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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과 일반은총- 이은성
메르시어
2023. 5. 4. 22:04
성령과 일반은총- 이은성
2014-06-20 22:00:15
성령과 일반 은총-이은성교수의 칼빈의 성령론중에서 |
칼빈은 성령의 삼중적 사역에서 우주의 창조와 질서 유지에 관련된 사역을 다룬 후에 모든 인류와 관련된 성령의 사역을 취급한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성령의 은총이기 때문에 일반 은총이라 불리는데, 기독교인과 일반 은총의 관계에 대하여 지금도 견해가 다양하다. 대표적으로 일반 은총과 기독교와의 접촉점을 부인하는 바르트의 견해와 인정하는 에밀 부르너의 견해가 있다. 또한 그리스도와 문화와의 관계에 대하여 아브라함 카이퍼와 스킬더의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이러한 이론들은 모두가 칼빈의 견해에 토대를 두고 전개되고 있다.
그러면 일반 은총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무엇인가? 칼빈은 사도행전 17:28에 대한 주석에서 하나님은 성령의 놀라운 능력과 영감을 통해 자신이 무로부터 창조한 것들을 보존하신다고 언급한 후에 사람의 생명은 운동보다도 훨씬 더 우월하며 운동은 존재보다 우월하다고 하였다. 그는 생명을 가진 사람들은 야만적인 짐승들과 공통으로 감각과 운동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들이 갖지 않은 이성과 지성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 속에 있는 생명은 짐승 속에 있는 생명보다 우월하다고 보았다.. Comm. Act. 17:28. 이와 같이 사람이 이성과 지성을 소유하여 다른 피조물들보다 우월한 존재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으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소유한 하나님의 형상이 타락에 의해 우리 안에서 파괴되었기 때문에, 이것의 원래의 모습은 그것의 회복으로부터 판단할 수 있다. 골로새 3:10절과 엡4:23에 호소하면서 칼빈은 회복된 형상이 부분적으로 참된 거룩과 의에 존재하는 것으로 이해한다.(Comm. Gen.1:26.)
칼빈은 하나님의 형상인 영혼의 두개의 기능을 오성(understanding. Inst., 2.2.12-15)과 의지(2.2.26-27)로 본다. 어떤 의미에서 의지에 관한 논의는 5장까지 계속된다.(2.2.26-2.5.19). 칼빈이 의지를 방대하게 논한 것은 주의설(voluntarism)을 강조하기 때문이며, 이런 입장은 후기 개혁주의 정통신학에서 그대로 계승된다. 하나님의 형상의 근본적인 기능은 영혼의 지도자이고 통치자인 오성과 분명한 위계질서에서 정리된 의지이다. 의지는 언제나 그것의 소망에서조차 오성의 판단을 (기다리면서) 오성의 명령을 염두에 두고 있다.. Inst., I.15.7. 하나님의 형상은 인간이 범죄했을 때 파괴되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손상되었으나, 칼빈은 사람의 본성적인 재능들을 자연적 재능과 초자연적 재능으로 날카롭게 구별함으로써 하나님의 형상이 전적으로 소멸되지 않았다고 강조한다. 그러므로 선과 악을 구별하는 이성은 자연적 선물이기 때문에, 이것은 완전히 말소될 수 없다. 그러나 이성은 부분적으로 약화되고 부분적으로 부패되어 이것의 잘못된 파괴가 나타난다. 그러므로 여기서 칼빈은 일반 은총을 말하며 이 일반 은총의 근원도 성령이라고 한다.. Inst., 2.2.14-16. 칼빈은 이성은 우리의 본성에 고유한 것으로, 우리를 동물과 구별해 준다고 하면서, 이것을 하나님의 일반적인 은총(generalem Dei gratiam)이라고 하였다. (2.2.17) 칼빈에 따르면 오성은 부패하고 기형적인 모습이지만, 지상의 일, 즉 사회 생활을 해 나가는데 필요한 공정성과 질서에 대한 보편적인 생각, 그리고 법의 필요성과 법의 원칙을 이해한다.