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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나라의 복음- 죠지 래드

메르시어 2023. 4. 29. 21:35

하나님나라의 복음- 죠지 래드

2011-06-02 20:56:06


원제: THE GOSPEL OF THE KINGDOM

 

하나님나라의 복음

 

1. 하나님나라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라는 주제만큼 성경에 그렇게 두드러지면서도 그렇게 극단적으로 상이한 해석들이 나타나는

주제는 거의 없다.  하르낙은 하나님나라란 인간의 영혼속에 들어와서 그 영혼을 주장하는 하나의 내적 힘이라고 이해했다. 어거스틴 이래로 중세교회는 하나님나라를 교회와 동일시 했다. 또 다른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근본적으로 인간 사회를 위한 하나의 이상적인 패턴으로 이해했다. 우리는 가장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한다. 나라란 과연 무슨 뜻인가?  나라를 뜻하는 구약의 히브리어 말쿳과  신약의 헬라러 바실레이아의 주된 의미는 바로 왕이 행사하는 계급 권위 주권이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왕권이나 그의 통치요 그의 권위이다. 일단 이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 나라가 영역이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이라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구절들을 신약 전체에서 계속해서 찾을 수가 있다.

 

2. 하나님나라의 미래성

복음서는 현재와 미래에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하여 말한다. 히나님의 통치는 미래와 현재 모두에서 드러나며 그리하여 사람들이 그의 통치와 축복들을 경험하는 미래의 영역과 현재의 영역을 창조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의 실현이며 그에 수반되는 축복을 누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시대에는 하나님의 뜻이 왼전히 이루어 지지 않는다는 것이 신약의 분명한 교훈이다. 하나님의 뜻은 종말론적으로

미래에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나라도 성육신과 파루시아의 두단계에 걸쳐서 이루어진다. 신약성경은 다가올 시대를 이 시대와 정면으로 반대되는 입장에서 설정하고 있다, 현 시대는 악하나 하나님나라는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통치의 완전한 현현으로서 또한 완성된 구속의 축복이 이루어지는 영역으로서 미래에 속하여 있는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구속의 목적의 최종적인 완성이전에 이땅에 주님의 영광 가운데 다스리시는 확장된 일정기간인 천년왕국이 있음을 가르친다는 것이 나의 확신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인 교회시대 이후에 미래의 하나님나라는 두 단계로 나타나는데 첫번째가 주님의 파루시아로 나타날 천년왕국 시대이고 그 다음이 대심판 이후에 나타날 영원한 하나님나라이다.

이 시대에는 절대로 하나님나라의 축복들을 완전히 체험하지 못한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하나님나라는 다가올 시대에 속한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떠나서는 절대로 완전히 실현되지 않는다. 사람으로서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없다 오직 그리스도께서 그 나라를 임하게 하실 것이다.

 

3. 하나님나라의 현재성

하나님나라는 다가올 시대에 속하며 오직 그 시대에 가서야 비로서 완전히 실현될 것이지만 만일 여기서 멈춘다면 구속은 오로지 하나의 약속으로만 남게될 것이다. 그러나 신약성경의 여러가지 분명한 진술들이나 신약신학 전체의 기본구조를 볼 때 하나님나라의 축복들이 미래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에 속한 현제에 경험할 수 있는 대상이 되었다는 결론을 내리지 않을 수 없게된다. 다가올 시대의 능력이 이 시대를 뚫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가올 시대의 능력을 이미 맛볼 수 있는 것이다.

하니님의 나라는 미래이지만 미래인 것만은 아니다 다가올 시대의 하나님나라의 능력이 이 악한시대에 침입하였고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악한 시대에도 그 축복을 약간이나마 알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스림을 대적하는 원수들을 멸하시는 하나님의 통치인 것이다. 그런데 이 통치는 3단계에 걸쳐 이루어진다. 첫단계는 그리스도의  부활이요 두단계는 파루시아때의 신자들의 부활이고 마지막 단계는 우주적 종말의 모든 죽은 자의 부활이다. 주요한 것은 주님의 부활이 마지막 부활의 시작이라는 점이다. 그리스도의 부활릉 역사의 한 가운데 심겨진 하나의 종말론적인 사건이다 우린 부활의 첫 단계속에서 하늘을 향하여 나아가는 삶을 살고잇는 것이다. 이 처럼 세단계의 부활을 통하여 사망이 정복되고 하나님나라가 삼중적으로 드러난다.  사망에 대한 정복은 이렇게 세단게로 이루어지는데 그

