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요한계시록

요한계시록 11장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메르시어 2023. 4. 21. 09:51

요한계시록 11장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

Tolle Rege/요한계시록

2013-03-05 22:29:32


힘센 천사는 요한에게 측량하는 자를 주면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을 측량하고 성전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세어보라고 하였다. 그러나 성전의 바깥 뜰은 측량하지 말고 그냥두라고 하였는데 이는 성전 바깥 뜰은 이방인들에게 내어준 것이므로 그들이 그 거룩한 도성을 마흔 두달동안 짓밟을 것이라고 하였다. 성전과 제단 그리고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은 지상의 교회를 상징할 것이고 그것을 측량하라는 말은 하나님이 그들을 보호하심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측량하지 않은 성전 바깥 뜰은 이방인들에게 내어준다함은 성전과 제단 그리고 경배하는 자들로 유비된 지상 교회의 핵심은 하나님이 절대적으로 지키시지만 지상 교회의 일부분은 세상의 핍박을 받도록 허락하신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나 지상교회가 받는 그런 핍박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허용하시는 일정시간으로 제한된다. 여기서 마흔 두달( 3년 반) 혹은 1260일(마흔 두달) 그리고 사흘 반이란 시간의 유비는 다니엘서에서 세상의 끝날이 오기전의 기간을 언급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이 시간은 하나님이 세상의 악을 제어하지 않고 허용하시는 제한된 기간을 의미할 것이다. 

 

  이방인들이 성전 뜰을 짓밟는 동안에 두 증인이 굵은 베옷을 입고 천이백육십일 곧 마흔 두달을 예언할 것이다. 그 두 증인은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로 비유된다. 이 증인들에게는 권능이 부어질 것인데 그들의 입에서 불이 나와 원수를 삼킬 것이며 그 두 증인은 하늘을 닫아 비가 오지 못하게 하고 물을 피로 변하게 하고 여러 재앙으로 땅을 치는 권능을 가진 자들이다.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에 무저갱으로 부터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일으켜 그들을 이기고 죽일 것이다. 두 증인의 시체는 큰 도성의 한 길에 버려질 것이다.  그 도성은 영적으로 말하자면 소돔이나 이집트와 같은 곳이며 주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신 곳이다. 두 증인의 시체는 장사되지 못한 채 사흘반 동안 세상의 구경거리가 될 것이며 땅에 사는 자들은 이 두 선지자의 죽음을 즐거워 할 것이다. 그러나 삼일 반 후에 하나님의 생기가 두 선지자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살아나서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가는 이적이 발생한다. 그 때에 큰 지진이 나서 성 십분의 일이 무너지고 많은 사람이 지진에 죽게 된다.  하나님이 교회가 세상의 핍박을 받도록 허용하시는 그 시간은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교회가 적극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증거하는 시간인 것이다. 증인이 둘인 이유는 모든 증언에 최소한 두명 이상의 증인을 필요로 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나님의 지상 교회의 증언은 무력한 것이 아니라 이적과 권능이 동반된다. 그러나 지상교회의 증언은 악의 세력에 패배하는 듯이 보이고 세상의 조롱을 받는 듯이 보이지만 환란의 시간이 끝나면 하나님의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 죽은 듯 하던 지상교회는 살아날 것이요 구름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 승리한 천상의 교회와 하나가 될 것이다.

 

  드디어 마지막 일곱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매 하늘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르되 "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 노릇하리로다." 하니 하나님앞에서 자기 보좌에 앉아 있던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을 땅에 대고 하나님께 경배하였다. 이것은 분명 승리한 지상의 교회와 천상의 교회가 하가가 되어 하나님의 심판으로 세상이 새롭게 될 것을 기뻐하는 찬송의 소리일 것이다. 하나님이 왕노릇을 하시므로 죽은 자들을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 상을 주시며 땅을 망하게 하는 악인들을 멸망시킬 것을 찬송하는 것이다. 그 때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며 성전 안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큰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이 있었다. 하늘에 있는 성전과 언약궤의 형상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인데 이때 나타나는  번개와 우레 그리고 우박은 하나님이 두려우신 심판주로 임재하심을 의미할 것이다.