(Inst., 2.2.13) 그리고 학술과 공예를 배울 인간의 능력은 인간성에 선천적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독특한 은총(peculiarem Dei gratiam)이다.. 칼빈은 특별 은혜(special grace)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한다. 기독교 강요 2.2.6에서 그 용어는 거듭난 선택자들에게 임하는 은혜를 뜻하지만, 인간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데 적합한 재능, 성품, 영웅 기질같은 은사를 가리키는 경우가 더 많다.(2.2.17, 2.3.4) 칼빈은 거듭나지 않은 인간들이 철저하게 사탄적이지 않는(2.2.11) 이유는 하나님이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고 말한다.(참조, Inst., 3.7.; 3.14.2) 사람 속에 선천적으로 있는 이성(ratio)과 오성(intellegentia)의 일반적인 이해력(universalem comprehensionem)은 보편적인 것이다.(Inst., 2.2.14) 칼빈은 하나님의 영을 진리의 유일한 원천이라고 인정한다면, 진리가 어디에서 나타나든 우리는 그것을 결코 거부하거나 멸시하지 안된다고 하였다.(Inst., 2.2.15) 이와 같이 칼빈은 타락한 인간에게서 이루어지는 질서 유지와 학문 연구 등을 하나님의 영에 의해 우리에게 전달되는 일반 은총으로 보았다.
그러면 타락한 인간의 의지에 대한 성령의 역할은 무엇인가? 참으로 의지도 타락으로 전적으로 노예화되었다. 오성과 비슷하게 의지도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분리될 수 없기 때문에, 소멸되지는 않으나 올바른 것을 추구할 수 없을 정도로 사악한 욕망에 매여 있다. 자연법은 일반적인 원칙에 대한 안내자 역할은 할 수 있으나, 구체적인 상황에서는 선을 수행하게 만드는 기능을 수행하지 못한다. 그런데 선을 행할 수 없이 타락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 불신자들 가운데서 덕이 나타나고 있는데, 칼빈은 이러한 덕을 성령의 역사로 설명한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2권에서 사람의 의지에 대한 논의에서 지속적으로 중생의 역사에 대한 성령의 사역과 불신자들에 대한 성령의 역사를 구별한다. 우리는 중생을 통하지 않고서는 결코 성령을 가질 수 없으므로, 우리가 본성으로부터 가지는 것은 무엇이나 육적인 것으로 영적 것과 대조된다.(Inst., 2.3.1.) 그러므로 중생하지 않은 인간에게서 나오는 것은 오직 정죄받을 일밖에 나올 수 없는데, 실제적으로 불신자들도 선을 행한다.
칼빈은 불신자가 행하는 선을 본성을 정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내적으로 억제하는 하나님의 은혜에 귀속시킨다.((Inst., 2.3.3.) 칼빈은 이것을 특별한 은혜라고 한다. 이러한 것들은 본성의 공통적인 선물들이 아니라 사악한 사람들 위에 하나님께서 수여하시는 그 분의 특별한 은혜이다.((Inst., 2.3.4.) 이 점에서 칼빈이 성령에 대하여 말한 것은 중요하다. 칼빈은 성령의 세 가지 사역뿐만 아니라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사역을 말하는 데서도 삼중적인 구별을 사용한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역사하시는 방식은 세 가지이다. 첫째로 우리 모두는 그를 힘입어 움직이고 살아간다.(행17:28) 그러므로 여기서 모든 행동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나온다는 결론이 나온다. 둘째로 그가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바에 따라 특별한 방식으로 사악한 자들을 강요하시고 조종하신다. --- 셋째로 그가 선택한 자들에게 특별한 성화의 성령에 의해 통치하시는 경우를 들 수 있다.. Comm. Isa.10:5.
