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왕정기- 사무엘의 등장, 사울과 다윗

메르시어 2023. 5. 6. 11:37

왕정의 시작- 사무엘의 등장

2014-09-19 16:20:56


  사사 시대의 마지막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무엘상은 사무엘의 등장에서 사울의 죽음으로 끝나고 사무엘하는 다윗의 시대를 소개한다. 이어지는 열왕기상은 다윗의 죽음과 솔로몬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가 열왕기하 마지막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상에서 열왕기하는 전체로 하나의 역사책으로서 왕정 시대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엘상

 

사무엘이 등장하고 왕정시대가 시작하는 기록이다. 첫번째 왕인 사울이 등장하고 사울의 비참한 죽음으로 마친다. 백성들이 그렇게 고대하였던 왕이 등장하였지만 그 왕이 비참하게 불레셋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역설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사무엘이 등장한 시대는 사사 시대의 마지막 시기였다. 사사 시대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사사들을 통한 통치 '때문에 인상적이지만 아울러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난맥상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특히 당시 열두 지파 동맹의 중앙 성소는 실로였고 여기에 성막이 있었다. 엘리 집안의 불순종과 한나의 믿음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엘리 집안의 멸망과 사무엘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엘리 집안이 망한 이후 성경은 실로에 대하여 아무 언급도 없다. 실로는 그 후 어느 시점에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인 엘리 집안의 불순종과 그 멸망은 사사 시대의 난맥상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사사 시대에서 왕정기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사무엘이다. 자식을 낳지 못해 슬퍼하는 여인의 간절한 기도가 사무엘의 출생배경으로 그려진다. 한나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아들에게 삭도를 내디 않겠다는 것은 나실인 서원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나실인은 보통 정해진 기간에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제도인데 여기서는 한나가 아들을 평생을 나실인으로 드린다고 서원한 점이 일반적인 나실인 제도와 다른 특이한 점이다. 

 

  한나의 나실인 서원은 하나와 사무엘이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서 신앙의 원칙을 따라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가나안의 세속적인 영향에 맞서서 앞 세대의 반유목적 지파동맹의 단순한 삶을 지지하며 옛 길과 옛 가치를 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기도는 사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나의 찬양은 공적 차원으로 승화되고 있다. 한나의 찬양은 마리아의 찬가와 내용이 거의 동일한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나님으로 인한 세상 질서의 역전을 증거하는 한나의 찬양은 하나님의 재판관 되심,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것으로서 야웨신앙의 본질이다.

 

  사무엘은 사사이면서 제사장이었고 예언자이기도 하였다. 사무엘은 군사적( 7:11-14, 11:7-11, 12:11) 사법적 영역에서(7:15-17) 사사로 활동하였고 사무엘은 또한 선견자로 불린다.(9:11,19)  사무엘의 또 다른 역할은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다.(7:10, 13:8-15) 사무엘은 에브라임 자파임에도 아론 자손에게 특정된 제사장 직무를 맡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은 구약에서 모세이후 처음으로 삼중직무를 가진 인물이다. 사무엘이 늙자 그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는데 사사직은 세습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세습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결국 사무엘 아들의 사사 세습은 아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실패하였다. 사사 시대가 지향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원칙이 사라져보란 난맥상이었고 이것은 사무엘 아들들의 부패로 이어지고 있다. 한 시대의 쇠퇴는 새로운 시대와 체제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사사 시대의 실패는 왕을 세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무엘상 8장 이후는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왕정에 대한 두가지 다른 흐름을 볼 수 있다. 8장과 10장 17-27절, 12장의 흐름은 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9장-10장 16절, 11장에 나오는 흐름은 사울을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며 이점에서 사울은 이전 시기의 사사들과 흡사하다. 결국 사무엘상 8-12장은 왕정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승을 전하고 있으며 지금의 형태로 배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옛적 사사들 처럼 지도자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세우섰다는 전승과 왕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백성들의 요구를 따라 허락하였다는 전승이 그것이다.

