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고

중생과 회심이 서로 분리되는 구원의 서정일까?

메르시어 2023. 5. 2. 10:18

중생과 회심이 서로 분리되는 구원의 서정일까?

2014-01-16 15:10:27


 

1.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아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막1:15)

2.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성경에 유명한 이 두 구절을 현대 조직신학의 중생론의 틀로 바라보면 

1번은 하나님나라는 인간의 회심을 요구한다는 것이고

2번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려면 중생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1번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면

2번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시는 것이 무엇인가를 말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1번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인간의 관점에서 말한 것이고

2번은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한 조건을 하나님 편에서 말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1번과 2번은 관점의 차이일 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필요한 동일한 영적 사건을 말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기 위하여 하나님 편에서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사람편에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 이 두가지는 동일한 영적사건을 다룬 관점에서 표현한 것이다.

하나님편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둡나게 하시는 것이  인간 편에서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는 것이다.

 

그렇다면

 

현대 조직신학에서 중생과 회심을 구분하여 두개의 다른 구원의 서정으로 말하는 것이

과연 성경의 가르침을 잘 반영하는 것인지 생각해 보게된다.

예로 들은 증거 본문에 의하면

중생과 회심은 구별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의 다른 관점일 뿐이므로

중생과 회심은 별도의 구원의 서정으로 볼 것이 아니라  동일한 구원의 서정인 것이다.

인간이 회개하고 믿는 과정 자체가 하나님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는 과정인 것이다.

 

결국

 

예수님이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3:5)

고 말씀하신 것은 그에게 하나님나라의 영적인 본질을 제시하신 것이고 동시에 그가 아직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못한 자이므로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함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러나 이 말씀이 사람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이 하시는 신비한 일이므로 
사람이 할 일이 아무것도 없음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해서 니고네모에게 자신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자임을 깨닫고 
회개하고 복음을 믿음으로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것을 요구하신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맹인 치유사건에 나타난 성경이 말하는 회심

2014-01-16 16:07:52


누가복음 18:35-43

 

35 여리고에 가까이 가셨을 때에 한 맹인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

36 무리가 지나감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그들이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가신다 하니

38 맹인이 외쳐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39 앞서 가는자들이 그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그가 가까이 오매 물어 이르시되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르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따르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예수님께서 소경을 치유하신  사건은 여러번 있었지만 특별히 이 사건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고

동일한 사건이 마가복음 10:46-52, 마태복음 20:30-34 에 기록되어 있다. 공관복음 모두 이 사건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는 것은 그 만큼 많은 치유사건중에 이 사건이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음을 

반영한다.

 

여기보면 맹인이 예수님이 자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였을 때 예수님이 그의 부르짖음을 못들으셨을리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하도 크게 

부르짖으므로 앞서 가는 자들이 잠잠하라고 그를 꾸짖기 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에수님은 못 들은척하고 그를 지나가셨다. 

그런데 사람들이 잠잠하라고 꾸짖음에고 불구하고 그는 더욱 크게 소리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

그제서야 예수님은 ( 마치 마지 못하듯이) 머물러 서서 그를 데리고 오라고 명하신다.

그리고  그에게 " 네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는 다소 엉뚱한 질문을 하신다.

그가 무엇하여 주기를 예수님이 몰라서 물으셨을리가 없다.

당연히 그는 보기를 원한다고 대답하였다.

예수님은 그의 대답을 듣기를 원하신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고 선포하셨고 그는 곧 보게 되었다.

 

이 시건에서 우리는 분명히 예수님은 맹인이 부르짖으며 절박하게 나아오기까지 기다리셨음을 

발견한다. 그리고 그에게 무엇하여 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심으로써 그의 절박함과 믿음을 

다시금 확인하신 것을 본다. 

맹인은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사실을 깊이 안타까워 하였고 보고자 하는 절박함을 가지고 있었으며

다윗의 자손이신 예수님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실 분이라고 굳게 믿고 있었다.

이것이 맹인이 사생 결단하고 예수께 부르짖고 나아온 이유이다.

 

주님은 맹인이 이렇게 절박하게 부르짖으며 나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셨고 마침내 그의 믿음을 

인정하시며 그를 고쳐주셨다.

우리는 이 맹인 치유사건에서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를 선명하게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보지 못하는 자임을 깊이 인식하고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이며

자신의 눈을 뜨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 뿐이심을 믿고 나아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회개와 믿음이고

이 회개와 믿음을 통하여 드디어 눈이 뜨이고 하나님나라를 보게되는 것이 아닌가?

가나안 여자 사건에 나타난 성경이 말하는 회심

2014-01-16 16:41:50


마 15:21-28

 

21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22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질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니이다 하되

23 예수는 한 말씀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2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25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26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27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28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예수님 이방 땅인 두로와 시돈으로 가신 이유가 무엇일까? 거기서 가나안 여자를 만날 것을 미리 알지 

못하셨을리가 없다. 어쩌면 예수님은 가나안 여자를 만나러 그것으로 가셨을지 모른다.

과연 가나안 여자가 예수님께 나아왔지만 예수님은 못 들은 척 한만디도 대답하지 않으셨다.

못들으셨을리가 없다. 일부러 대답하지 않으신 것이다. 그 여자가 얼마나 소리를 지르는지 제자들이 

견디다 못해 예수님께 그여자를 조치해서 보내시라고 청하였을 정도이다.

