적 사기를 치고 교회 전통과 교황에게 최고의 권력을 부여하였다. 이런 상황에서 루터가 문제를 제기하였을 때 많은 대중들이 루터를 지지한 것을 보면 중세의 교회의 타락상에 대한 비판은 이미 상당히 대중들에게 공유되고 공감을 얻고 있었던 것이다. 말하자면 폭탄이 준비된 상황에서 루터가 불을 붙인 것이다.다. 중세의 이런 암흑기는 개혁의 욕구를 점점 불러일으켰고 루터는 자신이 상상도 못하던 종교개혁의 주역이 된 것이다. 루터의 종교개혁에 결정적으로 기여한 세 사람이 있는데 첫째는 에라스무스이다. 그는 중세말 최고의 학자로서 헬라어 신약 성경을 단행본으로 편집하였고 루터와 쯔빙글리는 이 책을 읽었고 루터는 나중에 독일어로 번역하였다. 둘째는 금속활자를 만들어 인쇄혁명을 일으킨 구텐베르크였다. 인쇄혁명이 없었다면 루터의 사상과 주장의 전파 그리고 성경 보급은 불가능하였을 것이다. 셋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에 버금가는 권력을 가진 독일의 선제후 프리드리히가 루터를 철저히 보호해준 것이다. 종교 개혁이후 유럽은 1648년 베스트팔렌 조약까지 약 130년 동안 종교 전쟁에 휘말렸고 이것은 이후 유렵에 반기독교적 정서를 불러 일으키게 된다.
질문 1.
중세를 몰락시킨 언급하신 세가지 사건의 공통점은 중세기를 지배하던 교황 체제에 대한 의문을 불러일으킨 것이라고 보여집니다. 그렇다면 이 세가지 결정적인 사건들이 중세를 몰락시키고 또한 근세를 태동시킨 것이라면 이 세가지 사건이 태동된 근세의 형성에 미친 영향은 어떤 것입니까?
질문2.
중세기를 보통 암흑기라고 부르는데 모든 역사 시기에는 명암이 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중세기가 가진 긍정적인 의미는 무엇일까요? 특히 교회사에서 가장 긴 역사를 가졌던 중세의 교회사적 의미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