밀너는 아주 조심스럽게 하나님의 두 번째 사역인 사악한 자에 대한 역사를 성령의 사역으로 언급하고 제네바 요리 문답을 그러한 사례로 제시한다. 하나님은 성령에 의해 그들(사악한 사람들과 마귀들)을 통치하지 않으시지만, 그는 재갈과 같이 그의 능력으로 그들을 억제하여, 그들은 하나님이 허용하지 않는 한 움직일 수 없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이제 그들을 자신의 의지의 사역자로 삼으신다.. Milner, Calvin's Doctrine of Church, 41. 불경건한 자들은 성령과 역시 하나님의 비밀한 충동(arcano Dei instinctu)에 의해 하나님의 의지를 행하도록 억제당하고 제지당한다. 칼빈은 이와 같이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의 이성과 의지에서 나오는 모든 선한 것들을 성령의 역사에 귀속시켰다. 타락한 인간의 본성에서는 선한 것이 나올 수 없으나, 성령께서 인간에게 학문 연구와 여러 예술 활동에 필요한 재능을 주실 뿐만 아니라 악한 의지를 억제하여 선한 행동을 하도록 인도하신다. 그러므로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든 사람들에게 이루어지는 성령의 보편적인 일반 은총의 역사이다.
볼트는 칼빈이 성령의 우주적 활동을 강조한 이유를 성령의 신성의 증명, 하나님의 선물의 향유. 볼트는 칼빈이 창 1:26의 주석에서 하나님의 형상이 지상에 대한 사람의 지배와 관련된다는 존 크리소스돔의 이념을 명백하게 거부한다는 것을 주목하면서, 하나님의 선물들의 올바른 향유가 창세기 1:28절에 있는 소위 문화 명령보다 더 강조되고 있다는 것이 주목되어야 한다고 한다.(Spiritus Creator, 24). , 하나님의 인간 정죄에 대한 변명 불가능성 등을 지적하면서 성령의 우주적 활동의 결과인 정치 질서의 수립은 지상에서 인간의 활동이고, 시민 정부 그 자체에 구원적 혹은 메시야적 역할을 귀속시키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Bolt., "Spiritus Creator," 24-26.
이와 같이 칼빈에 따르면 창조의 영역에서 성령의 우주적이고 보편적인 활동은 성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자연 세계와 인간 세계에서 질서를 보존하고 범죄를 억제하는 활동이다. 칼빈은 일반 은총을 통하여 인류의 공통적인 삶의 토대가 구축되는 것을 인정하지만, 일반 은총을 통한 문화 건설이 구원론적인 가치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입증하였다.. 이러한 칼빈의 일반은총론은 아브라함 카이퍼와 헤르만 바빙크에 의해 발전되었으며, Herman Kuiper가 연구하였다. 아브라함 카이퍼의 견해는 칼빈주의, 김 기찬역(크리스찬 다이제스트사, 1996)에 나타나 있고, 바빙크의 견해는 일반은총론, 차 영배역(총신대출판부, 1980)를 보라. Herman Kuiper의 견해는 Calvin on Common Grace(Grand Rapids: Smither Book, 1924)를 보라. C. Van Til은 Westminster Theological Journal vol 8 no 1, pp.39-60, no 2, pp.166-200, vol 9 no 1, pp. 47-84 등에 연속적으로 발표한 논문 Common Grace에서 카이퍼, 바빙크, 헤페 등의 견해를 비판하고 칼빈의 견해를 지지한다. Henry C. Vantil은 칼빈주의 문화관에서 카이퍼의 일반은총론과 스킬더의 세속문화에 대한 은총을 거부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문화관을 양극단으로 비판하고 일반 은총의 문제를 반위관계, 그리스도의 왕직, 세상에서 기독교인의 사명, 그리고 기독교인의 세계관의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논의하면서, 칼빈의 견해에 귀를 기울였다.( Henry C. Vantil 칼빈주의 문화관, 이 근삼역(성암사, 1984), 337-3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