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메르시어 2023. 4. 29. 21:48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 - 저자 미상

2011-07-02 23:33:25


렉치오 디비나의 4 요소

 

렉치오 디비나(lectio divina)는 ‘거룩한 읽기’(聖讀)로 영적 독서를 말한다. 영적 독서는 음식이 우리의 위장으로 들어오듯 우리의 영혼으로 들어와 혈관으로 퍼져 거룩과 사랑과 지혜가 되는 독서이다. 그 말씀이 우리 삶의 내면이 되도록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 리듬과 이미지가 기도의 실천, 순종의 행위, 사랑의 방식이 되도록 말씀을 받아들이는 독서라는 점에서 참여의 독서이다. 이 독서는 우리의 삶을 살리는 이른바 ‘삶의 방식이 되는 독서’라는 점에서 엄청난 하늘의 선물이다.

그러나 이 거룩한 독서는 쉬운 일이 아니다.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이것을 험난한 훈련으로 생각해 ‘렉치오 디비나’라 했다. 그러나 이 성경 독서법은 성경이 기독교 공동체에 뿌리 내리고 그 공동체를 성장시켰다는 점에서 역사하는 독서, 능력이 있는 독서이다. 또한 성경 읽기를 통해 우리 삶이 하나님의 계시로 충만하게 된다.

렉치오 디비나는 크게 렉치오, 메디타티오, 오라티오, 콘템플라티오 등 4 가지 요소로 구성되어 있다.

 

1) 렉치오(lectio)

렉치오는 ‘읽는다’는 것으로, 텍스트인 성경을 읽는 것을 말한다. 성경은 결코 이해하기 쉽지 않다. 은유가 많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산들, 숫양, 어린 양, 작은 산들, 이스라엘, 유다, 야곱, 그리스도 등 은유라는 창조적인 말로 우리를 끌어들이고 하나님을 만나게 하신다. 은유는 연결성이라는 촉수를 사방으로 뻗힌다. 따라서 은유가 무엇을 의미하고,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유가 작동하는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하면 텍스트의 의미를 결코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2) 메디타티오(meditatio)

메디타티오는 텍스트를 묵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독서의 행위에서 기억력이 계속해서 활동하게 하는 훈련이다. 묵상은 공상이 아니라 영감 받은 상상력이다. 우리는 텍스트와 공감하기 위해 묵상한다.

묵상은 텍스트에 나오는 말을 바라보는 것을 넘어 텍스트의 세계로 들어간다. 텍스트가 가진 배경은 거대하고 육중하며 포괄적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에 놀랐다(롬11:33). 이 텍스트를 우리 안으로 가져오면 그 텍스트가 우리를 그 안으로 데리고 간다.

묵상은 성경을 단편의 모음이 아니라 하나의 연결되고 일관성 있는 전체로 읽도록 하는 훈련이다. 가장 전체적인 맥락은 예수님이며, 묵상을 통해 성경의 일관성을 더욱 깊게 파악하게 된다.

 

3) 오라티오(oratio)

오라티오는 텍스트를 놓고 기도하는 것을 말한다. 포사이스(P. T. Forsyth)는 이것을 가리켜 “하나님이 성경의 메시지에서 주시는 것에 우리는 기도로 이자를 붙여서 하나님께 돌려드린다.”고 말한다. 우리가 읽고 기도하는 성경은 하나님께 다가가는 최고의 방법이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대화이다. 하나님은 연설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대화에 들어오시고, 우리는 그분의 대화 상대다. 나아가 기도는 하나님이 성경에서 계시하시는 창조와 구원 그리고 공동체에 참여하는 행위이다.

 

4) 콘템플라티오(contemplatio)

콘템플라티오는 “텍스트를 사는 것”이다. 흔히 관상(觀想)이라 하기도 한다. 관상은 읽고 묵상하고 기도한 텍스트를 나날의 일상에서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텍스트를 우리의 근육과 뼈, 산소를 만드는 폐와 피를 펌프질하는 심장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관상은 그저 조용하고, 사람 만나기를 거부하고, 은둔하고, 고요하고, 온화한 것을 뜻하지 않는다. 관상은 과거처럼 세상과 격리된 삶을 위한 서약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 관상은 성경의 말씀에 굴복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 안에 받아들이고, 허세부리지 않으면서 그것을 사는 것이다. 관상은 ‘읽다’와 ‘살다’가 유기적으로 연합되는 것이요 주의 말씀이 나에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fiat mibi)이다.

