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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와 현대예술- 한스 로크마커

메르시어 2023. 4. 29. 22:23

기독교와 현대예술- 한스 로크마커

2011-10-04 23:37:50


원제 : ART needs no justification  by  H.R.Rookmaaker

 

1. 현대의 딜레마의 역사적 배경

바록 공공연하게 반 기독교적은 아닐지라도 18세기는  분명히 유사 기독교적 세계를 추구하고 살았다는 것이다. 18세기에는 종교란 순전히 개인적인 영역에만 남아있는 한 좋은 것이었고 과학, 철학, 학문, 고급예술 등, 이 세계의 중요한 것에는 개입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중립성의 원칙이 나타나게 되었는데,학문적 작업에서는 자신의 종교적 확신처럼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부적절한 것을 뒤에 남겨두고 자신의 신앙과 무관하게 항상 진리인 것 , 즉 객관성을 추구해야 한다.  우리는 과거의 위대한 예술가들이 스스로의 천재성, 재능으로만 대작을 완성했다는 인상을 받는다. 종교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현대의 학자, 역사가, 철학자, 예술가들도 단순히 시대의 사조를 따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상의 변화에서 부터 예술에는 위기가 닥쳤다.

 

2. 기독교의 반응

18세기의 세계의 내적 방향이 인간이 왕으로 군림하고 돈을 통한 쾌락과 권력이 궁극적 가치로 인정되는 인본주의적 궤도로 진입하면서 세계가 격변할 때에 기독교의 주류는 모세오경과 성경전체를 통해 선포된 언약사상을 무시하는 일종의 경건주의에 빠졌었다. 구약성경은 종종 무시되었으며 그리스도인의 생활의 의미는 단지 경건 생활로 국한 되었으며 그 결과 철학, 과학, 예술, 경제, 정치 등 인간의 삶의 대부분의 영역들이 너무도 쉽게 세상으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들은 영혼구원에는 관심을 가졌지만 성경은 하나님이 삶의 주인이시고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며 하나님의 피조세계인 이 세상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등에 대해 가르치고 있다는 것을 빈번히 간과하고 있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인의 수가 증가했음에도 불구하고 현대 세계는 미치 기독교적 영향이 전혀 존재하지 않는 듯한 완전히 세속적인 세상으로 바뀌게 되었다.

 

교회가 현대문화로 부터 후퇴해서 얻은 첫번째 결과는 우리가 세상이 하나님의 소유라고 설교하면서도 그 원칙위에서 행동하지 않기 때문에 매우 빈번히 복음에 대한 장애물을 쌓아왔다는 것이다. 두번째 결과는 기독교 내에서 문화와 예술에 대한 부정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은 우리를 단지 그리스도인으로 만들거나 우리의 영혼만을 구원하시려 함에 있지 않고 우리를 구속하셔서 참 인간 이 되도록 하심에 있음을 명심하여야 한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함은 생활의 모든 면에서 충만하고 자유롭고 인간다운 능력을 발휘하며 살 수 있게 되었음을 의미한다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살면서도 이세상에서 깊은 안락감을 누린다면 우리는 이 세상의 표준에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닌지 심각하게 자문하여 보아야 한다. 어쩌면 우리의 신앙의 영역은 삶의 한 작은 영역에 국한되어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리의 종교생활은 매일의 현실이기 보다는 감정상의 문제로 되기 쉽다. 우리는 예수께서 유일한 해답이 되신다고 노래한다. 그렇지만 도대체 무엇에 대한 해답인가? 나는 진정한 종교개혁만이 현대 문화의 갱생을 이끌어 낼 수 있다고 확신한다. 비록 그러한 개혁은 분명히 교회에서 부터 시작하겠지만 이것은 기독교의 개혁만이 아닌 현대 서구사회의 개혁을 초래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깨어야 한다. 한마디로 말하면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돌아와 그에게서 해답을 구하여야 한다.

