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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다원성[카이퍼 vs. 스킬더]- 유해무

메르시어 2023. 4. 30. 10:20

교회의 다원성[카이퍼 vs. 스킬더]- 유해무

2013-05-30 21:39:31


교회의 다원성

-A. Kuyper의 다원성 인정과 K. Schilder의 논박-

유해무

 

 선교 100년의 한국교회는 엄청난 성장을 했고, 성장의 원인에 대한 반성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만, 이것이 채 정리도 되기 전에 교회 성장의 정지와, 더 심각하게는 교회의 축소가 이야기 되고 있다. 한국에서는 성장의 원인 중 하나로 교파 분립 또는 난립을 들기도 하였다. 그러나 성장의 현장과 배면에 깔려있는 교파의 다원성(Pluriformiteit)에 대하여 아직도 신학적 반성은 이루어 지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다른 교회사로부터 도움을 구하려고 한다. 또 여기에서 교회 연합에 대한 태도도 결정된다고 볼 수 있다. 교회의 다원성과 연합, 이는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화란의 카이퍼(1837-1920)는 우리에게 칼빈주의 문화관으로 잘 알려져 있다. 한국 상당히 많은 보수주의자들은 청년기에 직,간접으로 그의 영향을 받는다. 그럼에도 그의 사상이나 신학이 제대로 소개되지는 않았다. 그는 반(불란서)혁명의 관점에서 당대의 철학 사조와 성경의 계시는 반제(antithese)를 이룬다고 폭로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자의 적극적인 ‘사회 참여’를 독려했다. 그는 전통적인 개혁신앙을 불란서혁명 후의 자신의 당대에 접목시키려는 거대한 작업을 시작했고, 자유대학교를 설립하고 교수로, 교계 언론인으로, 종당에는 화란 수상에 이른다. “만유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가 ‘내 것’이라는 주장하지 않는 영역은 인간의 삶에서 한 치도 없다.” 특히 그의 문화관은 그의 교회론과도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아울러서 교회론에서는 그의 신학의 문제점이 많이 노출된다. 우리는 그의 문제를 교회의 다원성의 관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스킬더(1890-1952)는 카이퍼의 입장을 독자적으로 수용하면서 발전시킨 인물이었다. 맹목적 추종이 아니라 시대 상황을 고려하고 카이퍼사상에 나타난 문제점들을 노출시키고 교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캄펀신학교 교수였던 그는 자유대학교를 중심으로 한 카이퍼 추종자들에 의하여 학교와 교회에서 축출당했다. 그 역시 참여를 독려했고, 스스로 교계 언론인으로서 직접 관여하기도 했었다. 물론 그의 활동 무대는 카이퍼만큼 넓지는 않다. 또 정치인으로 활동한 적도 없다. 그러나 그는 카이퍼의 활약으로 현대화되었던 화란교회가 새로이 맞게 된 많은 문제들을 직시하고 날카롭게 공론화하면서, 참된 교회의 모습을 강조하고 이루려고 애썼다.

 

 이제 그들이 과거의 인물이 된 지금 역사적 평가는 가능하리라 본다. 다만 문화사적 상황이 전혀 다른 화란의 논의로부터 우리 교회에 필요한 교훈을 어떻게 얻을 것인가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회의 다원성은 우리가 직면한 문제요 논의를 필요로 한 문제인고로 해결을 위한 하나의 자료로 쓰려고 한다.

 

 

I. 카이퍼의 교회론

 

