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정기- 사무엘의 등장, 사울과 다윗
왕정의 시작- 사무엘의 등장
2014-09-19 16:20:56
사사 시대의 마지막을 다루는 것으로 시작하는 사무엘상은 사무엘의 등장에서 사울의 죽음으로 끝나고 사무엘하는 다윗의 시대를 소개한다. 이어지는 열왕기상은 다윗의 죽음과 솔로몬의 등장으로 시작되어 이스라엘이 멸망하는 시기가 열왕기하 마지막까지 다루어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상에서 열왕기하는 전체로 하나의 역사책으로서 왕정 시대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사무엘상
사무엘이 등장하고 왕정시대가 시작하는 기록이다. 첫번째 왕인 사울이 등장하고 사울의 비참한 죽음으로 마친다. 백성들이 그렇게 고대하였던 왕이 등장하였지만 그 왕이 비참하게 불레셋 전쟁에서 죽임을 당하는 것으로 끝난다는 역설적인 기록이기도 하다. 사무엘이 등장한 시대는 사사 시대의 마지막 시기였다. 사사 시대느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사사들을 통한 통치 '때문에 인상적이지만 아울러 백성들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난맥상이 두드러진 시대였다. 특히 당시 열두 지파 동맹의 중앙 성소는 실로였고 여기에 성막이 있었다. 엘리 집안의 불순종과 한나의 믿음은 극명한 대조를 이루며 엘리 집안의 멸망과 사무엘의 등장으로 이어진다.
언약궤를 블레셋에게 빼앗기고 엘리 집안이 망한 이후 성경은 실로에 대하여 아무 언급도 없다. 실로는 그 후 어느 시점에서 파괴된 것으로 보인다. 제사장인 엘리 집안의 불순종과 그 멸망은 사사 시대의 난맥상을 두드러지게 보여준다. 사사 시대에서 왕정기로 넘어가는 변화의 시기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사무엘이다. 자식을 낳지 못해 슬퍼하는 여인의 간절한 기도가 사무엘의 출생배경으로 그려진다. 한나가 기도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아들에게 삭도를 내디 않겠다는 것은 나실인 서원을 한 것으로 보여진다. 나실인은 보통 정해진 기간에 본인이 자발적으로 하는 제도인데 여기서는 한나가 아들을 평생을 나실인으로 드린다고 서원한 점이 일반적인 나실인 제도와 다른 특이한 점이다.
한나의 나실인 서원은 하나와 사무엘이 그 시대에 하나님 앞에서서 신앙의 원칙을 따라 살고 있음을 보여준다. 나실인이 된다는 것은 가나안의 세속적인 영향에 맞서서 앞 세대의 반유목적 지파동맹의 단순한 삶을 지지하며 옛 길과 옛 가치를 고수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의 기도는 사적으로 시작되었지만 하나의 찬양은 공적 차원으로 승화되고 있다. 한나의 찬양은 마리아의 찬가와 내용이 거의 동일한데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신앙의 진수를 담고 있다고 평가된다. 하나님으로 인한 세상 질서의 역전을 증거하는 한나의 찬양은 하나님의 재판관 되심, 하나님의 통치를 노래한 것으로서 야웨신앙의 본질이다.
사무엘은 사사이면서 제사장이었고 예언자이기도 하였다. 사무엘은 군사적( 7:11-14, 11:7-11, 12:11) 사법적 영역에서(7:15-17) 사사로 활동하였고 사무엘은 또한 선견자로 불린다.(9:11,19) 사무엘의 또 다른 역할은 제사 드리는 제사장이다.(7:10, 13:8-15) 사무엘은 에브라임 자파임에도 아론 자손에게 특정된 제사장 직무를 맡았다는 점이 특이하다. 이렇게 보면 사무엘은 구약에서 모세이후 처음으로 삼중직무를 가진 인물이다. 사무엘이 늙자 그 아들들을 사사로 삼았는데 사사직은 세습되지 않는 것이 원칙인데 세습된 것은 놀라운 일이다. 결국 사무엘 아들의 사사 세습은 아들의 부패와 무능으로 실패하였다. 사사 시대가 지향한 이상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원칙이 사라져보란 난맥상이었고 이것은 사무엘 아들들의 부패로 이어지고 있다. 한 시대의 쇠퇴는 새로운 시대와 체제를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사사 시대의 실패는 왕을 세우는 계기가 되고 있다. 사무엘상 8장 이후는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는 과정을 다루고 있다. 여기서 우리는 왕정에 대한 두가지 다른 흐름을 볼 수 있다. 8장과 10장 17-27절, 12장의 흐름은 왕에 대한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는데 9장-10장 16절, 11장에 나오는 흐름은 사울을 이스라엘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지도자로 세워지는 것을 보여주며 이점에서 사울은 이전 시기의 사사들과 흡사하다. 결국 사무엘상 8-12장은 왕정에 대한 서로 다른 두 개의 전승을 전하고 있으며 지금의 형태로 배열되었다고 볼 수 있다. 상황의 변화에 따라 옛적 사사들 처럼 지도자를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하려고 세우섰다는 전승과 왕정은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시지만 백성들의 요구를 따라 허락하였다는 전승이 그것이다.
