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민수기

민수기 11장 불순종

메르시어 2023. 2. 12. 17:47

민수기 11장 불순종

Tolle Rege/민수기

2011-06-14 00:07:44


   시내광야를 출발하여 행진이 시작된 후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애굽을 그리워하며 불평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이런 일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후에도 동일하게 있었던 일이다. 그러나 언약을 맺은 후에는  동일한 사건에 대하여 하나님의 징계는 무섭도록 엄격하였다. 여호와를 원망하는 이스라엘에게 즉각적으로 불이 내렸고 만나를 불평하며 애굽을 그리워하는 이스라엘의 불평에 대하여 큰 재앙이 임하였다. 왜냐하면 동일한 행동이라도 이제 공적으로 언약을 맺은 후에는 그 행동은 언약을 배신하는 행위였으므로 언약적 저주가 필연적으로 따르게 된 것이다.

 

 그래서 먹는 문제를가지고 애굽에서 나온 것을 후회하는 원망은 이제 여호와를 멸시하는 행동으로 간주되었고 그에 대한 저주 또한 심각한 것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먹을 수 없을 만큼 엄청만 메추라기를 부으시고 그들이 이빨로 고기를 씹고 미처 삼키기도 전에 큰 재앙으로 그들을 치셨다. 그들에게 부어진 메추라기는 축복이 아니라 저주였던 것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진노는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정당한 언약적 행위였던 것이다.

 

특이한 것은 모세에게만 부어졌던 하나님이 영이 이스라엘의 70장로에게도 부어지게 되었는데 이는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무거운 짐을 진 모세에 대한 하나님의 배려였다. 하나님은 그들이 모세를 도와서 함께 백성의 짐을 담당하도록 하신 것이다.

 

언약을 맺은 후에도 이스라엘에게 근본적인 내적 변화는 없었음을 보게된다. 이것은 그들이 거짓으로 언약을 맺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나라 언약적 삶을 살기에 지극히 부족한 상태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이스라엘을 언약의 파트너로 인정하시고 그들이 언약적 삶을 살도록 훈련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언약적 저주의 목적은 이스라엘의 언약적 삶인 것이다.

 

[추기 2018년 9월 10일 월]

 

오랜 광야 생활에서 만나외에는 먹을 것이 없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기 생각도 나고 애굽에서 먹던 오이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을 그리워한 일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이 일을 가지고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배은망덕하다고 매도할 수만은 없는 일이다. 문제는 그들의 불평이 단순히 먹는 일만으로 그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왜 이집트를 떠났던가 하고 후회를 했다는데 있다. 그들은 이집트를 그리워하고 이집트를 떠난 것을 후회한 일은 하나님의 출애굽 역사를 부인한 심각한 죄였다. 만일 그들이 출애굽 역사를 부인한다면 이는곧 하나님을 거절한 것임을 의미하고 이는 심각한 언약 배반이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만나만을 먹게하신 것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고기를 먹일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을 연단하고 훈련시키기 위함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을 불평하는 그들에게 냄새 맡기 싫을 정도로 고기를 먹이실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은 극심한 재앙으로 그들을 야서 수많은 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단순한 징벌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심판이었다. 그만한 일로 이스라엘의 수많은 자들을 죽이시는 것은 너무 심하지 않은가? 이런 생각도 들지만 그렇지 않다. 이스라엘의 정체성과 존재 의미는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는데 있고 이는 그들의 출애굽의 목적이 약속의 땅이 가나안에 들어가 하나님나라를 우리고 사는 일이었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이 이런 목적을 잊어버리고 산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존재해야 할 이유는 상실되고 만다. 정체성을 잃어버린 이스라엘은 이미 존재 의미를 잃어버린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그들에게 죽음의 징벌을 내리신 이유다. 

민수기 11-13장

닥치고 성경/민수기

2019-10-23 21:43:25


민수기 11장

메추라기 사건으로 인한 여호와의 진노는 그 사건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준다, 그것은 단지 만나에 싫증 난 이스라엘이 고기를 구한 사건이 아니었다. 차라리 그런 인간적인 식욕의 문제라면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으셨을 것이고 이스라엘의 상황을 동정하고 그들의 식욕을 채워주셨을 것이다. 문제는 그들이 애굽에 있을 때가 좋았다고 말하면서 심지어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는가라고 불평하고 원망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이스라엘 가운데 계시는 여호와를 멸시한 사건이었다. 이스라엘 회중의 원망으로 인해 모세도 마음이 괴로웠고 무거운 짐을 홀로 져야 하는 고통으로 여호와께 원망을 했지만 모세의 원망과 회중의 원망은 전혀 다른 것이었다. 모세의 원망이 지극히 인간적인 원망이었다면 회중의 원망은 언약을 배반한 원망이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는 모세의 원망에는 귀기울이시고 기꺼이 대안을 제시해주셨지만 화중들에게는 크게 진노하신 것이다.

 

민수기 12장

모세에게 인간적으로 가장 가까운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권위에 도전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가나안을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동체 안에 문제들이 속출하고 있고 이것은 모세에게 큰 골치거리였을 것이다. 그들이 모세를 비방하는 요점은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자신들과도 말씀하신다는 것인데 이런 생각은 아마도 11장에서 모세의 원망에 대한 대안으로 하나님이 70장로들에게도 모세에게 부어주셨던 영을 부어주신 사건으로 인한 것인 듯 하다. 모세에게만 주어지던 하나님의 영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지는 것을 본 아론과 미리암이 모세의 독보적인 권위를 인정하지 않으려 한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이 문제에도 직접 개입하셔서 모세가 특별한 위치에 있는 하나님의 종임을 확증하여 주신다. 모세에 대한 도전은 여호와를 멸시한 것으로 간주되었는데 이는 모세가 하나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인도하는 독보적인 지도자로 세워졌기 때문이다.

 

민수기 13장

이제 가나안 땅에 접근하였고 그 땅을 정탐하게 하였는데 여호수아와 갈렙 외의 나머지 정탐꾼들의 보고는 대단히 부정적이었다. 그들의 보고 요지는 그 땅은 좋은 땅이지만 그 거주민은 강하고 그 성읍은 견고하기 때문에 그들을 이기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갈렙은  그들과 달리 이스라엘이 능히 이길 것이라고 말한다. 똑같이 정탐을 하고 왔는데 어떻게 이렇게 정반대의 의견이 나올 수 있는가? 그것은 결국 믿음의 문제일 것이다. 갈렙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고 다른 자들은 그 약속을 믿지 않았던 것이다. 갈렙이 본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약속이었고 다른 자들이 본 것은 가나안 거주민들의 강함이었다. 믿음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행치 않고 보이지 않는 것으로 행한다는 히브리서 기자의 말이 정말 실감이 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