 카이퍼의 신학은 우리에게 간접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수십년간 한국 보수주의 신학교에서 조직신학 교과서였던 벌코프의 조직신학을 통해서 직접,간접으로 이루어졌다. 가령, 우리는 유기체적 교회와 제도의 교회의 구분에 아주 익숙하다. “유기체로서 교회는 성령의 고리로 연합된 신자들의 모임이며, 반면에 제도인 교회는 신자들의 어머니요, 구원의 방편이며, 죄인들의 회개와 성도들의 완전을 위한 도구이다”. 벌코프는 이 구분이 가시적 교회에 해당된다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런 식의 구분이 바로 카이퍼에게서 유래하는 것을 아는 이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카이퍼는 방대한 저작들을 남겼으나, 그가 직접 창작한 저서는 거의 없다. 거의 대부분이 자신이 창간한 일간지와 주간지의 지면을 메웠던 글들은 사후에 편집하여 출판되었다. 그러므로 그의 저작은 時事性이 강한데, 이것이 국외자를 어렵게 만든다. 또 시사적이다 보니까, 그의 저작에는 인용 각주가 거의 전무하다. 즉 그의 사상의 배경을 파악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는 개혁 전통에 뿐 아니라, 당대 독일 신학에도 정통했었다. 그런데 그가 시사적인 문제를 당대의 정신사와 무관하게 접근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난점때문에 독일 신학과 그의 사상을 비교한 연구는 전무하다. 그는 혁명으로 대변되는 계몽사조에 반발하여 낭만파 사조에 젖었고, 우리 판단으로는 독일 문화 개신교 조류가 그에게 끼친 영향은 크다. 이런 배경이 그를 비판적으로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고, 또 내포된 문제들을 지적하고, 스킬더의 출현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교회의 다원성이라는 주제는 그의 의도적 첫 작품이며 신학서론이라 할 수 있는 신학백과사전학 II(1894)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1899의 미국 프린스톤의 Stone강좌인 칼빈주의에서는 더 분명하여 진다. 그리고 1895부터 주간지에 기고하기 시작한 일반은총 III에서도 장황하게 취급되었다. 즉 자신의 사상들을 현대적 옷을 입혀 대중화하는 작품들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종교개혁을 중심으로 한 교회사에 대한 해석이 근거로 등장한다. 이 해석의 근거는 당대에 유행하던 낭난파적 ‘유기체’ 사상이다. 여기서 유기체적 교회와 제도의 교회의 구분이 도입된다. 그는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루터파와 개혁파, 동방교회와 로마교회 등 4대 주교파들을 언급한다. 이는 역사적 사실들을 확인하는데 불과하지만, 자신은 이 다원성을 ‘그리스도의 몸의 단일성’과 조화시키는 것이 신학의 사명으로 보았다. 이 그리스도의 몸은 다시 가시적,불가시적 교회와 연관되어 있다. 한편으로는 유기체 사상때문에 단일성에로의 추구가 요청됨을 강조한다. 가령, 그는 신학을 ‘신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은 종파적이라 규정하기 때문에, 반드시 대학의 신학부에서 연구하고 가르쳐야 한다고 강변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유기체 사상때문에 다원성이라는 용어는 상당히 중립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이처럼 종파는 거부하지만, 교파들의 분열 현상을 긍정적으로 수용하려는 그의 시도에는 유기체라는 용어가 마술을 부린다.

우리는 가시,불가시적 교회, 유기체와 제도로서의 교회를 먼저 다루고 나서, 교회의 다원성의 문제를 취급하려고 한다.

 

 

1. 가시,불가시적 교회

 

 카이퍼가 교회를 말할 때, 그는 일차적으로 가시적 교회가 아니라 영적인 불가시적 교회를 말한다. 그에 의하면, 루터 이전에는 이 구분이 없었다고 한다. 로마교회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제를 교회라는 도구가 독점한다고 보았다. 고로 그들은 외적인 교회가 참 교회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지상의 교회는 가시적이며 동시에 불가시적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교회는 본질상 영적이기 때문에, 육적인 눈에는 영적인 실체가 보일 수 없고, 이 불가시적인 교회에 속한 자가 누군지도 알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신자들의 연합은 신비적인데, 성령은 양자를 잇는 불가시적인 고리이다. 또 구원의 축복들도 자연적인 눈에는 불가시적이다. 이 축복들은 교회의 이상적인 성격을 구성한다. 그러므로 불가시적 교회는 오직 ‘피택자들’로 구성되어 있고, 영원토록 하나님 앞에 존재한다. 이는 본질로서의 교회이다. 로마교는 외적 교회가 이런 교회라고 한다. 더욱 구원 축복들의 배포자인 위계적인 교회(ecclesia representativa)가 이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결국 이런 식으로 중보적 사제직을 제시함으로 하나님과 백성의 직접 교통을 부인한다. 개혁자들은 교회를 일차적으로 외적 기관으로 보지 않고, 그리스도의 영적 몸으로 보았다. 이 교회는 본질적으로 불가시적이며, 상대적으로 불완전하고 약하지만 가시적 교회에서 구현된다. 그러므로 교회를 경험적으로 보면, 잘 발달된 가시적 ‘종교 집단’으로만 나타난다. 그러나 이 배경에는 가시적 교회의 발전을 주도하는 이념인 불가시적 교회가 있다. 이 이념은 인간적 행위로 인하여 집단으로 형성된다.