 

 이런 본문에 나타난 두가지 전승에 공통적인 것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고 하나님이 그 요구를 따라 왕을 세우심으로 왕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전승은 왕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지만 이 두가지 시각이 모슨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왕정을 요구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정은 허락된다. 하나님은 왕정 제도를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하심으로 문제의 핵심이 제도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의 난맥상이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왕정 제도를 그 해결책으로 주장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었다. 사사제도이든 왕정 제도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왕정하에서도 이전과 똑같은 원칙으로 지배되는 백성이다. 왕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정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면서 다가올 '참된 왕' 곧 메시야를 기대했다.

 

 

[추기] 2014. 9. 26  금

 

  왕정에 대한 이스라엘의 요구는 사사 시대인 기드온 때부터 등장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될 것을 요구한 이유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기드온의 손에서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현상만 보지 현상 배후에서 기드온을 일으키시고 미디안과 싸우시는 하나님을 볼 믿음의 눈이 없었다. 그러나 기드온의 대답은 명확하다.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하다가 비참하게 죽음일 당하였다. 그런데 사사기의 기자는 이렇게 왕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사사 시대의 난맥상의 원인을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사사기의 기록이 적어도 다윗 왕정 시대에 기록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사사기는 왕정 자체에 대한 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사제도는 상설적이고 비세습, 비신분적임에 비해 왕정은 상설적이고 세습적, 신분적인 특징을 가진다.   

 

  신구약 성경은 세상의 체제나 제도에 대하여 직집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왕정 제도도 허락되었고 노예 체제도 허용되었다. 성경은 체제나 제도의 혁파 보다는 시대의 제도와 체제 안에게 야훼신앙으로 사는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믈론 성경이 그 시대의 체제나 제도를 인정한 것이 오늘날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왕정이 허용된 것을 보면 고대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국가형태인 왕정 자체와 싸우지는 않았고 다만 그 제도 자체가 가진 악함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도나 체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체제하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왕정제도의 실패는 결국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증명하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낼 메시야 왕을 기대하게 한 것이다. 왕정의 실패 경험이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시키는 역사적 수단이 된 셈이다.

 

왕정기- 사울과 다윗

2014-09-26 18:15:19


 사울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된다.  이제 막 시작한 왕정이라는 새 제도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라는 이전의 틀의 혼재로 인한 여러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울이 등장하는 결정적 계시는 암몬과의 잔투였다. 사울이 먼 곳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라는이웃 지파의 어려움에 대해 모른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떨쳐 일어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싸움이었다. 이 전쩐투의 승리를 통해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에도 사울은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그러나 승리와 영광이 사울 시대의 주된 특징이 되지 못한다. 많은 승리와 전공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대한 두가지 시험에서 실패한다. 첫번째는 불레셋과의 전투를 앞두고 자신이 임으로 제사를 드린 것이고 두번째는 헤렘 전쟁을 명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것이다. 사울에게 요구된 이 두가지 명령은 모두 사울이 왕이지만 이방 나라와 달리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 여호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이스라엘에 왕정이 도입되었다 하더라도 이방의 왕정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 바로 이것이다.
 
  사울이 사무엘의 명령에 순종하지 않은 이유는 하나님보다는 백성들을 두려워한 것이었다. 일반적인 국가로서의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백성된 나라로서 이스라엘, 이 둘 사이에 사울이 놓여있었고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왕권을 제대로 사용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사울이 여호와의 말씀을 버렸으므로 하나님도 사울을 버려 왕이 되지 못하게 하신다고 사무엘은 선언한다. 사무엘로 대표되는 옛질서와 다윗으로 대표되는 새로운 질서 사이에 놓은 사울의 위치 자체가 사울의 삶을 어렵게 한 측면이 있다. 이후에 사울이 다윗을 핍박하면서 스스로 왕권을 지키려고 혈안이 된 것은 사울의 비참한 최후를 예고하고 있다.
 
  다윗의 시작도 사울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정말 미미하였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왕을 세우시는데 외모를 보지 않고 중심을 보신 것은 외적인 조건이 하나님나라에 중요하지 않음을 의미한다. 그러나 왕권이 세습되면서 다윗의 후예라는 외적인 조건이 우선시되면서 수많은 문제점들이 나타나는데 이런 것은 사사 시대에는 없던 일이다. 사사 시대에는 어떤 사사가 문제가 있더라도 그것이 후대로 이어지지 않는데 반해 세습제인 왕정은 문제가 대를 이어서 나타남으로써 죄악의 역사가 과중하게 쌓이게 된다. 다윗의 후예가 의미하는 핵심은 혈통이나 배경같은 외적 기준이 아니라 다윗의 삶과 행실이다.  
 
