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창조와 구원의 목적- 박기완

메르시어 2023. 5. 1. 12:18

창조와 구원의 목적- 박기완

2013-11-19 18:44:09


  오늘날 수많은 기독교인들의 최대의 관심사는 구원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구원을 '얻는 데'에만 관심을 집중시킬 뿐이지,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셨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있다. 사실 구원은 우리의 능력 밖에 있다. 그것은 오로지 하나님의 일이지 우리의 일이 아니다. 그리고 그 구원은 오늘 내가 얻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천 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다 이루어 놓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관심사는 '구원을 얻는 데'에 있을 것이 아니라, '구원의 목적'이나 '구원 후의 삶의 전개' 등에 있어야 마땅하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죽어서 천국 가게 하려고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그렇지 않다. 만약에 그것이 구원의 목적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아예 인간을 이 땅에 만드실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그냥 영혼의 상태로 천국에다 만드셔서 그대로 두시면 되는 것이다. 오늘도 신앙생활을 하면서 죽은 후 천국 가는 것이 지상 최고의 목적이며 선()인 것처럼, 또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인 양 오해하는 성도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다. 죽어서 천국 가는 것이 우리의 최고의 목표요 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이라면, 하루라도 빨리 죽는 것이 제일 좋은 일인 셈이다.

 

  그러나 성경에 보면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성부 하나님께 기도하시는 내용 중에 이런 것이 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17:15). 그리고 또 오래 사는 것이 복이라고 하였고(20:12) 벌 중에 가장 큰 벌을 죽음으로 묘사하고 있다(6:7). 그리고 이 세상 그 어느 누가 빨리 죽기를 진심으로 바라겠는가? 아무리 믿음이 좋은 성도라 할지라도 죽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님께 살려 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본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현상이나 원리에 비추어 보더라도 빨리 죽어 천국 가는 것이 구원의 목적은 아니다.

 

   그렇다면 구원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하나님께서는 그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이시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하셨는가? 우리는 구원을 '회복시키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당신이 창조하신 대로의 본연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이 바로 구원이라고 말한다. 그렇다. 본래의 모습을 되찾는 것이 바로 구원을 얻는 일이다. 그렇다면 그 본연의 모습은 과연 어떠했는가?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왜 그 본연의 모습으로 우리를 되돌려 놓으시려 하는가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이 크게 두 가지로 나온다. 그 하나는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게 하는 데에 있었고(1:28-31), 다른 하나는 하나님 당신을 찬송하고 섬기게 하는 데에 있었다(43:21, 1:12, 4:10). 이것이 바로 창조의 목적이며 동시에 구원의 목적이기도 하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이 가운데 하나님을 찬송하는(, 섬기는) 일은 이론적으로 매우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이 세상을 다스리는 일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는 듯하다. 이 세상을 다스린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다스리라'라는 번역보다는 '보살피라'라는 번역이 더 좋은 번역일 것이다.) 쉽게 말해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시기 전에 이미 다 만들어 놓으신 모든 물질을 누리며 사는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는 이 누리며 사는 삶에 대해서는 잘 모르고 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오늘날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대체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어떤 희생과 고통을 동반하여야만 되는 일인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그것을 아주 어려운 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경우에 따라서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인생의 대부분이 그렇게만 이어진다면, 그것이 과연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시고 또한 구원하신 참된 목적이겠는가?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심술궂은 노인네 정도 밖에는 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행복하게 잘 살라고 구원하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실 구원이란 것이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물론 행복하게 잘 사는 것이 무엇을 어떻게 하며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는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하여 그 어떤 기준은 있게 마련이다. 하나님께서는 일반은총이라는 것도 우리 모두에게 주시며,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 일반적인 기준과 상식 등도 모두 주고 계시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기준이나 상식에 비추어 맞으면 대체로 맞은 것이다. 물론 특별한 경우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기준을 마련하시어 우리로 하여금 지키도록 요구하시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일반적인 원칙에 따라 우리도 살아가게끔 되어 있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행복의 개념이 여기에도 그대로 통하게 된다.

 

  우리 한국의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적어도 이론적으로는 잘 알고 있으므로 더 강조할 필요는 없겠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행복'을 또 너무 강조하다 보면, 이제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해서는 무관심해져 버릴 테니 이도 위험한 일이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대한 첫 언급은 바로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일 것이다. 선악과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나타내는 것이며,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이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라고 만들어 놓으신 것이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을 경우 인간은 분명히 사탄의 노예가 되어 불행해질 것을 하나님께서는 잘 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크게 보아서는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신 것도 결국에는 인간으로 하여금 행복하게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임을 알 수 있다.

 

  이 부분은 사실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이러한 생각은 금방 '인본주의'라는 낙인이 찍히기 십상이다. 오늘날 기독교계에서는 '인본주의'는 철저히 낙인찍혔으며, '신본주의'만이 유일한 원리로 남아 있다. 즉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오로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당신을 섬기게 하는 데에만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행복 따위는 생각할 여지가 없다. 이것은 다시 한 번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주장이다. 만약에 하나님 당신을 섬기게 하는 데에만 창조의 목적이 있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얄궂은 분이심에 틀림없으며 아주 이기적인 분임에 틀림없다. 그리고 섬김을 받는 데에 무척 혈안이 되어 있는 분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참으로 수준 낮은 하나님이 될 수밖에 없다. 성경에도 보면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17:25)라고 분명히 나와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는 일로서 제일로 치는 예배만 해도 그렇다. 구약에서는 오늘의 예배가 바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이었는데, 이 안식일에 대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길,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2:27)라고 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이런 말을 한다. "하나님을 섬기고 살아야만 인간이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다." 옳은 말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문제인가? 그 우선순위가 문제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우선이며, 인간의 행복은 그 결과로서 주어지는 것이다 하는 생각과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안전한 길을 열어 두셨는데 그 길은 바로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다 하는 생각 사이에 그 어느 것이 옳은가 하는 게 최종적으로 남는 문제이다. 이 문제를 따지는 것은 사실 좀 어려운 일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전체적인 내용은 거의 같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모두 인간의 행복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러나 이 두 생각은 현재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각각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라는 틀을 쓰고 서로를 용납하지 못하고 있다.