첫단계가 그리스도의 부활로 성취되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하여 역사 가운데 이미 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단의 패배에도 세단계가 있다. 십자가에서 최초로 패배하였고 천년왕국이 시작될 때 무저갱에 갇히고 마지막 심판 때 불못에 던져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그 원수들을 정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정복은 세단계로 성취되며 그 첫승리는 이미 일어났다. 우리는 이 시대에  사단의 일차적인 패배로 나타나는 축복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가 성취되고 왼성되기 위하여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절대로 필요하다 하나님은 ㅇ ㅣ시대에 그의 구속사역의 첫번째 위대한 단계를 이미 이루셨다.

 

4. 하나님나라의 비밀

구약의 안목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을 단 한차례의 위대한 사건으로 본다. 우리는 이것을 성경의 예언적 안목(Bilblical prophetic perspective)이라고 부른다. 세례 요한은 그 나라가 임하는 것을 구약에서 예언한대로 이해했다. 과연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에 임햇다. 그러나 그 나라는 인간의 주권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의 주권을 공격하고 있다. 하나님나라가 임하였지만 외형적인 정치질서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질서와 사람들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나라의 비밀이요 구속역사 가운데 처음으로 드러난 진리이다.. 새로운 계시는 하나니의 나라가 이미 임하여 역사하고 있으나 전혀 기대하지 못했던 그런 방식으로 역사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는 이미 임하여 있지만 사람들은 하나님나라를 거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 그 나라의 비밀인 것이다. 언젠가는 이 땅을 가득 채우게 될 그  나라가 여기 사람들 가운데 임하여 있으나 이전에 전혀 예상치 못하던 그런 형태로 임하여 있는 것이다. 그것은 마치 보잘 것 없는 겨지씨 처럼 임하여 있지만 거기에 무시할 수 없는 하나님나라의 능력이 깃들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이 시대에는 때로는 작고 보잘것 없는 것 처럼 보일 수 있다는 진리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행동이며 하나의 기적이요 초자연적이다. 인간이 하나님나라를 세울 수 없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통치여 다스림이다. 하나님은 그 나라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맡기셨다. 그러므로 그나라의 복된 소식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책임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나라르 이루어 가는 것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다. 비로 이 나라가, 초자연적인 하나님의 능력이 이 시대의 종말에 스스로를 드러낼 것이다.

 

5. 하나님나라의 생명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나라르 볼 수 없느니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생명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시사한다. 영생과 하나님나라는 사실상 분리시킬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생명이 영원한 생명, 하나님나라의 생명인 것이다. 이 생명은 미래에 속하여 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에게 오늘 생명을 주러 오셨다고 말한다 다가올 시대의 생명이 죽을 몸을입고 있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 임한 것이다. 영생은 현재적으로 우리의 소유가 된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충만히 소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영생은 하나님을 아는 것, 즉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이다. 지상의 교회는 하늘의 식민지가 되어 다가올 시대의 생명을 미리 누리는 것이다. 그래서 다만 성령께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허락하시는 그 정도만큼만 그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영생의 두번째 의미는 하나님의 영의 생명이 우리속에 거하신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성령을 현재 소유하고 있는 것은 부분적인 소유이지만 정한 때에 완전히 소유할 것을 보증해주는 일종의 계약금과 같은 것이다.

거듭남은 다가올 시대에 누릴 생명이다, 그것은 부분적이지만 침된 생명의 시작이다 이것을 성경은 우리가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다고 표현한다. 이것은 단순한 약속 그 이상이다 그것은 실질적인 경험인 것이다. 우라는 미래를 바라만 보고 있어서는 안된다. 미래가 이미 시작되었고 그 나라는 우리에게 임하여 있으며 미래에 속한 영생이 오늘 임하여 있는 것이다. 우리는 악한 이시대 가운데 천국의 생명을 맛보명 살고 있다.