이런 본문에 나타난 두가지 전승에 공통적인 것은 백성들이 왕을 요구하였고 하나님이 그 요구를 따라 왕을 세우심으로 왕정이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두 전승은 왕정에 대한 부정적인 시각과 긍정적인 시각을 보여주지만 이 두가지 시각이 모슨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왕정을 요구한 것은 옳지 못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왕정은 허락된다. 하나님은 왕정 제도를 이스라엘이 경험하게 하심으로 문제의 핵심이 제도에 있지 않음을 알게 하신 것이다. 이스라엘은 사사 시대의 난맥상이 왕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왕정 제도를 그 해결책으로 주장했지만 문제의 핵심은 그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지 않는 것이었다. 사사제도이든 왕정 제도이든 중요한 것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유일한 왕이라는 사실이다. 이스라엘은 왕정하에서도 이전과 똑같은 원칙으로 지배되는 백성이다. 왕이 있다 할지라도 그들은 여전히 여호와의 명령을 준행하는 것이 생존의 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왕정의 쓰라린 경험을 겪으면서 다가올 '참된 왕' 곧 메시야를 기대했다.
[추기] 2014. 9. 26 금
왕정에 대한 이스라엘의 요구는 사사 시대인 기드온 때부터 등장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될 것을 요구한 이유는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기드온의 손에서 구원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현상만 보지 현상 배후에서 기드온을 일으키시고 미디안과 싸우시는 하나님을 볼 믿음의 눈이 없었다. 그러나 기드온의 대답은 명확하다. 자신이나 자신의 아들들이 이스라엘을 다스리지 않을 것이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다스리신다는 것이다.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스스로 왕이 되려하다가 비참하게 죽음일 당하였다. 그런데 사사기의 기자는 이렇게 왕정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역사를 기록하면서도 사사 시대의 난맥상의 원인을 그 때에 이스라엘이 왕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것은 아마도 사사기의 기록이 적어도 다윗 왕정 시대에 기록되었음을 짐작케 한다. 사사기는 왕정 자체에 대한 에 대한 부정적인 역사에도 불구하고 다윗 왕정에 대해서는 긍정적인 평가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사사제도는 상설적이고 비세습, 비신분적임에 비해 왕정은 상설적이고 세습적, 신분적인 특징을 가진다.
신구약 성경은 세상의 체제나 제도에 대하여 직집적으로 싸우지 않는다. 왕정 제도도 허락되었고 노예 체제도 허용되었다. 성경은 체제나 제도의 혁파 보다는 시대의 제도와 체제 안에게 야훼신앙으로 사는게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믈론 성경이 그 시대의 체제나 제도를 인정한 것이 오늘날도 유효한 것은 아니다. 이스라엘에게 왕정이 허용된 것을 보면 고대 시대의 가장 기본적인 국가형태인 왕정 자체와 싸우지는 않았고 다만 그 제도 자체가 가진 악함과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도나 체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체제하에서도 하나님이 다스리심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세상의 어떤 권세도 모두 하나님의 권세 아래 있는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왕정제도의 실패는 결국 하나님만이 진정한 왕이심을 증명하였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왕 되심을 드러낼 메시야 왕을 기대하게 한 것이다. 왕정의 실패 경험이 메시야에 대한 기대를 구체화시키는 역사적 수단이 된 셈이다.
왕정기- 사울과 다윗
2014-09-26 18:15:19
사울의 등장으로 이스라엘에 왕정이 시작된다. 이제 막 시작한 왕정이라는 새 제도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이스라엘이라는 이전의 틀의 혼재로 인한 여러 어려움이 발생한다. 사울이 등장하는 결정적 계시는 암몬과의 잔투였다. 사울이 먼 곳에 있는 길르앗 야베스라는이웃 지파의 어려움에 대해 모른체하지 않고 자기 일처럼 떨쳐 일어섰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싸움이었다. 이 전쩐투의 승리를 통해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으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에도 사울은 이스라엘의 숙적 블레셋과의 수많은 전투에서 승리한다.
사울은 하나님보다는 백성을 두려워하였고 전쟁의 승패가 하나님보다는 사람에게 달렸다고 생각하였는데 이것은 시시 시대의 기드온의 모습과 대조된다. 사울은 지파동맹 시대인 하나님의 왕되심과 세속 왕정제도 사이에서 갈등을 하였던 사람이다. 세속왕정과 하나님의 왕되심이 조화를 이루는 것은 다윗 시대에 이루어진다. 사울은 사사 시대와 왕정기의 과도적 인물이었고 본격적 왕정은 다윗부터 시작한다고 볼수 있다. 그러나 사울의 실패는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 나타난 왕정의 실패를 예견하는 것이었다. 사무엘서가 왕정기나 포로기 이후에 기록된 것으로 본다면 열왕기기자는 다윗의 통치를 높이 평가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사무엘상에 사울과 다윗의 두 인물이 날카롭게 대조되면서 다윗을 부각시킴으로써 다윗 왕정의 탁월성을 드러내려고 하였을 것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세 면면히 이어져 내려온 시온신학의 전통은 하나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에 기원한다. 하나님은 시온성이 영원하고 다윗의 왕권이 영원할 것을 약속하셨다. 히스기야 때의 시건은 시온 신학을 부추키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시온신학은 시온의 두가지 측면에 대한 혼동이었다. 하나는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이고 다른 하나는 다윗의 나라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이다. 전자는 무조건 영원하지만 후자는 순종을 조건으로 그 지속성이 보장된다. 이 두가지 시온을 착각한게 시온신학이다. 시편 41편을 비롯한 수많은 시온 시편들은 하나님의 도성으로서의 시온을 노래한 것이다. 시온 신학의 참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에 있지 예루살렘이라는 성 자체에 있지 않다. 이 착각이 이스라엘 멸망의 원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