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3장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
빌립보서 3장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
Tolle Rege/빌립보서
2013-09-21 17:28:25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일의 외적인 면은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말 것과 그들로 인하여 당하는 고난의 싸움을 싸우라는 것이었다. 바울은 복음의 대적자들을 개들 혹은 행악자들이라 부르며 그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여기서 몸을 상하게 하는 일을 삼가라는 말은 아마도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이 강요하는 할례를 가리키는 듯 하다. 바울은 이들을 가르켜 할례파라고 부르는 것으로 보아서 바울은 개들, 행악자라 부르는 자들이 바로 이들일 것이다.
바울은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는 우리가 바로 진정한 할례파라고 주장한다. 육체를 신뢰한다는 말도 구체적으로는 할례를 의미할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유대교에 있을 때 열심으로 교회를 박해하였으며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던 자였지만 이제는 자신이 유대교에서 유익하다고 여기던 것들을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긴다고 말한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탁월한 것이기 때문에 바울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되는 일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게 되었다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난 의라고 선언한다. 그러나 바울의 소망은 믿음으로 난 의를 가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는 것이다. 바울은 이 소망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하며 그의 죽으심을 본받으려고 하는 것이다. 이 부활의 소망은 이미 얻은 것도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이미 잡으신 그 소망을 자신도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오직 한 가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고는 것이다. 이 푯대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인데 이 푯대를 향하여 이 푯대만을 바라보고 달려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그리스도인의 삶의 동인이 바로 바울이 제시한 푯대임을 직시하게 된다. 바울은 이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삶의 목표임을 분명히 말하며 이외에 달리 생각하지 말고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한다.
그러나 바울은 할례를 강요하며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을 십자가의 원수라고 부르며 다시금 눈물을 흘리며 빌립보 교인들이 미혹을 받지 않기를 경계한다. 바울은 그들의 끝은 멸망이며 그들이 섬기는 신은 그들의 욕심일 뿐이며 그들은 수치를 영광으로 아는 자들이며 그 마음이 땅에 붙어있는 자들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들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요 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자들이다. 그리스도는 만물을 다스리는 능력으로 우리의 비천한 몸을 그의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게 하실 것이다.
빌립보서 3장
닥치고 성경/빌립보
2019-11-06 17:27:08
빌립보서 3장
바울은 기뻐하라는 말을 여러번 반복한다. 그는 이런 반복이 절대 번거로운 일이 아니며 오히려 빌립보 교회에게 안전하다고 말한다.(1절) 바울은 자신이 고난 중에 누리는 기쁨을 그들도 누리기 바란다. 성령이 주시는 이런 기쁨은 세상이 주는 기쁨과 비할 바가 없다는 것이다. 2절부터 이 편지의 본론이 등장하는데 그것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라는 경고이다. 아브라함 전통에서 유래하는 할례는 오랜 세월동안 유대인의 민족적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징이었다. 바울은 메시아 공동체에서 할례 전통을 주장하는 것을 엄청나게 큰 문제로 인식했다. (2절)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해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은 할례가 유대인 공동체의 표징이 된 것처럼 메시아 공동체에 들어가는 조건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메시아 공동체에 들어오는데는 어떤 조건도 있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할례든 무엇이든 육적인 기준을 조건으로 메시아 공동체에 참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신실하심)으로 메시아 공동체에 참여한다고 주장한다(9절). 바울이 말하는 메시아 공동체는 인간이 가진 어떤 특권도 인정하지 않고 어떤 조건으로도 차별하지 않는 공동체였다. 결론적으로 율법은 메시아 공동체의 입교 조건이 아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율법 자체를 반대한 것이 아니라 이방인에게든 유대인에게든 율법을 메사아 공동체의 입교 조건으로 삼는 것을 반대한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할례자든 무할례자든 차별이 없이 오직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메시아 공동체에 들어올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구약에서도 율법은 이스라엘 공동체에 들어오는 조건이 아니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면 자동적으로 이스라엘 공동체에 속하게 되었고 율법은 그 공동체의 규율로서 주어진 것이지 공동체에 들어오는 조건은 아니었다. 아브라함 전통에서 유래한 할례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후에 그 선택의 표징으로 할례를 명하신 것이지 할례가 선택의 조건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다. 바울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을 개라고 멸시했고(2절) 그들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18절)이며 그들의 마지막은 멸망이라고 말한다.(19절) 바울은 할례를 주장하는 자들은 자기들의 수치를 영광으로 삼는 자들이며 땅의 것만을 생각하는 자들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바울은 메시아 공동체의 시민권은 하늘에(이 땅이 아니라) 있으며 그들은 장차 메시아가 주실 부활의 영광을(수치의 영광이 아니라) 기다린다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