 

[추기] 2019-11-06 17:56:52

요한계시록 11장

앞에서 힘 센 천사는 요한에게 예언하라고 명했는데 여기서 정작 예언하는 사람은 요한이 아니라 두 증인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두 증인은 이 땅에 주 앞에 서 있는 두 감람나무와 두 촛대라고 설명된다. 두 감람나무 이야기는 스가랴 4장에 나오는데 거기서 두 감람나무는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상징한다. 그러니까 두 감람나무로 상징된 두 증인은 이들이 하나님의 기름부음 받은 자 즉 예언하는 권세를 받은 자임을 의미한다. 그리고 두 증인은 두 촛대로도 상징되는데 요한계시록에서 촛대는 이미 교회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또한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과 성전 마당이 짓밟히는 기간이 동일하다는 것은 두 증인으로 상징되는 것과 성전으로 상징되는 것이 동일함을 암시한다. 이로 보아 여기서 두 증인은 예언하는 권세를 받은 교회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1장에서 교회는 일곱 촛대로 묘사된 반면에 여기서는 두 촛대로 묘사되고 있다. 그 이유는 아마도 구약에서 증언이 유효하려면 반드시 증인 두명이 필요하듯이 이들에게 주어진 일이 증언하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보면 우리는 예언 사명이 앞 장에서는 요한에게 주어졌는데 정작 예언하는 사람은 두 증인으로 표현된 이유를 납득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두 증인은 이 땅에서 예언하는 교회를 상징한다. 그들이 굵은 베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그들의 예언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는 일임을 암시한다. 예수님이 임박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선포하면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했듯이 그들도 동일한 일을 하는 것이다. 이제 하나님의 최후심판이 이 땅에 임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질 것이다. 두 증인의 예언은 바로 이 복음을 전파하면서 회개를 촉구하는 일이다. 그런데 두 증인이 예언하는 기간은 천이백육십일로 제한된다. 그 기간은 이방인들이 성전 바깥 마당을 마흔두 달 동안 짓밟는 기간과 동일한 기간이다. 이는 교회가 예언을 하는 기간은 동시에 교회가 고난을 받는 기간임을 의미한다. 교회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회개를 촉구하기 때문이다. 이 기간동안에 성전 마당은 짓밟히지만 성전과 제단은 보호된다는 것은 교회가 고난을 받지만 교회는 소멸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동시에 교회가 고난을 받는 것은 하나님이 무능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고난 가운데 잠시 내어주시는 하나님의 경륜임을 의미한다. 두 증인의 예언은 입에서 불이 나오는 것 같이 강력하게 회개를 촉구하며 또 그들의 예언은 하늘이 닫히고 재앙이 땅을 치는 것과 같이 두렵기도 할 것이다. 천이백육십일이 지나 그들이 증언을 마칠 때 무저갱에서 올라오는 짐승이 그들과 더불어 전쟁을 벌여 그들을 이기고 죽일 것이다. 무저갱에서 짐승이 올라온다는 것은 두 증인이 예언하는 동안은 그 짐승이 무저갱에 갇혔다가 예언을 마칠 때 무저갱에서 잠시 풀려난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러나 두 증인이 죽임을 당한다는 것이 이 땅의 교회가 엄청난 타격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완전히 소멸됨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교회는 죽은 자와 같이 되버릴 것이다. 그리고 땅에 사는 자들은 교회가 죽은 자와 같이 된 것을 기뻐한다. 왜냐하면  두 증인은 그들을 괴롭게 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경고하고 회개를 촉구하는 두 증인의 예언은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참으로 괴로운 소식이었을 것이다. 교회가 죽은 자와 같이 되고 멸시를 당하는 기간은 사흘 반으로 표현된다. 교회가 권세를 가지고 예언하는 기간에 비해 그 기간은 매우 짧다. 그리고 사흘 반 후에 하나님은 교회를 다시 회복하시고 영광스럽게 하시며 이 땅에 큰 진노를 쏟으실 것이다. 그 남은 자들이 이 모든 현상들을 보고 두려워하며 영광을 하늘의 하나님께 돌리게 된다. 아마도 이것은 두 증인의 예언 사역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대규모 회개를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나팔 재앙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던 사람들이 두 증인의 예언 사역으로 인해 회개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교회가 고난을 받으면서도 예언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하나님의 최후 심판은 사람들의 회개를 기다린다. 