 

6. 하나님나라의 의

미래의 하나님나라에 들어갈 조건은 현재의 의요 곧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의를 능가하는 의이다. 이 의는 어던 종류의 의인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이 의는 하나님이 우리의 삶가운데 다스리실 때 그 결과로 나타나는 의이다. 우리가 그것을 스스로 얻을 수는 없다. 서기관의 의는 외형적인 행동에 중점을 둔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요구하는 의란 외형적인 행동만이 아니라 마음의 태도를 포함한다. 이런 마음의 의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선물일 수 밖에 없다.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보면 의의 표준이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다. 그러나 이것이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의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지 않는다면 우리는 죄인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순결하게 될 수 있는 유일한 삶은 하나님의 능력과 그의 다스림을 아는 삶인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만이 그의 미래의 나라에 들어갈 것이다.

하나님나라에서 요구하는 의는 하나님이 주셔야만 하는 것이다 그것이 은햬로 주어지거나 아니면 내가 쫒겨난 상태에 있거나 둘중의 하나인 것이다. 산상수훈에서 요구하는 의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그의 삶가운데 체험한 사람에게서 나오는 의이다. 하나님나라의 의는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니나라의 생명이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듯이 하나님나라의 의도 다가올 시대에 속하여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가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부여되고 있는 것이다.

 

7. 하나님나라의 요구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드러나게될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나라사 외형적인 영광이 없이 역사속으로 들어와 있다. 미래가 현재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떻게 현재속으로 들어온 미래의 하나님나라를 경험하게 되는가? 하나님나라가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는 우리에게 회개를 요구한다.

회개는 인생의 방향을 돌린다는 것이며 돌아서서 하나님나라를 행하여 결단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나라가 기본적으로 요구하는 것은 사람의 의지로 응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오직 한가지,

회개만을 요구한다. 회개는 하나님나라로 방향을 돌이키라는 것이요 하나님나라를 받아들이라는 것이다.

천국비유들은 하나님나라가 요구하는 결단의 급진적인 성격을 잘 보여준다. 하나님나라의 요구는 비싼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결단이다. 바울은 이미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맛보았기 때문에 비천하든지 풍부하든지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함을 누릴 수 있었다.  하나님나라의 축복을 아는 사람에게는 이런 경험이 필수적이다.

신자는 자기를 부인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자기 부인은 하나님중심으로 사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의 제자들은 모두 죽을 준비가 되어있어야 한다. 이것이 십자가를 진다는 말의 의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준비를 갖추고 나가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은 인간 영혼의 깊은 것에서 일어나는 것으로서 그리스도와의 관계의 근본이 되는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을 준비가 되면 나의 삶은 나의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것이다.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그리스도의 왕되심과 주되심 그리고 통치자되심의 문제가 개재되어 있다.내가 나의 십자가를 지고 죽을 때에 그리스도게서 비로서 다스릴 수 있는 것이다. 천국이 왔다., 회개하라 돌아서서 복된 소식을 받아들여라 그 다스림에 굴복하라 이것이야말로 하나님나라의 요구인 것이다.

 

8. 하나님나라, 이스라엘 그리고 교회

하나님나라와 교회가 어떤 관계에 있는가?  이제 하나님나라는 이스라엘을 통하여 활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교회를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에게 맡겨졌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지식의 열쇠를 리제 주님은 사도와 교회에 맡기신다. 이제 새롭게 드러난 하나님의 나라가 이스라엘에게서 취한 바되어 새로운 백성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이 새로운 백성은 교회를 의미한다.

그리스도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나님의 구속적인 활동과 다스림으로서의 하나님의 나라는 교회를 창조했고 세상속에서 교회를 통해 역사하신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생명을 받았고 그 나라의 복음을 이 세상에 전하는 일에 헌신하는 예수의 제자들의 모임이다. 그러므로 중요한 사실은 하나님의 나라가 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자신을 드린 구속받은 사람들에게 맡겨져서 그들을 통하여 역사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나라는 교회가 실행하는 어떤 공적인 기능이 아니라 하나의 역동적인 역사인 것이다. 요한계시록 24장로들의 노래는(계5:9-10) 구속받은 사람들  전체를 하나님나라와 동일한 것으로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교회와 하나님나라를 동일시 하는 예가 성경에도 나타난 것이 아닌가?