 

본인이 강조하고 싶은 메시지는 "통곡하라 기도하라 사고하라 그리고 일하라' 이다 우리는 현재의 상황이  우리가 용납할 수 있는 기준선으로 부터 얼마나 멀리 표류해 왔는가를 직시하고 그를 인하여 통곡하여야 한다. 진정한 통곡은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한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도저히 사태를 바꿀 수 없고 도움이 필요하다는 자각이 있을 때 우리는 기도한다. 우리는 또한 보다 나은 해결을 위해 노력할 지혜,능력, 인내를  구하기 위해 기도한다. 우리가 주님께 도움을 구하고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였다면 우리는 사고를 해야한다 우리의 위치는 어디이며 어디서 부터 어떻게 시작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또한 기독교가 의미하는 바가 무엇이며 문화적 문제와의 관계는 어떻게 되는지 그리고 기독교 자체에 대하여도 디시금 철저히 숙고하여야 한다. 신학적 갱신 없이는 그리고 성경적 안목의 강화없이는 전혀 개혁을 기대할 수 없다. 단지 그 후에야 우리는 행동할 수 있고 어떤 일을 인내로 수행할 수 있는 것이다.

 

3. 그리스도인 예술가의 과업

예술가들은 개혁에 있어서 매우 결정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은  내가 개혁이라고 부르는 바, 조직도 이름도 없는 운동 즉 그리스도 예수안에 감추인 진리의 길과 생명을 찾기 위하여 주님께 돌아오는 일에 적극 참여하여야 한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찾고 있는 예술가는 사회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삶을 영위할만한 가치있는 것으로 또한 영적인 의미에서 풍요로울 뿐만 아니라 심오하고 흥미로운 것으로 사람들이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의 전체성속에 예술가도 그 몫을 담당하기 윈한다면 또한 또한 예술가들이 그들의 노력없이는 개혁이 이루어질 것 같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면 우리는 이러한 책임에 대하여 숙고 하여야 할 것이다.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위치와 기독교가 인간 생활의 모든 면에 어떤 의미를 갖는가에 대하여 숙고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개혁은 단지 교회의 개혁만이 아니라 우리들 존재 전체가 걸린 문제이다. 물론 복음전도와 교회활동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러한 생활의 실체를 조금도 보여주지 못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거나 그리스도안에 생명이 있다고 떠드는 것은 헛된 일이다. 사람들은 그 말을 거짓으로 여기게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개혁은 우리의 통곡, 기도, 사고, 일이 없이는 결코 도래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예술이 기독교의 타당성을 입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가 예술의 타당성을 입증하여야 한다. 기독교는 진리이므로 모든 사물, 행동, 인간의 노력들은 오직 그들의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만 의미를 찾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목적이 우리를 인간답게 하시기 위함이라면 예술의 실재하는 인간성의 근거도 그 분에게서 찾아야 한다. 그러므로 비록 예술이 설교에 도움이 될 수는 있으나 결코  설교를 위하여 예술을 이용해서는 안될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 무엇인가 호소하려 하거나 원래 예술이 전달할 내용이 아닌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바로 그러한 노력속에서 예술이 비정직 해지고 이류로 속화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요컨데 예술은 분명히 기독교적 틀속에서도 내재적인 가치와 타당성을 갖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예술에서 기독교적 요소라 하는 것 즉 성경이 성령의 열매라고 부르는 것을 작품에서 명백히 표현하기 위하여 노력하는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강조되어야 할 것은 그것이 인간적이고 사실적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 예술가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재능을 하나님에 대한 사랑의 행위로서 동료에 대한 사랑의 봉사로서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임을 자각한다는 것이다.

 

4. 예술가들을 위한 몇가지 지침들

의미는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지 존재가 소유하고 있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예술의 의미도 예술의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소여에 있는 것이다. 예술은 하나님으로 부터 부여된 것이므로 그 분께 대한 순종과 사랑, 그리고 이웃에 대한 사랑 가운데 그분을 통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는 예술을 하나님께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술이 하나님의 창조물로서 고유한 의미를 지닌다면 예술을 정당화하려고 노력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예술의 정당성은 이미 그것이 하나님이 부여하신 가능성이라는 사실에 내재한다. 예술은 정당화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도 예술행위에 대하여 변명할 필요가 없다. 예술 자체는 하나님이 주신 가능체이다 우리 인간들은 단지 이것을 발견하고 보다 나은 길로 혹은 보다 못한 길로 사용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