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복음과 "하나님의 의"
메르시어
2023. 5. 4. 21:27
복음과 "하나님의 의"
2014-03-23 17:44:05
성경은 "하나님의 의"에 대하여 말하면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하며 또한 율법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고 말하고
나아가 이 하나님의 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차별없이 미친다고 하였다.
여기서 먼저 핵심 용어인 "하나님의 의"가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의"란 언약적 용어이다. 즉 언약관계에 있는 쌍방이 언약적 의무를 다하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맗하는 "의"이다. 그러므로 "의"라는 말은 이미 언약적 관계를 전제한다
그러니까 "의"란 결국 언약적 신실함, 언약 관계에 충실하다는 것을 의미하고
의롭다는 말은 언약에 신실한 상태를, 그리고 의인은 언약에 신실한 사람을 기리키는 것이다.
반대로 "불의"는 언약에 충실하지 못함 곧 언약을 배반하거나 파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사람과 언약을 맺으셨다는 사실을 전제하는 것이며
하나님편에서 이 언약 관계에 신실하심을 가리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며 불의가 전혀 없으시다.
그러나 사람은 의로운 자도 있지만 불의한 자도 있고 의로울 때도 있지만 불의할 때도 있다.
"의" 는 하나님이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것이며 동시에 사람의 의무인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사람은 처음부터 언약적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적 요구로 주어진 것이 바로 율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킬 때 그는 의로운 자이며 반대로 율법을 어길 때 그는 불의한 자가
되는 것이다. 율법은 언약을 전제로 주어진 언약법이다.
성경이 밀하는 율법은 언약과 무관한 윤리나 도덕법이 아니다. 율법은 언약을 유지 발전하기
위하여 사람에게 요구된 언약법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언약을 맺었기 때문에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언약을 위하여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사람도 거룩해야 하기 때문이다.
율법은 거룩하신 하나님과 사람이 언약을 맺음으로 당연히 발생하는 사람의 언약적 의무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의 의" 란 율법을 지켜 행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의"란 무엇인가? "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편의 언약적 의무인데
그것은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고
이스라엘에 국한해 보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는 것은 사람과 맺으신 언약 관게를 유지,발전시키시면서
언약 관계에 있는 사람의 존재와 활동에 의미를 부여히시고 보장하시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 이고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복음에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 나타났는데
사람의 범죄로 언약이 훼손된 상뢍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의란 바로 언약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요약되는 시건이 복음 곧 기쁜 소식이 되는 이유는
바로 그 사건이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으로 하나님과 사람사이에 훼손된 언약 관계가
회복되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다고
말한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언약 관계가 훼손되어 하나님과 사람은 서로 원수가 되었는데
이제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화목제물로 세우셨다고 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율법외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이고 율법과 선지자에게 증거를 받은 하니님의 의인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의가 율법외에 나타났다고 말한 것인가?
원래 하나님과 사람간의 언약관계는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유지 발전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언제나 의로우시고 항상 신실하심으로 언약의 유지 여부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린 것이다. 사람이 언약법인 율법을 지켜 행하면 언약 관계는 유지 발전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이 율법을 범하였고 율법을 지켜 행할 능력도 상실한 것이다.
그래서 깨어진 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님께 달리게 된 것이다.
그래서 율법외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은 사람이 율법을 지킴으로 언약이
회복될 길이 없으므로 이제 언약을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이 나타났으니
이것이 기쁜 소식, 곧 복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기쁜 소식은 율법과 선지자 곧
구약성경이 예언하고 고대하던 것이었다.
그래서 성경은 복음은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신 것이라고 말한다.
즉 하나님이 사람의 죄를 용서하심으로 언약 관계를 회복하시는 것인데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을 복음을 통하여 나타내려 하신 것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말씀이 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는데 이는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려함이라는 말씀이 그것이다.
이 말은 복음은 기쁜 소식, 좋은 소식이지만 반드시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복음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 복음은 기쁜 소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심판의 소식이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자기의 의로움을 나타내신 것은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여 하심이다.
이렇게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 나타났는데 이 하나님의 의는 반드시 사람의 믿음을 요구한다.
그래서 복음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시는데 이것이 바로 "이신칭의"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의 의는 사람의 믿음을 요구하며 사람의 믿음이 사람의 의가 되는 것인가?
하나남의 의는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이므로 당연히 사람의 언약적 반응을 요구하는 것이다.
바로 사람의 이 언약적 반응이 믿음인 것이다.
그리고 사람의 믿음이 언약적 반응이라는 말은 믿음은 사람에게 언약 당사자로서
해야하는 언약적 의무인 것이고 그러므로 믿음은 "사람의 의"로 간주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사람에게 율법의 행위를 요구하지 않고 오직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대인에게나 이방인에게나 동일하게 오직 사람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는다
다른길은 없는 것이다.
그러나 믿음은 율법을 반대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께어진 관계의 회복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지 믿음이
율법을 반대하거나 폐기하는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단 믿음으로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는
신실하게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이다. 율법을 지키지 않고는 회복된 관계도 유지되지 않는 것이다.
왜냐하면 언약이란 처음부터 사람이 율법을 지켜 행함으로 유지 발전 되도록 만들어진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복음을 말하고 이신칭의를 말한 후에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강조하였고 예수님도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러 왔다고 말씀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