사울에게 극도의 핍박을 받으면서 도망다니던 고통스런 시절에도 다윗의 삶이 붕괴되지 않았고 이 시절에 지은 시편이라고 전승되는 시편들, 34편, 54편 56편, 57편, 63편, 142편들에는 그런 상황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을 찬양하고 굳게 의지하는 다윗의 믿음이 찬란하게 드러나있다. 자신이 처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곤고한 상황속에서도 놀랍게도 다윗은 하늘과 궁창에 미치는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찬양하고 있다. 
 
  특이한 것은 다윗이 유대 광야에 거할 때 이스라엘 전역에서 환란 당한 자, 빚진 자,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윗을 바라고 찾아들었다는 점이다. 사울이 다스리는 세상에서  살 길이 막막한 자들이 다윗을 바라고 찾아온 것이다. 다윗을 찾아온 이 무리들은 당시 사회에서 밀려난 자들이지만 체념하지 않고 변화와 소망을 품은 자들이었다. 다윗이 이들에게 준 것은 단순한 평안이나 행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에 대한 신뢰와 확신이었다. 다윗이 그들에게 준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에 대한 기대와 비전이었다. 
 
  다윗이 소중히 여기고 간직한 가치는 무엇인가? 다윗의 나라는 어떤 점에서 다른나라와 차이가 있는 것일까?그일라 사건은 다윗이 소중히 여기는 가치가 무엇인지 잘 보여준 사건이다. 사울을 피해 블레셋에게 까지 몸을 의탁해야 하는 처지였지만 다윗은 살아남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었다.다윗에게는 악탈당하고 압제당하는 동포에 대한 마음이 있었다. 좆겨 다니는 신세인 다윗은 그일라 사건에 개입하지 말아야 했었고 개입으로 인한 아무 유익도바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한 후에 다윗은 이 싸움에 뛰어들었다.  시글락 사건으로 인한 아말렉과의 전투에서도 다윗은 아말렉을 추격하는 와중에도 불구하고 길어 쓰러져 다 죽어가는 애굽 소년을 데려와 먹이고 돌본다. 이것은 다윗과 그 군대의 존재 목적이 무엇인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그렇게 한 사람을 존중하고 살려낼 것이 아니라면 그들의 군대의 존재 이유는 없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공평과 정의의 통치이다.
 
  사무엘하 8장 14절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니 다윗이 점점 강성하여 간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어지는 15절에는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다윗의 모든 백성에게 정의(미슈파트)와 공의(째다카)를 행하였다고 기록한다. 다윗나라의 핵심음 정의와 공의로 다르시는 나라이다. 이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명령하신  것이요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스리시는 원칙이다. 그러므로 다윗의 정의와 공의의 통치는 이 땅에 임하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의 구현임을 알 수 있다. 다윗나라의 특별함이 여기에 있다. 그는 왕이 되어 정의와 공의로 다스렸다. 세상에 어떤 왕이 통치의 원칙을 정의와 공의로 삼을 것인가? 백성들을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는 것을 왕의 존재 이유로 삼는 것, 그것이 다윗의 나라, 다윗 통치의 근간이엇다.
 
  이렇게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기 위하여 다윗은 모든 일에 하나님의 뜻을 묻는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진장한 왕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자신은 단지 그 왕의 통치를 드러낼 대리자일 뿐임을 잘 알았다. 그래서 대윗은 매사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다. 그는 섣불리 시류를 따라 움직이거나 편승하지 않고 중요한 상황을 분별하였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거취와 행동을 결정하였다. 다윗이 여부스 사람의  예루살렘 성을 빼앗은 것이나 법궤를 그 성으로 옮겨온 것은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새로운 정치적 종교적 중심지로 만들려는 정치적 의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 의도이전에 다윗은 이스라엘의 존재와 자신의 다스림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였을 것이다. 벱궤를 옮겨오는 본문에 곧 바로 하나님이 다윗과 영원한 언약을 맺으시는 장면은 하나님의 다윗의 행동을 인정하셨음을 확인해 준다.
 