 

 불가시적인 교회가 자기를 구현하면, 가시적인 교회가 된다. 이는 ‘중생’을 통하여 실현된다. 기독교적인 행위, 말씀과 성례 뿐 아니라, 외적 조직체들과 정부 조직 등으로 외현화된다. 불가시적, 가시적 양 측면들이 다 보편적이지만, 모든 면에서 양자가 동일하지는 않다. 불가시적 교회에 속한 자들이 모두 다 가시적 교회의 회원이 되는 것은 아니다. 가시적 교회에는 중생하지 않는 자들도 참여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교회는 일차적으로 불가시적 교회이지만, 이 교회는 가시적 교회를 통해서만 외현된다. 그가 가시적 교회에 관심을 가질 때는 이런 이념의 실현으로서의 가시적 교회임을 알아야 한다. 그는 가시적 교회 안에서 유기체,제도로서의 교회의 구분을 한다. 그는 불가시적 교회와 유기체인 교회, 가시적 교회와 제도인 교회를 동일시하지 않는다.

 

 

2. 유기체,제도로서의 교회

 

 가시적 교회는 제도적인 교회와 밀접하게 연결된다. 그러나 양자는 일치되지는 않고, 가시적 교회에는 유기체인 교회도 포함된다. 이 배경에는 교회를 근본적으로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으로 보는 교회관이 있다. 교회의 가시성은 소위 조직교회의 가시적 제도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교회는 신자들의 공동생활, 직업, 집단적인 세상 대처 등에서도 나타난다. 개인적이고, 家庭的이며,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생활에서도 교회는 가시적이다. 이 측면을 그는 유기체로서의 교회라 한다.

 

 이 구분에서도 카이퍼는 유기체인 교회를 강조한다. 가시성의 측면의 교회는 인류의 여러 집단들 중의 한 집단이 아니고, 인류의 유일한 집단(societas)이다. 이 가시적 존속은 몇 사람들의 선행이 아니라, 창조 자체에서 인류를 위하여 마련된 유기적 제정에 근거한다. (불가시적 측면의) 유기체적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중생된 인류들이다. 본질로서의 그리스도의 신비적 몸인 이 측면은 가시화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즉 본질이 현실화된다. 직분과 은혜의 방편들을 가진 제도적 교회는 유기적 교회를 이루는 도구라고 한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말씀을 선포함으로 이 유기체인 교회를 돕는다는 주장이다. 중생된 자들의 활동으로 기독교적 가정, 언론 매체, 학교, 각종 연맹 등이 출현한다. 이 구분이 분명히 ‘가시적 교회’에 적용되지만, 그러면서도 이 구분의 영적 배경은 불가시적 교회에 있다고 한다. 가시적 교회의 본질은 불가시적 교회에 있으며, 신비적 교회는 외현화하려는 내적 충동을 가지고 있다. 결국 그가 말하는 제도와 유기체로서의 교회 구별은 가시적/불가시적 교회 구별과 동일시되지는 않지만,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제도로서의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을 계시하는데 있다. 그는 유기체인 교회를 제도인 교회 안에 가둘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 유기체가 무엇인가? “유기체는 독립적이고 폐쇄적인 단일체로서, 고유한 생명 법칙으로써 발생하고 생장하며, 내재적인 힘을 가지고서 고유한 목표의 실현을 위하여 추구한다. 따라서 유기체는 생명 그 자체이며, 내재적 생명의 배아로부터 성장한다. 이는 외재적으로 다양한 요소들을 인위적으로 접합시킨 물리적 집합체나 조합적인 기계와는 다르다. 유기체에서는 전체가 부분들에 선행하며, 전체가 부분의 성격을 결정한다. 그러므로 유기체는 내재적이며, 합목적적이다. 내재적이란 유기체가 내재적인 생명의 힘으로써 자기 발전을 이루기 때문이며, 진화와 발전과 성장은 이와 불가분리의 관계에 있다.” 고유한 생명 원리는 자유를 보장하며, 다양한 삶의 방식들은 당연한 표현이며, 고유성은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뒷받침한다.

 

 유기체인 교회는 회복된 전체이며, 그 머리는 그리스도이고, 선택으로 결정되었다. 중생하지 못한 구성원은 유기체에서 탈락된다. 그들은 회복된 유기체인 교회가 곧 인류이다. 창조도 유기적이고 전체적이지만, 구속도 유기적이고 전체적이다. 이 양자의 유기체성은 창조/구속 중보자이신 성자에게 있다. 구속은 창조의 계속이다. 역사적으로는 이 완전한 가능성(potentia)이 불완전한 현실(actus)로 나타난다. 제도인 교회는 특별 은혜를 실현시키며, 이로써 새 인류의 모습이 일반 은혜 가운데 가시화된다. 가능성과 현실은 일치되고, 선택에 의한 불가시적 교회는 완전하게 실현된다. 그는 이런 식으로 전통적인 예정론을 당대의 유기체론과 접목시키는 천재성을 발휘했다.