따라서 읽을 때 주의할 것이 있다. 그는 “독자여 주의하라”(caveat lector)는 명령어를 사용했다. 예수님은 율법사를 향해 물으신다. “네가 어떻게 읽느냐?”(눅10:26). “네가 이것을 어떻게 읽느냐?”는 물음이다.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서 읽을 것이 아니라 말씀을 읽고 행하기 위해 읽으라는 것이다. 읽고 가서 행하라는 말씀이다. 다시 말하면 “네가 읽은 대로 살라”는 말씀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 위해 성경을 읽는다. 자신에게 편리하거나 자신이 관리할 수 있는 것으로 인생을 축소하기 위해 성경을 읽는 것이 아니다.

 

렉치오 디비나에 있는 이 네 요소는 서로 순차적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 요소 중 어느 것이든 언젠가는 제일 앞에 올 수 있다. 렉치오 디비나는 성경을 읽는 방법론적인 기술이 아니다. 그것은 예수의 이름으로 그분의 말씀을 살아내도록 하는 것이다.

 

관상(Contemplation)기도
관상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적 수단으로 사용되는 기도문, 언어, 상상, 표상 등을 최소한으로 줄이거나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과 친밀히 사귀는 마음의 기도입니다. 또한 인간의 지성, 의지, 감정, 감각, 상상력의 기관을 거의 혹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과 사귀는 기도의 형태입니다. 한 마디로 주님을 어떤 가리움도 없이 직관적으로 바라보고 알고 사랑하는 것을 관상기도라 할 수 있습니다. 관상기도는 전적인 침묵을 요구하는데 언어뿐 아니라 마음(Mind)과 생각과 의지까지도 침묵을 요구합니다. 관상기도는 나를 철저히 비우고 하나님이 알아서 채울 수 있도록 기다리는 것입니다. 관상기도는 자기가 아닌 하나님이 들어오셔서 기도하십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세계만이 기도자들에게 들어와 빈 마음이 되어 하나님의 처분만 기다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어떤 명령이 떨어질지 항상 준비하는 자세요, 명령이 떨어지면 그대로 순종하는 자세입니다. 관상기도자는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고 모든 관계를 성찰합니다.  관상기도는 영성의 꽃입니다.  하나님과의 일체감 속에서 하나님 앞에 서있는 것은 기도의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관상기도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순수한 마음이 무엇보다 요구됩니다.  관상기도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관상기도는 마음의 순수함이란 오직 한 가지만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한 가지는 오직 하나님 자신에게만 집중하고 관심을 두는 것입니다.

관상기도의 세 가지 기본적인 단계가 있습니다.


첫 번째 단계는 ‘마음의 평정’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정신이 통일되거나 마음이 온전히 하나될 때까지 그저 자기 자신을 들여다 보는 것을 뜻합니다. 마음의 평정을 이루려면 편안하게 자리에 앉아서 천천히, 그리고 신중하게 모든 긴장과 걱정을 내버리는 것입니다. 그 다음 하나님의 임재를 느껴 보라. 걱정거리가 생기거나 정신이 산만해지면 그것을 다만 아버지께서 해결해 주시도록 맡기라. 우리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소동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풀어 버리는 것입니다. 마음의 평정이란 내버리는 것이며 풀어 주는 것입니다. 그것은 장 삐에르 드 꼬싸드의 표현을 빌면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자기 포기”, 즉 적극적인 굴복을 말합니다.

두 번째 단계는 ‘고요의 기도’이다.
마음의 평정을 통해 마음 속의 온갖 방해 요인들과 정신을 분산시키는 것들과 의지를 박약하게 하는 것들을 모두 내버리기 때문에 내적으로 하나님의 움직임에 민감해지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우리의 존재 중심에는 요동하지 아니하는 고요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귀기울이는 고요함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바짝 긴장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방심하지 않고 귀를 기울이는 상태가 됩니다. 마음 속에서는 끊임없이 하나님의 뜻을 찾으려는 마음의 응시가 있는데 그것은 때때로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뜨거운 임재를 체험하며 주님의 가까이 계심과 주님의 사랑을 느끼게 됩니다.

세 번째 단계는 영적인 신비 체험으로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는 일이라는 점에서 앞의 두 단계와는 아주 다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역사하시도록 끊임없이 마음을 열어 놓고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는 것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