교회가 세상이 복음을 전파하여 고난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그 때가 무르익기 위해서 교회는 고난을 받으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 결국 이 환상이 말하려는 것은 두루마리에 기록된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교회가 고난을 받으며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회가 예언하며 고난을 받는 그 기간은 동시에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이 양육받고 준비되는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 없이는 하나님나라는 이 땅에 임할 수 없다. 하나님나라가 이 땅에 임하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백성들이 준비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후심판은 성도들이 승리하기까지 연기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삽입된 환상이 끝나고 드디어 일곱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큰 음성이 들린다. 하늘의 큰 음성은 아마도 이십사장로들과 천사들의 음성일 것인데 이들의 큰 음성은 바로 일곱째 나팔을 분 결과가 무엇인지를 말하려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왕노릇하신다는 선포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였다는 선언이 아닐 수 없다. 바로 앞에서 힘센 천사가 말한 바대로 하나님이 그의 종 선지자들에게 전하신 복음과 같이 하나님의 비밀이 이루어진 것이다. 이때  이십사 장로가 엎드려 얼굴울 땅에 대고 하나님에게 경배하는 장면이 등장하는데 이 장면은 4장에서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에게 엎드려 경배하고 자기의 관을 보좌 앞에 드린 바로 그 장면과 동일하다. 이것은 4장에서 요한이 보았던 그 환상, 즉 하늘에서 이미 이루어진 하나님나라가 이제 땅에서도 이루어졌음을 의미한다. 주기도문의 내용대로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이십사 장로들은 하나님이 친히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신다고 노래한다. 그런에 여기서 하나님의 호칭이 조금 변한 것을 발견한다. 1장에서 하나님의 호칭은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하신 자였는데 여기서는 옛적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라고 바뀌었다. 장차 올 자라는 호칭이 빠진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이 땅에 임재하시여 왕노릇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임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장차 오실 분이 아니라 지금 계시며 왕노릇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왕노릇을 거부하는 이방들은 분노하지만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 그들을 심판하신다. 6장에서 언급된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 임한 것이다. 이제 하나님은 땅을 멸망게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실 것이다. 8장에 독수리가 경고한 세가지 화중에서 마지막 화가 그들에게 임한 것이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임하는 것보다 더 큰 화는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 날은 누구라도 능히 견딜 수 없는 하나님의 진노의 큰 날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날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복된 날이요 기쁜 날이다. 그 날에 하나님은 종 선지자들과 성도들과 또 작은 자든지 큰 자든지 주의 이름을 경외하는 자들에게 상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의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인다. 성전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언약궤가 놓인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는 장막이 가려져 엄격하게 구별되었다. 장막이 있는 동안에는 누구든지 함부로 지성소에 들어갈 수 없었다. 오직 일년에 한 번 대제사장이 스스로 속죄한 후에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제 성전이 열리고 성전 안에 언약궤가 보인다는 것은 지성소의 장막이 걷힘으로 지성소 안의 언약궤가 보이고 누구든지 그 안에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되었음을 의미한다. 이것은 7장에서 이미 언급된 바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이 그들위에 장막을 치고 늘 함계 계심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구약의 오래된 약속이 드디어 성취된 것을 의미한다. 이 때 나타난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큰 우박은 하나님의 진노의 표현이 아니라 엄위로우신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신현 현상으로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