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20장 다시 가데스로
민수기 20장 다시 가데스로
Tolle Rege/민수기
2011-06-15 14:46:54
20장은 이스라엘 백성이 신광야에서 가데스에 도착한 것을 말하며 그 때가 첫째 달이라고 한다. 19장과 20장사이에는 출애굽1세대가 40여년에 걸친 광야의 방황의 시간이 생략되어 있다. 성경이 아예 그 시간에 대하여 침묵하고 있음은 그 세월이 허무한 시간이었으며 하나님나라에 낭비된 시간임을 시사하는 듯하다. 이제 40년전 가데스에서 불순종하던 20세이상의 출애굽 1세대는 이미 대부분 죽었을 것이고 출애굽 2세대가 출애굽 1세대가 그랬듯이 약속의 땅 앞에 다시 서게 되었다.
미리암의 죽음이 간단히 보고되고 있다. 출애굽 1세대가 약속의 땅 앞에 섰을 때 미리암의 죽음이 기록된 것은 불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약속을 받지 못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어서 다시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보고된다. 출애굽2세대도 여전히 출애굽1세대가 보였던 불순종에서 자유하지 못함을 보게된다. 역시 물 문제로 인하여 모세에게 애굽에서 인도하여 죽게 만들었다는 불평이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하라고 명하셨다. 모세는 이스라엘의 반역에 대하여 분노하였고 반석을 지팡이로 두번쳐서 물이 나오게 하였다. 하나님은 모세의 이런 행동에 대하여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아니하였다고 판단하셨다. 그래서 그들, 모세와 아론은 약속의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지 못할 것이라고 선고하셨다.
아마도 모세는 그치지 않고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반역에 인내의 한계를 느끼고 분노했던 것 같다. 그가 반석을 향하여 명령하여 물을 내라는 하나님의 지시를 어기고 반석을 두번 지팡이로 내려친 것은 그의 이런 분노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모세는 이렇게 패역한 이스라엘을 언제까지 참을 것이며 그들을 계속 인도하여야 하는지, 이런 무가치한 자들에게 또 물을 내어 먹여야 하는지 회의가 들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들을 참으시고 이들을 통하여 당신의 약속을 이루시려는 뜻을 분명히 보이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지도자로서 모세는 이스라엘을 참고 인도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룰 책임이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한것은 하나님에 대한 그의 신뢰가 부족함을 나타낸 것이고 그 결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언약적 신실하심)을 드러내지 못한 것이다. 특별히 지금 모세가 물을 먹여서 살릴 가치도 없는 무리들로 여긴 자들은 출애굽2세대로서 하나님의 약속에 순종하여 가나안에 들어갈 자들인데 그들을 그렇게 무가치한 무리로 여긴 것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가리운 행위였다. 하나님에 의하여 세워진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하나님의 언약백성을 그렇게 대한 것은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적 행위로 간주된 것이다.
에돔이 이스라엘의 지나감을 거절한 사실이 간단히 보고된다. 이스라엘은 에돔을 형제라고 여기고 하나님이 자신들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신 것을 말하고 지나가길 호소했지만 거절되었다. 결국 이스라엘은 에돔을 지나가지 못하고 돌아갈 수 밖에 없었다. 이스라엘이 가데스를 떠나서 호르산에 이르렀을 때 아론의 죽음이 임박하였다. 아론의 죽음은 므리바에서의 불순종의 결과로 약속의 땅에 들어갈 수 없게된 결과였다. 아론의 대제사장권은 그의 아들 엘르아살에게 이양된다. 미리암의 죽음에 이어 아론의 죽음은 출애굽 2세대가 약속의 땅을 눈 앞에 둔 시점에서 일어났고 이 사실은 불순종하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진리의 확증이었다.
민수기 20장
닥치고 성경/민수기
2019-10-23 21:45:55
민수기 20장
20장은 미리암의 죽음으로 시작해서 아론이 죽음으로 끝나는데 이것은 많은 세월이 흘렀고 출애굽1세대가 광야에서 거의 소멸되었음을 암시한다. 13장에서 출애굽1세대가 가데스에 이르고 거기서 정탐꾼 사건이 벌어졌는데 20장에서 출애굽2세대는 다시 가데스에 이르렀다. 출애굽1세대가 소멸되는 40년동안 출애굽2세대가 준비된 것이고 이렇게 준비된 출애굽2세대는 다시 그들의 부모 세대가 실패했던 가데스로 돌아온 것이다. 물 문제로 다시 불평이 터져 나왔는데 불평을 한 자들이 출애굽1세대가 아니고 2세대라서 그런지 광야의 고난스런 삶은 불평하지만 애굽이 좋았다던지 애굽으로 돌아가자든지 하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애굽으로 돌아가자는 말만 나오지 않는다면 물로 인한 그들의 원망은 인간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래서인지 여호와께서는 이들의 원망에 진노하지 않으시고 모세와 아론에게 반석에게 명령하여 물을 내게 하여 그들이 마시게 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모세는 회중들을 향해 분노하며 패역한 그들에게 물을 내어 마시게 하여 그들을 살게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투로 말한다. 아마도 모세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에 크게 낙심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어쩌면 출애굽1세대의 실패를 보고도 여전히 나아진게 없는 2세대를 보고 절망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런 점에서 모세와 아론의 분노는 인간적으로 이해할 만 하다. 그러나 그들의 말과 태도에 대한 여호와의 평가는 달랐다. 여호와가 보시기에 그들의 태도는 여호와를 믿지 않은 것이요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여호와의 거룩함을 나타나지 않은 것으로 간주되었다. 여호와의 평가에 비추어 상상해보면 아마도 모세는 과연 여호와께서 이런 패역한 자들을 이끌어 가나안에 들어가게 하실 것인가? 과연 하나님은 끝까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실 것인가에 대한 의구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모세가 보기에 출애굽2세대도 여전히 그들의 부모 세대와 다를 바 없이 패역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세우신 종이요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모세와 아론의 이런 태도는 여호와를 믿지 않는 것이요 여호와의 신실하심을 드러내지 않고 가리운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아론이 이스라엘 회중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들일 자격이 없다고 판결하셨다. 여호수아와 갑렙은 가나안에 들어가지만 모세와 아론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이 두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오직 하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이다. 믿음이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신실한 반응이며 나아가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드러내는 신실함이다. 믿음이 없이는 누구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믿음을 요구하며 하나님의 약속은 사람의 믿음을 통해 성취된다는 엄중한 진리가 여기에 나타나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