 

 

3. 교회의 다원성(Pluriformiteit)

 

 위에서 본 대로, 카이퍼는 인류를 유기체요 전체로 보면서, 교회도 유기체요 전체로 보려고 한다. 즉 단일성이 크게 강조된다. 그럼에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 인류도 단일체가 아니며, 교회 역시 단일체가 아니다. 여기에 그의 고민과 천재성이 있다.

 

 카이퍼는 가시적 교회의 단일성을 거부한다. 이를 그는 역사적으로 논증한다. 가시적 교회의 단일성은 중세 로마교회의 이상이었고, 개혁자들도 이 이상을 따라 자기들이 속한 교회를 처음에는 참된 기독교회로 확신했다. 그러나 각 교회는 배타적인 성격을 지닌 신조들을 소유하게 되었고, 결국은 ‘교회의 다원성’이 실현되었다. “다원성은 그리스도의 교회가 가시화되면서 나아갈 수 밖에 없었던 발전의 한 단계이다. 그런데 이 다원성은 단일성 개념을 훼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루터가 교황이 발행한 출교 칙서를 불태울 때, 이 단일성은 이미 원리적으로 파기되었다. 이 때 그는 하나님의 권위에 호소했고, 이는 그의 주관적이고 내적인 종교적 원리에서 나왔다. 이로써 외적이고 객관적인 단일성 맹신은 종언을 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로써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의 동일시는 파기되었고, 다원성의 당위성이 정착되었다.

 

 즉 불가시적인 교회가 가시화되는 과정에서 단일 형태가 교회의 다원성으로 전환된다. 이 다원성의 출현을 그는 긍정적으로 본다. 이미 지적된대로 종교개혁의 역사에서 그는 교회역사의 발전을 정당화한다. 이 발전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이 역사의 발전을 ‘식물’ 세계로부터 유비를 찾는다. “나중에는 여러 줄기들로 뻗어나는 식물도 시초에는 하나이듯이, 이를 근거로 하여 볼 때 교회도 초기 단계에서는 다양한 줄기들로 발전하지는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유기체를 만난다. 그런고로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다원성의 열림’이라는 표현을 쓴다. 민족, 학파, 노선, 교파들의 다원성은 발전의 필연성에 의거한다. 카이퍼는 이처럼 역사를 아주 담담하게 서술하듯 평가한다. 그리고 이 다원성에서 다양한 하나님의 지혜가 계시된다고 본다. 이것은 필시 주관성을 인정한다. 이것은 양심의 자유를 보장한 개혁의 공헌이라는 것이다. 객관적 진리는 하나이지만 주관적 적용과 신앙고백은 상이할 수 있다. “무한한 것은 하나의 유한한 형태로는 제대로 외현될 수 없다. 형태의 다수성으로 나타난다. 다수들은 상호 보완하며, 이 전체성에서 충만성이 있다.” 즉 뿌리는 하나지만(유기체), 줄기와 가지는 다양하다(제도). 이는 교회의 분열 현상과 다원성을 그야말로 ‘자연적’ 발전 현상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 다원성을 그리스도 몸의 단일성과 조화시키는 것이 신학의 사명이다. 그렇게 할 때 유기체인 교회의 보편성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다.

 

 다른 편에서 그는 역사의 발전 과정에 나타난 필연적인 다원성을 부정적으로도 보고 있다. 이것은 단일성에 대한 향수로 표현된다. “죄가 모든 것을 부패시키지 않았다면, 단일성이 포기되지 않은 채로 다원성이 발전되었을 것이다.” 원리상 분열은 하나님이 제정한 질서의 필연적인 작용이었지만, 죄와 인간의 오류가 이 분열을 불필요하게 강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다원성의 근원적 원인은 유기체적 발전이며, 이것은 곧 하나님의 제정이요 질서이다. 사실 초기의 카이퍼는 통일적인 단일성을 현대의 저주라고 까지 보았다. 로마교의 위계적인 단일성 원리는 저주요 하나님을 거역함이다. 그러므로 죄가 문제를 악화시켰을 뿐이지, 다원성을 초래한 원초적인 원인일 수는 없다. 그러므로 불가시적 교회와 가시적 교회의 구분은 다원성의 교의를 고백적으로 정착시켰다.