  다윗이 자신이 최고가 아니라 자신 위에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께 묻고 예배하는 일을 중시한다는 점이 다윗을 빛나게 한다. 이것은 다윗의 실패에서도 잘 드러난다. 하나님께서 나단을 보내어 다윗의 죄를 드러내시고 책망하실 때 놀랍게도 다윗은 자신이 죄를 범하였음을 곧 인정한다. 다윗은 강력한 왕이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자신이 왕으로 행세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았고 그 앞에 엎드렸다. 유대 광야에서 다윗의 생활은 여러모로 그를 참된 왕으로 준비시키는 시간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기를 배웠고 그것을 훈련하기에 광야는 참으로 좋은 환경이었다. 아울러 그는 마음 상한 자들을 이해하게 되었으며, 까닭없는 고난도 알게 되었다.
 
  다윗 시대에 이르러 이스라엘은 명실공히 중앙집권적 국가를 이루었다. 이와 더불어 다윗은 옛 지파전승과 신앙적 정통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언약궤를 다윗성에 안치한다. 이 때 하나님은 다윗과 특별한 계약을 맺으시는데 이스라엘의 시온 신학, 왕정신학은 본격화된다.  시온성과 다윗의 왕위는 영원하다는 이스라엘의 믿음이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다윗의 나라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어 공평과 정의로 다스려지는 나라이다. 이것은 두고두고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이 된 메시아 신앙이다. 이스라엘은 다윗과 같은 메시아가 다윗 혈통에서 나서 이스라엘 지파들을 다시 통일하고 공평과 정의로 통치하며 이스라엘의 지위를 화복시켜 만방중에 빛내기를 소망하고 기대하엿다. 구약과 신약을 가로지르는 핵심 개념인 하나님나라는 바로 다윗 왕국을 표본으로 한 것이다.
 
  그러나 지파 동맹에 대한 강한 신앙적 전통은 왕정이라는 체제와 계속 갈등이 있었다. 다윗이 성전을 지으려고 한 것이나 인구 조사를 한 것 그리고 제왕적 왕권에서 나온 벳세바 사건들은 근본적으로 왕정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앙은 충돌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스라엘이 왕정이 되었지만 여전히 이스라엘의 진정한 왕은야훼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자신의 삶을 통해 이 점을 철저히 깨달았을 것이다. 다윗의 이름으로 전하는 많은 시편은 다윗의 이런 믿음과 깨달음을 잘 보여준다. 그러므로 다윗의 나라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이 땅에 이루어간 나라르 보여준다.  다윗은 왕이 되었지만 자신의 모든 삶의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과 동행하며 살아간 사람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를 잘 보여준다. 시편에 나타난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외에는 의지할데가 없는 사람이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가난한 자의 진정한 표상일 것이다. 
 
 
 
[추기] 2014. 9. 26
 

 사울은 하나님보다는 백성을 두려워하였고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시시 시대의 기드온의 모습과 대조된다. 사울은 지파동맹 시대인 하나님의 왕되심과 세속 왕정제도 사이에서 갈등을 하였던 사람이다. 세속왕정과 하나님의 왕되심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다윗 시대에 이루어진다. 사울은 사사 시대와 왕정기의 과도적 인물이었고 본격적 왕정은 다윗부터 시작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사울의 실패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왕정의 실패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사무엘서가 왕정기나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면 열왕기기자는 다윗의 통치를 높이 평가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상에 사울과 다윗의 두 인물이 날카롭게 대조되면서 다윗을 부각시킴으로써 다윗 왕정의 탁월성을 드러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세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시온신학의 전통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 기원한다. 하나님은 시온성이 영원하고 다윗의 왕권이 영원할 것을 약속하셨다. 히스기야 때의 시건은 시온 신학을 부추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시온신학은 시온의 두가지 측면에 대한 혼동이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의 나라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이다. 전자는 무조건 영원하지만 후자는 순종을 조건으로 그 지속성이 보장된다. 이 두가지 시온을 착각한게 시온신학이다. 시편 41편을 비롯한 수많은 시온 시편들은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을 노래한 것이다. 시온 신학의 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에 있지 예루살렘이라는 성 자체에 있지 않다. 이 착각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