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에 대한 지식
하나님에 대한 지식
2011-07-05 17:22:38
사람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로서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 존재할 수 없다는 이 말은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야 할 존재임을 명시하는 말이다. 그런데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김으로 죄를 지었고, 이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훼손되고 말았다 인간은 스스로 죄를 범하였지만 이제 스스로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게 되었으며 이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아니하고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가 없고 그 관계가 회복되지 않는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문제는 해결될 수가 없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이것이 인간의 모든 비극과 문제의 원천이다. 하나님과의 관계의 단절은 인간간의 관계의 단절을 가져왔다. 하나님 없는 인간은 근본적으로 자기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자기를 모르므로 남도 알수가 없다. 또한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에 있어야 할 하나님 대신 자기가 있으며, 그럼으로 진정한 인간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오로지 자기 중심으로 인간을 바라볼 수 밖에 없게 된다. 진정한 관계가 없으므로 진정한 앎이 있을 수 없다. 진정한 관계가 없으므로 인간의 진정한 공동체도 존재하지 못하고 분열과 미움, 불신, 싸움이 인간 사회와 역사에 끊이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은 적극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 하신다. 그분은 모든 문제의 원천이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에 있음을 아시므로 그 관계를 적극적으로 이루시려한다. 그것은 단순히 관계의 회복정도가 아니고, 관계가 아담 시절의 단순히 창조주와 피조물의 초보적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고도적 관계를 제시하시고 그 괸계안으로 우리를 부르셨다. 제2위되시는 하나님께서 아들로 이 땅에 오시었고 우리 죄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최고봉인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까지 끌어 올리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단순히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자,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시는 분이라는 표현으로는 이 고도적 관계를 담을 수 없다. 왜냐 하면 이런 말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려는 궁극적 목적의 수단되는 내용만을 나타내는 소극적 표현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성자로 말미암아 성신을 힘입어 성부를 아바 아버지라 부르는 관계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 사실이 바로 복음을 총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되리라. 이러한 삼위 하나님과의 새롭고 고도한 관계를 예수님은 새언약을 맺는 것이라 하시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언약에 바탕을 두고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란 바로 이러한 관계에 터를 둔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다. 삼위 하나님은 당신과 이러한 관계를 가진 인간공동체와 하나님 나라를 만들어 가시려는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이러한 고도한 관계는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미 이루어 진 것이지만, 역사적으로 그 관계를 유지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언약에 바탕을 둔 인간의 자발성과 적극성를 요구하신다. 하나님편에서는 이 관계는 이미 완성된 것이지만 인간편에서는 이 관계는 이제 하나님에 의해 시작되었고 인간의 적극적이고 자발적인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계속적으로 발전되어 나아가도록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을 안다고 하는 것, 소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이 언약 관계속으로 초대되어 들어가는 것이고, 인간이 그 관계를 유지 발전시키는 것을 말하며, 이것이 바로 우리가 성신을 좇아 나가는 일이다 성신 하나님은 바로 이런 언약관계를 유지 발전시키시는 일을 하시므로 우리는 힘써 성신을 좇아야 한다 그러나 성신이 내주하신다고 해서 저절로 성신을 좇게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힘써, 주의하여 성신을 좇아야 하며, 그렇지 아니하면 성신을 근심케, 혹은 성신을 소멸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언약관계는 기본적로 쌍방 관계이듯이 하나님은 이미 언약을 이루셨지만 또한 언약 당사자인 인간에게 힘써 언약을 지킬 것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과 이런 고도한 관계로 들어간다고 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관계 단절에서 비롯된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원천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아니하면 이 고도한 관계라는 것은 무의미할 것이고 아니면, 그 고도한 관계 있음을 의심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첫째,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 하나님앞에 거룩한 존재로 서게 된다. 우리가 죄의 권세에서 벗어나서 우리의 죄성을 싸워 이기고 계속적인 성화가 우리 삶에서 이루어 지게 된다.이러한 성결은 고도한 관계의 결과이며 증거인 동시에 그 관계를 유지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된다. 누구라도 거룩함이 없이는 하나님을 볼 수 없다. 아담이 계명을 어겨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되었듯이 이제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관계회복은 우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적극적으로 계명을 지키게 하는 것이다
둘째, 자기 중심성이 극복되어 하나님 중심성을 이루게 된다. 이것을 성경은 자기를 부인하고 성신의 인도를 좇는다.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는다고 표현하거나,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혹은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사신다 등으로 표현하였다. 자기 중심성의 극복은, 즉시 자기가 누구인가하는 자기 정체성을 새롭게 가지게 한다. 즉 자기를 이제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파악하게 되며, 진정한 자기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고도한 관계속에서 새롭게 발견하고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필연적으로 이제 하나님의 자녀로서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총체적 삶의 변화를 수반하게 된다. 또한 하나님 중심성이란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안으로 들어온 언약 공동체 중심성으로 나타난다. 이제 자기라는 전제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아니하고 자기는 하나님 자녀들중의 하나로서 자기를 인식하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진정한 자기이며,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자기 개인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인 우리로 나아가며 자기와 우리가 구분되지 아니하는 진정한 한 몸됨을 체혐하는 것이다.