 

 

II. 스킬더

 

 스킬더는 카이퍼와 바빙크를 이어받은 신학자이다. 카이퍼 추종자들은 1930년대 초부터 그를 가리켜 카이퍼의 사상을 거두절미하는 일종의 아류(Epigone)로 지목했다. 사실 그는 카이퍼의 사상 중에서 중요한 몇가지 문제들에 대하여 강하게 비판했다. 가령 일반은혜, 세 종류의 神知識, 원형적,모형적 神知識, 언약과 유아세례, 가시적,불가시적 교회, 유기체로서의 교회 등이었다. 이것들은 대개 교회론에 집중되어 있었다. 그는 카이퍼 신학에 있는 개신교 정통주의의 흔적을 지우려고 노력했다. 그는 비판을 통한 발전, 말하자면 정화를 통한 계승을 의도했었다. 그러나 이것들은 급기야는 교회 분열로 이어졌다. 그는 독일 점령 하에서 지하 생활을 하고 있을 때, 교수직과 목사직에서 제명당했다.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자칭 추종자들은 아류를 추방했으나, 추방당한 ‘아류’의 후예들만이 카이퍼(와 바빙크)를 지금도 읽고 있다. 추종자들의 후예들은 그들을 읽지도 않고, 그들은 잊혀진 역사의 인물들일 뿐이다.

 

 스킬더의 교회론의 특성은 기존의 교회론의 통념을 성경과 신앙고백의 관점에서 비판적으로 접근하는데 있다. 그는 교회의 단일성과 보편성에 대하여 새로운 해석을 시도한다. 참 교회에 대한 관심과 교회 연합에 대한 그의 생각도 참신하다.

 

 

1. 가시적, 불가시적 교회

 

 스킬더는 교회의 가시적 측면을 아주 부각시킨다. 그는 높아지신 그리스도가 교회를 모우고 계심을 강조한다. 그가 모우시기 때문에 성도들은 함께 회집하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모으시는 행위에 성도들은 피동적으로 모여진다. 그리스도의 모우심이 있기 때문에 이제 성도들은 능동적으로 함께 회집한다. 그리스도는 영생에로 선택된 자들을 세상 끝날까지 모우시고, 보호하시고 보존하신다. 그리고 이 일을 그는 성령과 말씀으로 수행하신다(하이델베르그요리문답 제 54문의 답).

 

 스킬더는 칼빈이 기독교강요 제 4권에서 ‘가시적 교회’를 다루고 있음을 이것의 구조를 설명하면서 분명하게 한다. 4권 1장 1절은 설교, 설교자, 교회법과 성례들을 말하는데, 이는 가시적 교회를 말한다. 2절은 “교회를 믿는다는 사도신경의 항목은 가시적 교회(우리는 지금 이 점을 다룬다) 뿐 아니라, 이미 죽은 자들까지 포함하는 하나님의 모든 택자들을 의미한다”로 시작됨을 강조한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는 가시적 교회이며, 이는 구체적으로 지역교회를 말한다. 바로 그곳에서 교회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그런고로 “교회는 항상 지금도 생성 중에 있다”. 그는 교회의 생동성을 말하며, 또는 교회는 “건축 중인 집”이라는 표현도 쓴다. 교회는 미완료 현재형이다. 그러므로 교회를 그는 잠정적인 제도라고도 한다. 우리는 스킬더가 교회를 아주 역동적으로 묘사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교회의 표지들도 그리스도의 행위와 유리되어서는 설명될 수 없다. “하늘로부터 땅으로 오시며, 날마다 갱신하시는 높아지신 그리스도의 살아있고, 현존하며, 생생하고 역동적인 행위와 교회의 표지들을 분리시킬 수 없다”

 

 이런 그리스도의 능동적인 모우심의 행위에 성도들은 순종해야 한다. 이것은 동시에 명령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회집하려는 공교회적인 의지가 되어야 한다. 스킬더는 그리스도의 이런 행위에 우리들은 순종해야 하며, 이 순종은 성화의 주요한 한 측면이다고 까지 말한다. 이로써 우리는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이 된다. 동시에 우리가 그리스도와 더불어 그의 모우심에 동참하고 있는 한, 배타적인 자세, 즉 우리 ‘제도’만이 오직 구원을 받는다는 식의 태도는 불가능하다. 이는 교회의 잠정성과 연관되어 있다. [그는 이 구분은 전통적으로 전투적 교회에만 적용된다고 본다, Dictaat Kerk, 43.

 

 이런 관점에서 그는 정착되어 있는 불가시적,가시적 교회, 승리의 교회와 전투의 교회의 구분을 거부한다. [II, 245ff. 또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제도로서의 교회와의 구분도 무의미할 수 밖에 없다. 스킬더는 구체적인 가시적 교회와 고백과 직분을 가진 지역교회 만을 성경이 말하는 교회로 본다.

