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장 아브람의 등장
창세기 12장 아브람의 등장
Tolle Rege/창세기
2011-05-05 13:17:09
드디어 구약의 가장 핵심인물인 아브람이 하나님나라 역사의 전면에 등장하는 장면이 전개된다. 11장 마지막에 보면 아브람의 아비 데라가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하였다고 되어있다. 하나님께서 데라를 부르셨다는 기록이 없으니 그가 왜 가나안땅으로 가려고 했는지 알 수는 없다., 아마도 추측컨데 하나님은 데라를 부르셨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는 가나안으로 가던 중에 하란에 주저앉아 버린 것 같고 그래서 하나님은 다시 아브람을 부르신 것 아닐까? 그렇다면 데라는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한 것이고 아브람은 순종함으로 그 약속을 받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무튼 하나님은 하란에 있던 아브람을 부르셨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약속은 큰 민족을 이루게 하겠다 그리고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겠다는 두가지였는데 전자가 씨의 약속이라면 후자는 땅의 약속인 바 이 두가지는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두가지 핵심적 구성요소인 것이다. 하나님의 이런 약속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대한 아브람의 순종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하나님은 결국 아브라함에게 하나님나라를 약속하신 것이고 이 약속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아브람의 순종이 요구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아브람이 천신만고 끝에 가나안땅에 도착했지만 정작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기근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은 있었지만 눈 앞에 닥친 현실은 먹고사는 급박한 문제에 봉착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먹고살기 위하여 하나님이 약속한 땅이 아닌 애굽으로 내려간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그를 기다리고 있던 것은 목숨의 위협과 아내의 탈취의 위험이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더라도 그것이 역사와 현실 가운데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사람의 순종이 필요하다. 결국 그 순종의 핵심은 다름아닌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믿음이다. 아브람을 믿음의 조상이라 칭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눈에 보이는 현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은 하나님의 약속,,, 믿음은 이 둘 사이에서 눈에 보이는 현실을 따르지 않고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좇는 것이다. 그래서 히브리서는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라고 하였고 로마서는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고 한다. 그러니 믿음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와 헌신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히브리서는 믿음은 이것을 다음과 같이 증거한다.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추기 2011. 11. 12
아브람이 애굽에 들어가게 된 것은 기근때문이었고 그곳에서 생명의 위험과 아내를 탈취당할 위험을 겪었지만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았고 결국은 애굽 왕이 준 재물을 최하여 애굽에서 나온 것은 장차 아브라함의 후손인 이스라엘의 입애굽과 출애굽을 예표하는 사건이기도 하다.
추기 2011. 11. 18
창세기 12장은 하나님나라의 본격적인 역사가 시작되는 장이다. 홍수 사건 이후 하나님은 본격적으로 인간 역사 가운데 개입하시어 하나님나라를 이루어 가시는데 그 첫번째가 아브라함을 부르신 일이었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위대한 나라였는데 그 나라는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이루어지는 나라라는 것이다. 그리고 아브림은 하나님의 복이 온 세상에 미치는 복의 근원이 된다는 놀라운 계시가 주어진다. 이것은 장차 아브람을 통하여 형성될 이스라엘 민족과 그들이 치지할 가나안 땅이라는 차원에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처음부터 보여주는 것이다.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약속하신 것은 위대한 나라 곧 하나님의 나라요 그 나라는 하나님이 복을 주심으로 이루시는 나라이며 그 나라는 이스라엘에 국한되는 나라가 아니라 온 세상에 미치는 위대한 나라라는 것이다.