셋째, 진정한, 고도적 인간관계를 이루게 된다. 이제는 모든 인간관계의 중심에 더 이상 자기가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중심에 계심으로 맺어지는 새로운 인간 관계이다. 이것은 곧 하나님과 아버지-아들이라는 언약관계속으로 초대받은 자들이 이루는 인간관계로서 인간관계의 가장 진정하고 고도적인 관계이다. 이러한 관계를 힘써 이룰 것을 말하여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시었고, 누구든지 부모나 자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가르치셨다. 성경은 이를 그리스도안에 한몸, 지체라고 혹은 그리스도안에 한 형제가 되는 것이라고 표현하였다. 결국 하나님 사랑은 형제사랑으로 표현되듯이, 하나님과의 고도한 관계의 표현은 신자간의 고도한 인간관계로 표현될 것이다. 보이는 바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이지 않는 바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할 것이다. 이제 이런 고도적 인간 관계안에는 분열과 다툼이 사라지고 진정한 사랑과 기쁨, 그리고 화평이 가득하고 진실된 신뢰가 나타나는 진정한 공동체로 발전되어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 발전은 자연적으로 인간 관계의 발전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삼위일체 하나님과 피조물을 대표한 인간공동체간의 언약관계의 고도한 발전을 통하여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스러운 나라를 완성하시고 영원한 안식가운데 우리와 함께 들어 가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이러한 놀라운 초대를 받아 그 고도한 언약가운데 들어간 자임을 자각하고 이 언약을 힘써 지키며, 그 관계를 극단적으로 발전시키며 하나님과 함께 그분의 나라를 건설해 나아가야할 책임을 가진 하나님의 언약당사자로서 우리를 인식하여야 할 것이다. 그러면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그것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속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첫째,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극단적으로 발전되는 상태일 것이다.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는 고정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인격적 관계가 그렇듯이 계속적으로 변화되고 발전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것은 초보적인 단계에서 고도적인 단계로의 이해을 의미한다
둘째, 하나님의 자녀로서 가지게 되는 권세를 발휘하는 삶일 것이다. 하나님은 만유의 창조주, 대주재 이시므로, 하나님의 자녀됨의 사실로부터 자연히 이러한 놀라운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삶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현저하게 드러나는, 그래서 세상을 놀라게 하는 탁월성이 드러나게 됨을 의미한다.
셋째, 하나님과의 관계는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 하나님 중심으로의 인간관계로 변화시킨다. 그러므로 진정하고 고도한 새로운 인간관계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신자간의 지체의식에 기반을 둔 공동체성으로 나타나는 삶일 것이다. 이 공동체적 삶은 인간간에 나타나는 모든 문제가 사라져셔 진정한 일체성과 화평, 기쁨이 나타나는 것이며 이것은 밖으로 흘러넘쳐서 이 세상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의 삶의 어떠함을 보여주고, 세상에 빛을 던져줌으로써 어두움에서 나와 빛되신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게 하는, 그러한 빛과 소금되는 삶일 것이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기심을 받게하는, 그리하여 그 나라가 이 땅에 임하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는, 주님께서 가르쳐 주신 우리의 기도가 이루어지는 환상적인 삶일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자녀의 삶은 앞에서 본 것처럼 그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일 것 이다. 그러므로 하나님 자녀의 삶은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처럼 이 세상의 먹고 입는 문제에 매어있지 아니하고 그러한 문제로 인생을 소모하지 아니하고 자기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려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 삶이다. 자기의 모든 힘과 노력을 하나님 나라 건설에 쏟고 소망 가운데 그 영광스러운 나라의 도래를 기다리는 삶일 것이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아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을 통해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그 안으로 들어가서 그 관계안에서 사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과 인간이 서로를 알고 영향을 주고 받는, 그래서 그 관계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본질적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것이고 그 만남을 통해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변화하는 것를 의미한다. 다시말하면 하나님을 아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라는 3인칭적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2인칭적 차원에서 더 나아가 자기의 삶 자체가 바뀌는 1인칭적 차원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