 

 

2. 교회의 다원성

 

 스킬더는 교회의 보편적인 단일성을 주장한다. 카이퍼(와 바빙크)의 다원성 수용은 교회를 정체된 제도로 보는 교회관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스킬더는 역동적인 교회론을 구축했다. 이미 1931년에 그는 카이퍼와 바빙크의 다원성 수용을 비판했고, 이는 그의 추종자들의 반격을 유도했다.

 

 스킬더는 이 이론이 성경적이지 않으며, 형식-내용, 형식-본질의 구조에서 나왔다고 한다. 즉 본질은 단일하지만, 본질의 발현인 형태는 다양하다는 것이다. 그는 교회의 분열 현상을 이런 철학적인 용어로 미화시키는 것을 반대한다. 나아가 이 다원성을 교회의 본질로 보는 것은 불신앙적인 관점이라는 것이다. 즉 교회의 본질인 단일성은 하나님의 사역인데, 이처럼 교회의 현실적인 분열 현상을 하나의 (다원성이라는) 교의로 정착시키려는 태도는 하나님의 사역을 파괴하는 인간의 장난일 뿐이다. 그러므로 보편성과 다원성은 공존할 수 없다. 창조와 재창조의 성령께 자리를 드리면 그 분이 원하시는, 단일성 안에서 안전한 ‘다원성’이 있을 것이다.

 

 스킬더는 다원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면서 평가한다. “다원성은 항복이다. 죄로 인하여 넓은 안목을 포기하고 협소한 분파주의에게로 항복함이다. 다원성 이론은 교회를 종파로 전락시키고, 교회의 당당하고 광대한 의미를 믿지 않기 때문에, 의식을 협소화하며 질식시킨다.” 그는 다원성이 그리스도의 모우시는 행위와 이에 대한 우리의 순종을 포기한 항복으로 본다. 이는 그리스도의 행위와 우리의 순종으로 나타나는 교회의 보편성과 단일성을 포기한 항복이다. 이는 교회를 분열시키면서도, 단일성을 향한 연합을 추구하지 않는 우리의 죄를 미화시킨다.

 

 스킬더는 제 아무리 교회의 표지들을 간직하고 있어도 올바른 투쟁을 포기한 집단보다도 비록 더러움과 결함이 있어도 교회의 단일성을 위하여 몸부림치는 회집을 교회라 부른다. 이런 투쟁을 포기한 집단을 사실상 종파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모인다는 명령과 계명은 절대적이다. 하나님은 교회의 분열을 그냥 원치 않으시며, 누구라도 이 현상을 만족하거나 체념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계명에 순종하면서 이 순종에 하나님이 축복하시기를 믿을 뿐이다. 그러므로 스킬더는 이런 순종 행위도 없이 다원성을 정당시하면서도 ‘초교파’ 활동에 집착하는 것을 비판한다. 종파와는 달리 교회는 보편적이다. 세계 도처에는 반목과 질시, 대치와 미움이 이글거리지만, 교회안에서 인간들은 화해를 즐긴다. 교회에는 계층, 민족, 남녀, 노소 등의 구별이 없이 함께 한 몸을 이룬다. 바로 여기에서 공교회적인 교회와 종파적인 집단이 구분된다.

 

 그러므로 어떤 교회라도 하나님의 계명 앞에서 자신을 살펴야 하며, 두렵고 떨림으로 자기 검증을 해야 한다. 그는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들이듯이, 로마교회 안에도 하나님의 자녀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런데 다원성을 근거로 하여 로마교회도 교회로 인정해야 할 것인가? 그는 이것을 단호하게 부정한다. 문제는 개인들이 아니라 교회이다. 그러므로 한 지역 안에는 하나의 참 교회 만이 있다. 다만 이 참 교회가 한 지역에서 형편상 다수의 교회들로 흩어져 있을 수도 있다. 그는 다수의 교회가 곧 다원성을 말하는 것이 아님을 칼빈을 인용하면서 설명한다. “보편 교회 아래에는 인간적 필요에 의하여 마을과 동네로 흩어져 있는 개 교회들이 있는데, 각 교회마다 당연하게 교회의 이름과 권위를 가지고 있다.” 이처럼 교회의 다수성이 언급되지만, 칼빈은 표지들을 가진 가시적 교회를 참 교회로 보았고, 카이퍼가 주장하는 다원성과는 달리 이 참 교회의 다수성을 말했다는 것을 스킬더는 강변한다.

