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나라와 신자의 삶
하나님나라와 신자의 삶
2011-06-06 14:38:42
하나님나라는 신구약 성경을 관통하는 대주제일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살것인가 하는 문제와 직결된다. 예수님이 선포하신 복음은 이제 때가 찼으므로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러니 회개하고 이 기쁜 소식을 믿으라" 는 것이었다. 이렇게 복음의 내용은 하나님이 약속하시고 이스라엘이 고대하던 하나님 나라가 이제 가까이 왔다는 것이고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회개하고 이 복음을 믿으라는 것이다.
오늘날 복음은 하나님나라 사상에서 동떨어진 개인 구원의 사상으로 변질되었다. 그러나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는 부분진리 하나만 가지고 살기에는 이 세상의 도전은 결코 만만치 않다. 개인 구원 사상은 죽어서 심판을 면하고 천당에 간다는 기복신앙적인 면이 농후하다. 결국 개인구원 사상에는 역사성이 증발되어 버리는 것이다. 예수 믿고 구원을 받았으니 내세에 대한 준비는 끝났을지 모르지만 과연 예수 믿은 후 살아가야 하는 이 세상의 삶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예수 믿은 후 수 십년을 이 역사 가운데 살아가게 하시는 이유는 무엇이라는 말인가? .십일조와 헌금외에 돈을 어떻게 사용하여야 하며 주일외에 나머지 6일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인가?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를 모른다. 이것은 모두 우리에게 하나님나라 사상이 없기 때문이요 복음의 진정한 내용을 잃어버렸기 때문이 아닐까?
한세기 전만해도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은 종말론적으로 임할 하나님나라를 고대하며 살았다. 그러나 현대의 그리스도인들은 더 이상 그런 하나님나라도 기다리지 않는다. 개인의 종말만이 중요할 뿐 이제 하나님나라는 증발하였고 세상 사는 동안의 복과 죽어서 가는 천당으로 보장되는 개인적 구원의 사상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러나 성경이 가르치는 것은 하나님나라가 종말론적으로 임할 뿐만 아니라 이미 세상 가운데 임하여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신자는 이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는 사실이다.
하나님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땅에 임하여 있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자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편입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은 바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라는 것이고 그 삶의 양태는 당연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서의 삶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를 믿음으로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이며 구약적으로 표현하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언약백성의 언약적 삶을 사는 것이다.
그렇다면 언약적 삶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것은 구약의 하나님나라 사상에 명백하게 나타난 바 곧 절대적인 순종이다.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적인 순종, 토달지 않는 순종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를 이땅에 임하게 하신 예수님의 순종방식이었고 하나님나라는 예수님의 이 순종의 기초위에 세워진 것이다. 이 순종은 단순한 법적 순종, 외적인 행위의 순종이 아니라 자발적 순종이며 마음의 순종이다. 신약적으로는 이것은 자기 부인 혹은 자기 십자가를 짊으로 표현되기도 하였다. 이 순종의 기초는 하나님에 대한 무한한 신뢰, 전폭적 의탁이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를 위해 내어주신 그 분에 대한 절대적 신뢰, 무조건적 의지에서 나오는 순종이다.
하나님나라가 예수님의 이런 순종으로 이 땅에 임한 것 처럼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는 그 나라 백성의 이런 순종으로 역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믈론 이런 순종이 없이는 그 나라는 분명히 임하여 있지만 역사 가운데 그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나라가 무능해서가 아니라 하나님나라는 전능하지만 하나님나라의 본질적 성격상 하나님나라는 그 백성의 순종을 통하여서만 역사 가운데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면 예수 믿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신자의 삶은 이 나라를 증시하는 것이 목적이고 그것을 위해서는 하나님의 뜻에 무조건적, 절대적 순종이 필요한 것이다. 물론 이미 완성된 하나님나라는 종말론적으로 완전히 드러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종말론적인 그 나라의 드러남 이전에 하나님 백성들의 순종을 통하여 역사가운데 그 나라를 드러내기를 기뻐하시는 것이고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믿고 바로 데려가시는 것이 아니고 이 땅에서 살게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현재적으로는 미완성이고 종말론적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가 미완성이라면 이미 죽으시고 사망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사역도 미완성이 되는 셈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예수님의 완전한 사역으로 완성된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완성된 그 나라가 증시되는 일인데 그것은 두 단계에 걸쳐서 나타날 것이다. 첫 단계는 그 나라 백성들의 순종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나타날 것이요( 이것은 순종 여부에 따라 그 나타남의 정도가 다를 것이다) 그 다음은 그 나라 백성들의 신원의 기도에 의하여 종말론적으로 나타날 것이다.( 이 나타남은 그 나라의 실체 전부가 완전히 드러나는 나타남이다)
신자의 삶의 의미는 이미 임한 하나님나라를 역사 가운데 나타내는 일이고 이것을 위하여 순종하는 일이다. 그리고 이것은 개인의 차원이 아니라 하나님나라 백성 모두의 일이다. 이런 것을 잃어 버리고, 알지 못한채, 개인 구원에만 매달리는 한 우리는 결코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왜 살아야 하는지 알지 못할 것이다. 우리는 복음을 전하되 개인구원의 복음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여야 한다. 개인구원의 복음이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부분 진리라면 하나님나라의 복음은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과 하나님나라 백성으로의 삶 모두를 포함하는 총체적 진리이다.
칼빈이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신자의 삶은 자기 부인(SELF DENIAL)으로 요약된다고 하였듯이 결국 하나님의 뜻에 대한 절대순종,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요약이다. 오직 이 순종을 통해서만 하나님나라는 역사 가운데 그 자태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그러하셨듯이 이 순종은 본질적으로 영적인 전투이며 이 전투에는 세상이 주는 핍박과 고난이 따른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피흘리기 까지 순종하라고 한 것이며 요한계시록은 교회를 향한 편지에서 이기는 자에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리라고 하였다. 오늘날 교회에 영적 전투에 따른 고난과 핍박이 없다면 그것은 교회가 하나님나라를 모르고 하나님나라를 이루기 위한 순종을 모르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