 

그 여자는 자기 딸이 흉악하게 귀신이 들렸있었고 그 일로 그 여자는 절박한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여자는 예수님을 주 다윗의 자손이라 부르며 예수님이 자기 딸을 고쳐주실 분이라고 믿었다.

제자들의 말에 예수님은 자신은 이방 여자와는 아무 상관도 없다고 냉정하게 말씀하셨다.

아마도 이 말도 여자가 들으라고 말씀하신 것 같다.

그 여자는 그 말에도 불구하고 예수께 와서 절하며 주여 나를 도우소서라고 간청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냉정하게 심지어는 모욕적에게도 자녀들의 떡을 개들에게 던질 수 없다고 하시며

그 여인의 간절한 호소를 거절하는 듯한 말을 하신다.

그러자 이 여자는 놀랍게도 주님의 말씀을 받아치듯이 개들도 주인의 부스러기는 먹을 수 있다는

말을 하였고 주님은 이 말을 기다리셨다는 듯이 "여자여 내 믿음이 크도다" 리고 선포하신다.

그리고 즉시로 그 여자의 딸을 고쳐주셨다.

 

자신의 딸이 귀신들린 것을 알고 절박한 심정으로 부르짖는 여자

그리고 다윗의 자손 예수가 바로 그 귀신을 쫒아내실 분이라고 믿고 나아오는 여자

그리고 예수님의 의도적인 냉대에도 불구하고

결코 예수님의 도움심을 포기하지 않는 여자

이 여자의 믿음이 크다고 에수님은 인정하시고 즉시 그의 소원대로 그의 딸을 고치시는 예수님

 

우리는 이 사건에서 회개와 믿음이 무엇인지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자신이 죄인임을 알고 절박한 마음으로 부르짖는 것이며

자신의 죄의 문제를 고치실 분이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이심을 믿고 

사생 결단하고 그에게 나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성경이 요구하는 회심이 아닐까?.

 

소요리문답- 효력있는 부르심

2014-01-19 18:18:17


30문: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신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신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1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2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1) 막 16:15; 롬 10:17; 고전 2:12-16; 엡 2:8; 빌 1:29; 벧전 1:23 

2) 요 15:5; 고전 1:9; 엡 3:17; 엡 4:15-16; 벧전 2:4-5

 

31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신께서 하시는 일로서,1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2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3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4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5

우리를 설복(說服)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6

 

1) 엡 1:17-18; 살후 2:13-14; 딤후 1:9 

2) 행 2:37 

3) 행 26:18; 고전 2:10, 12; 고후 4:6 

4) 신 30:6; 겔 36:26-27; 요 3:5; 딛 3

5) 사 45:22; 마 11:28-30; 계 22:17 

6) 요 6:44-45; 행 16:14 

 

 

30문: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성령께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하십니까?

 

  답: 성령께서는 우리를 효력 있는 부르심으로 부르셔서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켜 주시고1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심으로2 

그리스도의 값 주고 사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하여 주십니다. 

 

1) 막 16:15; 롬 10:17; 고전 2:12-16; 엡 2:8; 빌 1:29; 벧전 1:23 

2) 요 15:5; 고전 1:9; 엡 3:17; 엡 4:15-16; 벧전 2:4-5

 

 

31문: 효력 있는 부르심이 무엇입니까? 

 

  답: 효력 있는 부르심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하시는 일로서,1

우리의 죄와 비참함을 깨닫게 하시고,2

우리의 마음을 밝게 하여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고,3

우리의 의지를 새롭게 하셔서,4

우리로 하여금 

복음 가운데 값없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5

우리를 설복(說服)하여 믿게 하시는 것입니다.6

 

1) 엡 1:17-18; 살후 2:13-14; 딤후 1:9 

2) 행 2:37 

3) 행 26:18; 고전 2:10, 12; 고후 4:6 

4) 신 30:6; 겔 36:26-27; 요 3:5; 딛 3

5) 사 45:22; 마 11:28-30; 계 22:17 

6) 요 6:44-45; 행 16:14 

 
 

이 문답에서 눈여겨 볼 것은 효력있는 부르심의 목적이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고

나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하시는 것이란 점입니다.

이 말은 효과적인 부르심은 믿음과 그 믿음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연합

으로 완결되는 것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연합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지며

그리스도의 의로움이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입니다.

 

효력있는 부르심은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리스도를 알게하셔서 그리스도를 영접하도록
우리를 설득하여 복종케하여 믿게하신다
결국 효력있는 부르심은 우리의 의식에 작용하여
믿음에 이르게 하시는 것임을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우리가 성령이 하시는 일인 효력있는 부르심은
그것을 중생이라 부르든지 아니면 회심이라 부르든지 간에
그 부르심을 듣는 자가 믿음에 이르기 까지, 
그래서 그리스도와 연합되기 까지는
그 부르심은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님을 알게됩니다.
이것이 개혁주의 신앙고백입니다.
 
하나님의 효력있는 부르심이 우리 안에 믿음을 일으키는데 있어
듣는 자의 간절한 반응이 나타나며 믿음에 이르는데 시간이 걸릴 수 있다는
것이 이상한 일인가요? 
이것이 이상한 일로 여겨지고 
오히려 논쟁이 된다는 사실이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닌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