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베드로전서

베드로전서 2장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

메르시어 2023. 4. 21. 09:35

베드로전서 2장 그리스도를 본 받으라

Tolle Rege/베드로전서

2013-10-29 20:28:54


 

  앞에서 베드로는 신자의 정체성과 소망이 무엇인지를 말한 이후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고 권면한다. 여기서 순전하고 신령한 젖이란 앞에서 언급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킬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씨와 젖, 두가지로 비유하고 있는데 이는  신자의 시작과 성장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짐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신자의 마음에 씨처럼 심기웠으며 그 씨가 성장하기 위하여 신령한 젖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성장은 구원에 이르기 위한 것이므로 구원이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열매일 것이다. 신자들은 이미 마음에 심기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한 자들이므로 계속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 성장해 가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금 베드로는 예수께로 돌아가서 말한다. 왜냐하면 신자들의 정체성은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기 때문이다. 예수는 사람에게는 버린 바 되었으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보배로운 산 돌이라고 말한다. 여기서 돌은 집의 기초를 놓을 때 사용하는 모퉁이 돌을 의미한다. 집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놓는 것이 모퉁이 돌이다. 그러므로 모퉁이 돌이 없이는 집을 지을 수 없는 것이다.  베드로는 신자들이 산 돌이신 예수께로 나아가 산 돌처럼 신령한 집으로 지어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는 교회의 기초가 예수 그리스도이며 교회의 사명이 예수 그리스도를 기초로 한 거룩한 공동체로 세워져야 함을 의미한다. 또한 바울은 신자들이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신자들이 그리스도를 모퉁이 돌로 하여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는 것이 바로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시는 제사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지만 하나님이 택하신 보배로운 모퉁이 돌이 되었다. 그리스도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택하신 보배로운 돌이다. 이렇게 그리스도는 역사 가운데 양극단으로 나타난다. 믿는 자에게는 구원의 반석이며 보배이지만 믿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부딪히는 돌과 걸려 넘어지게 하는 바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앞에 중간 지대는 없다.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선택의 기로에 서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택하신 족속이며 왕 같은 제사장이며 거룩한 나라며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된 것이다. 신자들은 이제 어둠에서 나와 빛으로 들어갔으며 전에는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더니 이제는 하나님의 백성이요 전에는 긍휼을 얻지 못하였더니 이제는 긍휼을 얻은 자이다.

 

 이렇게 베드로는 다시금 신자들의 신분의 변화와 정체성을 언급하면서 신자들은 이 세상에서 거류민과 나그네와 같은 자들이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나그네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데 이는 이 세상에서의 삶이 무의미하다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궁극적 소망이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늘에 간직된 유업에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세상의 삶은 매우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의 삶은 신자가 하늘에 간직된 유업을 얻기까지 이 세상에서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열매를 맺도록 자라가야 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이 세상을 신자가 사는 동안 영혼을 거슬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고 명한다. 이는 육체와 영혼의 이원론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한 삶, 선한 행실을 하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이방인 중에서 신자들이 선행 행실을 가져서 비방하는 자들이 회개함으로 심판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야 한다.

 

  이방인 중에서 선한 행실의 예로 베드로는 다스리는 왕이나 총독에게 순종하라고 권면한다. 그들은 악행하는 자를 징벌하고 선행하는 자를 포상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보내신 자이며 그들의 권위를 통하여 어리석은 자들의 무식한 말을 막으시는 것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이다. 이는 인간 통치에 무조건 굴복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통치권을 하나님의 뜻대로 사용하는 한 복종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베드로는 주를 위하여 순종하라는 단서를 달고 있는 것이다. 인간 통치자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다 그러므로 신자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통치권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반하여 통치권을 사용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통치권의 출처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물론 신자들은 세상 통치자에게 억매인 종이 아니라 자유자이다. 그러나 그 자유는 악을 가리는데 쓰지 말고 하나님을 섬기는데 써야 한다. 그러므로 신자는 그 자유를 가지고 모든 사람을 존중하되 특별히 형제를 사랑하고 왕의 통치권도 존중하여야 한다.

 

  신자들은 그리스도안에서 자유자가 되었는데 그렇다면 그리스도인 종들은 어떻게 하여야 하는가? 이는 종과 자유자의 엄격한 신분의 구별이 있는 로마사회에서 자유자나 종이나 함께 그리스도안에서 형제가 되는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매우 예민한 문제로 대두되었을 것이다. 이 주제에 대한 베드로의 기본적인 가르침은 주인과 종의 관계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주인에 대한 자발적인 순종( 종이기 때문에 억지로 하는 복종이 아니라)과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잘못을 저질러 매를 맞는 것이 아니라) 참는 것이다. 자발적으로 순종하는 것 그리고 선을 행하고 고난을 받는 것, 이것은 하나님앞에 아름다운 것이며 이를 위하여 하나님은 신자를 부르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죄를 범하지 않으셨지만 욕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셨다. 그러나 그들을 대적하지 않으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  의탁을 하셨다. 그러니까 그리스도께서 죄없이 고난과 욕을 당하셨지만 하나님께 부탁함으로 인내하신 것은 신자가 좇아야 할 삶의 본으로 제시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가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심으로 우리가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된 것이다. 그가 채찍에 맞아 상함으로 우리는 남음을 얻은 것이다. 그래서 전에 길잃은 양과 같던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혼의 목자와 감독되신 하나님께 돌아오게 된 것이다. 결국 베드로는 이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듯이 그리스도의 본을 좇는 신자의 삶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은 또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