 

 그러면 스킬더는 이 보편성과 단일성의 현실적인 실현에 대하여서는 어떻게 생각했을까? 그는 이 단일성이 성취되지 않을 것을 솔직하게 시인한다. 그러나 산상수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요구에 대하여 실현 불가능하다 하여, 폐기할 수 있겠는가? 인간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요구한다 하여도, 하나님이 우리를 부당하게 대하는 것은 아니다.

 

 

III. 평가

 

 카이퍼의 관점은 교회, 정치나 사회 영역에서 자극제가 되었고, 그 나름대로의 공로를 지닌다. 유기체로서의 교회를 강조함으로 정치, 사회 전반, 학교 학문, 노동문제 등을 교회론의 관점에서 관심의 대상이 되도록 했다. 즉 당시 하층으로 구성되었던 소수의 개혁파 성도들을 세상 도피적인 삶에서 적극적인 사회 참여에 동참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가 지불한 대가는 너무나 컸다. 또 결과적으로는 가시적인 교회의 약화를 초래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제도인 교회가 유기체에 예속되는 것은 이론일 뿐, 성경적 가르침은 아니다. 낭만파적 사고 체계에서 나온 이론일 뿐이다. 유기체 사상에서는 제도로서의 현상을 본질의 외현으로 볼 수 있다. 즉 분열의 현상 자체는 자연스러운 외현 또는 발전 현상이고, 이 분열의 배후에 있는 죄성에 의한 인간적 지배욕과 욕심의 문제를 의식적으로나 무의식적으로 정당시하고 때로는 권장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손쉬운 교회 연합운동에 동조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카이퍼가 이 이론으로 그의 신학적 기조였던 ‘반제’(antithese)를 포기했다는 엄청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는 자기 당대의 사조는 진리와 대치하고 있음을 명확하게 밝혔고, 대중적으로 유포했다. 그런데 후기의 그는 개혁 이후 교회와 진리의 다원성이 외현되었다고 했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상대주의에로의 길을 열었다. 비록 카이퍼와 함께 바빙크도 이 다원성 이론을 수용했으나, 그는 상당히 망설이는 입장을 취했다. “진리와 오류는 다원성이라는 한 개념 아래 요약할 수 없다. 오류는 진리의 형식이 아니라, 반제일 뿐이다.” 물론 카이퍼의 교회의 다원성 이론은 그 당시 화란 국가교회가 지녔던 제도적인 단일 교회 형성을 비판하는 순기능도 가졌었다. 그러나 이 역할을 감당하면서도 동시에 가시적인 교회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에는 이 이론은 너무 비성경적이고, 철학적이고 또 그의 출발점 자체를 해체시키는 원리 위에서 시도되었다.

 

 그럼에도 1892년 연합을 그가 주도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입장 가운데는 이를 지원하는 측면도 있었다. 1894년부터 그는 신앙고백에 근거하여 루터파와 개혁파, 동방교회와 로마교회 등 4대 주교파들이 형성됨으로 다원성의 시대는 왔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비록 이런 맥락이긴 하지만, 그는 다원성 이론에 배치되는 선택을 이미 할 수 있었다. “신앙고백만이 연합 회집시키는 힘이여야 한다. 이 고백이 입술과 마음에 안착된 곳에 지금까지 나누어져 있던 우리가 하나가 되어 나누일 수 없다. 그곳, 오직 그곳에만 주님의 교회가 있다.” 이런 그의 태도는 그야말로 공교회적이고 교회 연합적인 자세이다. 그러나 이런 원칙적인 태도가 전제되어 있지 않는 연합 운동은 경계되어야 할 것이다.

 

 스킬더는 정화를 통하여 카이퍼의 유산을 보존하려고 했다. 그가 카이퍼의 추종자들에 의하여 ‘아류’로 지목되었지만,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아류는 사실상 카이퍼의 추종자들이었다. 그들과는 달리 스킬더는 통상적인 교회 분류, 즉 승리와 투쟁의 교회, 가시적 교회와 불가시적 교회, 유기체로서의 교회와 제도로서의 교회가 비성경적이며, 고백과는 배치되는 것을 바르게 폭로했다. 이는 교회를 모우시는 그리스도의 현재적 행위를 주목하고 이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관점에서 이루어졌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다원성의 이론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주어진 현실을 정당한 발전의 한 단계로 받아들이지 않고, 교회를 모우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에 순종하는 공교회적이고 연합적인 자세를 우리 모두에게 촉구했다. 그가 즐겨 인용했고, 또 그의 묘비 비석에 새겨진 성경 본문은 고난 전에 예수께서 하신 기도의 한 귀절이다: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요한복음 17:21). 그는 이미 1935년에 ‘종파주의의 간악성’을 경고했다. 그러나 아쉽게도 그의 작업은 너무 지나치게 논쟁적으로 진행되었고, 급기야는 축출당함으로 그는 화란 개혁교회를 카이퍼의 유산 안에서 교정하면서 섬길 수가 없었다. 추방당한 그가 “한 지역 안에는 하나의 참 교회 만이 있다”는 이전의 입장을 고수하자, 화란 교회는 그를 ‘교회주의자’로 낙인을 찍어버렸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신앙고백 위에서 연합을 시도했고, 또 연합이 제안되면, 잡다한 논의는 즉각 중단하고 연합하겠다는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다만 그는 각종 자명한 현실주의를 항거하는 ‘비판적인 교회론’을 처음부터 고수했다.