그러나 여기서 구속받은 자들이 나라인 것은 그들이 이 땅에서 왕노릇할 것이기 때문인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나라인 것인 다만 교회가 그리스도의 다스림에 함께 참여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다스림의 영역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다스림 그 자체이며 그의 다스림에 스스로 굴복하는 자들이 그 다스림에 함께 참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창조하며 교회를 통하여 세상속에서 활동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르 세울 수가 없고  다만 그 나라를 선포하며 전파할 수 있을 뿐이다.  구약시대에 이스라엘을 통하여 나타났던 하나님나라는 이제 교회를 통하여 세상속에서 활동하고 있는 것이다.

 

그 다음 교회와 이스라엘의 관계는 무엇인가?

이 교회는 오순절에 탄생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교회란 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된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이 성령의 세례의 역사는 오순절에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교회와 이스라엘에 대하여 논의할 때 우리는 오직 한 하나님의 백성만을 예기해야 한다. 구약시대에는 감람나무가(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로 구성되었고 신약시대에는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의 대부분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잘려나가고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접붘임을 받았다. 그러나 나무는 하나요 백성도 하나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처음에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구성되어 있다가 나중에 믿는 이방인들과 믿는 유대인들로 구성된 것 뿐이다. 그러나 감람나무의 현 상채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역사는 아니다. 자려나간 참감람나무  가지들인 이스라엘이 순종함으로 다시 접붙임을 받게될 것이다. 교회를 세우시는 성령의 역사와 이스라엘의 원가지들을 감람나무에 다시 접붙이는 역사는 하나님이 그의 나라를 통하여 이루시는 단일한 구속역사의 두 단계인 것이다.

 

그리스도 재림전까지는 하나님나라가 완전한 복락의 상태를 실현하지는 않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세상에서 역사하고 있으며 악과의 투쟁을 하고 있는데 교회가 이 투쟁의 도구인 것이다.

교회는 하나님나라의 공동체이므로 세상속에 있는 사단의 악에 대하여 투쟁을 하지 않을 수없다. 하나님나라의 자녀들은 인간 역사에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상의 빛이요 소금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역동적인 다스림의 도구로서 이 세상의 악과 사단의 권세를 대적하는 것도 교회의 사명인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인 교회가 이 사실을 간과하게 되면 우리는 교회로서의 성격을 배반하는 것이 된다. 사단과의 이 싸움은 근본적으로 영적인 것이다, 그러나 사단적인 악과 하나니나라의 영적 세력은 인간의 행실과 인간관계들의 영역에서 스스로를 드러낸다.

 

9. 하나님나라는 언제 오는가?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의 부활, 재림, 그리고 심판의 세가지 위대한 사건들 속에서 세단계로 인한다.

첫단계로서 하나님나라는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통하여 익한 이시대속으로 들어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나라의 권능, 생명 축복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마지막 의문은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저 수동적으로 기다리기만 하면 되는가?  사단이 이 시대의 신이지만 우리는 하나님이 이 시대를 악한

자에게 버려두지 않았다는 사실을 강력하게 강조해야만 한다. 우리 주님의 승천과 재림사이의 역사의 궁극적인  의미는 복음이 이 세상에 전파되며 역사하는데 있다.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온세상에 전파되고 그후에야 끝이 올것이다. 이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하나님이 교회에게 역사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목적을 이행해

가는 책임을 맡기신 것이다. 만일 우리가 그것을 행하지 않으면 그 일은 이루어 지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우리의 마음을 불태워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복된 소식이 교회를 통해서 온 세상에 증거로서 반드시 전파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종말이 올 것이다. 역사의 의미와 운명이 교회의 손에 달린 것이다. 재림이 아직도 이루어 지지 않는 것은 교회가 세상에 복음을 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책임은 세상을 구원하거나

시대를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이다. 그러니 우리는 언제나 환란과 인내가 필요하다. 교회는 언제나 순교하는 교회로서의 본질적인 성격을 지녀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기다릴 뿐만 아니라 그날의 임함을 속히 앞당겨야 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 복음의 사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