 

  나는 이 문제를 좀 다른 각도에서 보고자 한다. 구원론과 연관시키어 이 문제를 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인본주의는 잘못되었고, 이 인본주의를 따르면 지옥 가는 것으로 생각하기가 쉽다. 그러나 우리가 천국 가고 지옥 가는 것은 하나님의 영역이지, 우리가 신본주의를 따르느냐 인본주의를 따르느냐 하는 문제하고는 전혀 관계가 없다. 우리의 구원은 이미 하나님의 기쁘신 뜻에 따라 창세전에 예정되었으며 이천 년 전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이루어진 것이다.(이에 대해서는 본인이 쓴 '사탄에게 주신 원복음'을 참고하시기 바람) 그렇다면 이 문제는 무엇하고 관련이 있는가? 이것은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다. 우리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데에 있어 어떤 마음가짐을 가지고 또한 어떤 태도로 살아가야 하는지와 관련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의 구원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그러므로 이것을 마치 구원과 직결된 문제인 것처럼 너무 예민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이 세상을 바르게 살아가자면 하나님께서 이 땅에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 그리고 또 죄를 범한 후 타락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을 제대로 이해해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는 이 자리에서 창조와 구원의 목적을 생각해보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을 그 창조의 목적이라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을까? 그렇다면 그 말씀은 무슨 말씀이었는가? 위에서도 말한 바 있지만, 그것은 바로 우리로 하여금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라는 말씀이었다(1:28-31). 우리는 이것을 주로 '문화명령'이라는 신학용어로 표현하고 있는데,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의 목적'과는 좀 동떨어진 것으로 생각하게끔 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명령이라는 것은 어떤 목적을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문화명령은 무슨 목적을 위한 것인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그 목적인가? 이것은 이상하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목적인데, 그 방법이 만물을 다스리는 것이란 말인가?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우리의 생각을 좀 바꾸어서, 만약 이 문화명령의 목적이 우리 인간의 행복이라고 생각한다면 어떨까? 아주 자연스럽지 않겠는가? 우리 인간의 행복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미리 다 만들어 두신 만물을 우리에게 주시고 또한 다스리라고 하신 것이 되니, 이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해석이 된다.

 

  만약 이것을 문화명령이라 하지 않고 창조목적이라고 그 용어를 바꾸어 표현한다면 어떨까? 아주 분명히 창조의 목적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우리 인간이 만들어놓은 여러 가지 교리들에 너무 얽매여 있는 듯 한 느낌이 있다. 그리고 얽매여 있을 뿐만 아니라, 또 오해하고도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소요리 문답의 제 1문이다.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는 이 질문은 말 그대로 사람의 삶의 목적이지,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아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것을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으로 오해하고 있다. 그러므로 창조목적을 만물을 다스리며 행복하게 살라고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 인간의 편에서는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 당연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 길만이 우리가 행복해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은 그것과는 다를 것이다.

 

  이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우리 인간의 부자관계를 생각해 보도록 하자. 부모가 자식에게 바라는 것과, 자식이 부모에 대해 가져야 할 태도(제일 되는 목적)는 대체로 서로 다르다. 자식은, 그가 훌륭한 자식일수록, 부모를 섬기는 것을 제일 되는 도리로 생각한다. 그러나 부모님은 그렇지 않다. 오로지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랄 뿐이다. 이 두 가지 일이 서로 상충될 때에 부모님의 입장과 자식의 입장이 확연히 드러난다. 보기를 들어 병든 부모를 섬기기 위해 자식이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하려고 할 때에, 부모님은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경우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나? 부모님의 말씀대로 그냥 내 살길을 찾자니, 부모님이 돌아가시겠고(또한 나도 주위의 사람들로부터 욕을 듣겠고), 내 생각대로 나의 모든 것을 희생하여 부모님을 섬기려고 하니, 부모님이 마음 아파하시겠고...이와 꼭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과 우리 인간의 관계가 아니겠는가?

 

  하나님은 우리더러 이 땅에서 행복하게 잘 살라고 우리를 이 땅에 지으셨다. 그러나 피조물인 우리 인간이 하나님의 그 마음을 모르고 그냥 '내 행복'만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면 또 어떻게 되겠는가? 이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일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하나님을 받들어 섬기는 것이 제일 되는 도리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그것이 창조의 목적은 아니다. 창조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우리 인간의 행복에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생각을 하게 되면 조금 위험한 결과에 빠질 수가 있는 것이 흠이다. 하나님의 그 깊고 고마운 뜻은 잊어버리고, 그냥 내 행복만을 위해 정신없이 살아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다면, 결국에는 사탄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 것이며 우리의 행복은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나온 생각이 바로 '신본주의'가 아닌가 생각한다. '다른 생각은 하지 말고 오로지 하나님을 섬기는 일만을 하라. 그렇게 하면 결과적으로 행복하게 된다.' 이러한 생각도 결국은 인간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다시 말해 신본주의와 인본주의는 동전의 양면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이 땅에 창조하신 목적과, 또한 범죄한 인간을 구원하신 목적은 우리 인간으로 하여금 이 세상 만물을 다스리며(보살피며) 행복하게 잘 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 방법도 알려 주셨는데, 그 방법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