 

 다원성 이론에 대하여 카이퍼 추종자들의 일부는 상당히 공정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A.D.R. Polman은 화란고백 27항은 H.H. Kuyper식으로 불가시적 교회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스킬더식으로 가시적 교회에 관한 언급임을 분명하게 한다. K. Dijk도 중재적 입장을 취한다: “교회들의 다수성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은혜의 형형색색이 빛난다는 식의 다원성은 안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교회 분열마다, 새로운 교단이 생길 때마다 할렐루야를 외쳐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원성이란 우리 교단의 형성의 필연성을 고수하지만 그러면서도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분열을 애석하게 여기며, 이 분열 현상을 극복하고 다시 한 형제와 자매로 살아가려고 모든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다수성이다.” 베르카워는 상당히 애매한 평가를 한다. 그는 카이퍼가 분열의 현실을 언급한 뒤, 연합의 시도가 실효를 거두지 못한다는 현실적인 곤경에서 너무나 쉽게 도피의 미덕을 찾아낸다고 비판한다. 이것은 현재의 고난과 장래의 영광을 비교하지 못한다는 종말론적인 안목이 결여된 패배주의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전통적인 불가시적 교회의 존재를 받아들인다. 즉, 제도적인 관점으로는 교회의 실재에 관한 올바른 관점을 가질 수 없는데, 이는 가시성에서 불가시성에로의 도피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그리스도와의 교제 가운데 있는 신자들의 모임(congregatio fidelium)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지칭한다. 그런데도 이 불가시적인 교회가 교회의 단일성의 성취의 좌절에 대한 변명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죄는 가시적 교회에는 있으나, 불가시적인 교회에는 침투하지 못한다는 자위로 사용되었다. 이미 현존하지만 아직도 은폐되어 불가시적인 종말론적 요소가 이 세상이 아니라, 장차 나타날 것이라는 이원론적 자위로 등장한다.

 

 “만유의 주권자이신 그리스도가 ‘내 것’이라는 주장하지 않는 영역은 인간의 삶에서 한 치도 없다”는 기치 하에서 시작한 카이퍼의 대장정, 이는 개혁 교인들을 은신처인 집으로부터 세상에로 파송했으나, 이제 이들은 그 집을 잃어버렸다. 그가 남긴 유산 가운데 아직도 그의 이런 인상을 아직도 담고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의 후예들은 이제 그를 추방했던 이전의 국가교회와 연합을 시도하고 있다. 그와 그의 모든 작업은 아예 없었던 것처럼.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나라 할까. 다원성이 자리를 깐 연합 정신은 반제를 잃어버리니, 연합은 오겠지만 이와 더불어 카이퍼는 매장되고 말았다. 스킬더는 카이퍼가 자신의 삽과 더불어 매장되는 사태를 막으려고, 그를 정화하려고 했다. 그는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을 다원성이라는 용어로 미화하지 말 것을 가르쳐주었다. 재림 시까지 교회는 ‘진행형’임을 강조하고, 지속적인 순종과 자기 검증과 회개를 촉구했다. 이것은 우리 한국교회의 현실을 볼 때,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몸을 쪼개어 놓고 자위하고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폭로시킨다. 이 점에서 같은 신앙고백을 가진 우리 한국교회는 카이퍼와 스킬더의 가르침을 따라서 교회연합에 최선을 다 하여야 할 것이다. 교회의 분열은 어떤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더구나 한국교회는 전대미문의 성장을 이룩하면서, 성장의 한 요인으로 분열을 당연시했는데, 이에 우리는 결코 ‘할렐루야’를 외칠 수 없다. 우리는 스킬더의 권면을 따라서, 우리를 지금도 부르시는 그리스도의 행위에 순종하는 자세를 배위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