추기 2014. 4. 11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명령을 하시면서 동시에 약속을 주셨다. 그 약속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신 목적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고 그 이름을 창대하게 하심으로 결국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베푸시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세상에 복을 내리시는 경륜적 도구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그래서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복을 얻게 될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하신 약속을 믿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간다는 것은 현실적으로는 는 생사가 달린 위험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이스라엘 역사의 시작은 바로 아브라함의 이 믿음으로 부터 시작된다. 구약적 하나님나라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났으니 결국 하나님의 나라는 아브라함의 믿음을 통하여 나타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의 본질을 본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이 없이는 믿음도 없을 것이지만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지 지지 않는다. 하나님의 약속의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믿음이 필요하다. 하나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믿음을 요구하고 그 약속은 믿음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이루어진다. 믿음이 없이는 약속은 이루어 지지 않는다. 그러나 약속은 믿음에 죄우되지 않고 그 약속을 이룰 믿음을 반드시 창조한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왔을 때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들이 있었다는 말은 아브라함은 그 땅에서 이방인이요 나그네로 지낼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이 미리 땅을 준비해 놓으신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 땅을 이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눈에 보이는 현실과 하나님의 약속은 너무나 거리가 멀었고 또 땅의 약속도 아브라함 당대가 아니라 그 후대에 이루어질 약속이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
그러나 아브라함에게 닥친 것은 가나안 땅에 닥친 기근이었고 결국 양식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갈 수 밖에 없었다.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아내로 인하여 목숨을 빼앗길 위험이 있음을 예상하였고 급기야 목숨을 부지하지만 아내를 바로에게 빼앗기는 위기에 봉착하였다. 하나님의 약속과는 점점 멀어지는 막막한 현실을 보게된다. 그러나 아브라함을 이 위기로 몰아넣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하나님이 이 위기를 통하여 오히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을 내리려고 하신 것이다.
결국 애굽에서의 위기는 오히려 아브라함이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아내를 지켜주셨을 뿐 아니라 바로의 재산을 빠앗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다. 아브라함으로 인하여 바로의 집에 재앙을 내리셨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이 복의 근원이 된다는 것은 동시에 그가 재앙의 근원도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아브라함을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다. 복과 재앙은 독립적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이다. 복이 없는 것이 바로 재앙의 내리는 곳이다.
창세기 12장
닥치고 성경/창세기
2019-10-10 20:48:09
창세기 12장
드디어 성경인물 가운데 최대의 인물인 아브람이 등장한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아브라함으로 부터 시작된다. 아브라함이 등장하는 12장으로 부터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된다. 그렇다면 12장 이전의 소위 원 역사(primitive history)라고 부르는 1-11장은 창조와 인류의 기원을 설명하려는 목적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으로 시작되는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이스라엘이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설명하려는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니까 원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 이전의 역사가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의 의미를 설명하는 역사인 것이다. 그 요지는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셨고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만물을 다스리게 하심으로 하나님의 통치가 사람을 통하여 온 피조세계에 이루어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에게 불순종하였고 그 결과 창조목적에서 떠나게 되었다. 온 인류는 죄에 빠졌고 하나님의 복에서 멀어지게 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브람을 부르시고 그에게 하란을 떠나 가나안으로 가라고 이르신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그가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그의 이름을 창대하게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이런 약속을 하신 것인가? 그것은 땅의 모든 족속이 아브라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으로 시작된 이스라엘의 존재 의미도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장차 이스라엘로 말미암아 온 세상이 복을 받게 하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복이 온 세상으로 흘러가는 복의 통로 역할을 위하여 선택된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신 약속, 그리고 노아 홍수 후에 하신 약속의 성취를 아브라함을 통하여 시작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12장에는 기근으로 말미암아 아브람이 애굽으로 내려갔고 거기서 아내를 빼앗기는 위험을 당하는 에피소드가 나타난다. 이것은 이미 예상된 일이었다. 고대에 이방 민족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낯선 땅에 먼 곳의 나그네가 정착하여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어려운 일이며 아마도 죽음을 각오하지 않으면 안 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가나안땅으로 가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이미 엄청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낯선 땅의 외로운 나그네 신세인 아브람에게 그 땅을 모두 주시겠다는 약속이나 한 점 혈육도 없는 아브람에게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는 약속 역시 동일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아브람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랐다고 말했을 것이며 아브람이 오고 오는 세대에 우뚝 선 믿음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엄청난 약속은 그에 상응하는 엄청난 믿음을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