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빌립보서

빌립보서 1장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

메르시어 2023. 4. 20. 08:16

빌립보서 1장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

Tolle Rege/빌립보서

2013-09-21 15:46:45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첫번째 유럽 선교지 였으며 빌립보서는 바울이 로마에서 감옥에 갇혀있는 기간에 빌립보 교회에게 쓴 서신으로 알려져 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생각할 때 마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한다고 하였다. 이는 그들이 처음부터 이제까지 바울과 함께 복음을 위한 일(복음안에서의 교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이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에서 시작하신 선한 일 곧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므로 하나님께서 그 일을 그리스도 예수의 날 곧 종말의 날까지 이루실 것을 확신하고 있다.

 

  바울이 말한 바, 빌립보 교인들이 참여한 복음을 위한 일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울의 매임과 복음을 변호함과 확정함에 빌립보 교회가 바울과 함께 참여한 일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복음을 인하여 옥에 갇혔을 때 복음을 변호하고 확신하는 일에 바울과 마음을 같이한 교회였다. 그래서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그들을 사모한다고 말하며 그들의 복음에 대한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시어 그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며 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함으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종말의 날이 이르기 전의 인간 역사의 의미 특별히 교회 역사의 의미에 대한 귀중한 통찰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역사는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교회 가운데 시작하신 선한 일이 결실을 맺어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한 일이란 교회가 사랑과 지식과 총명이 풍성하여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일인 것이다. 교회는 있는둥 없는 둥, 시들시들 하다가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으로 새롭게 되고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그때에 교회는 하나님이 받으실 만한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종말의 때는 단순한 인간 역사의 종말이 아니라 인간 역사가 풍성한 열매를 맺는 결실기이며 추수의 때인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이 다시 오시기 전까지 교회의 존재 이유와 그 활동의 목표는 바로 풍성한 의의 열매를 맺는데 그 모든 촛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바울은 비록 자신이 복음을 인하여 옥에 갇혔지만 복음은 결코 매이지 않으며 오히려 자기의 매임으로 복음이 더 편만하게 전파되는 것을 알고 크게 기뻐하였으며 빌립보 교회가 이 사실을 알기를 원하였다. 바울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은 살든지 죽든지 자신의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뿐이었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이므로 죽는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였다. 그러나 바울은 사는 것이 더욱 유익하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자신이 육신으로 사는 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시작하신 선한 일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이다. 바울은 여기서도 인간 역사의 의미와 자신의 개인적 삶의 의미가 동일한 것임을 말하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옥에 갇혔지만 살아 남아서 빌립보 교회의 믿음의 진보와 기쁨을 위하여  그들과 함께 거할 것을 확신한 것이다.

 

  비록 바울은 지금 빌립보 교인들을 대면할 수 없지만 보든지 보지 않든지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행할 것을 요구한다. 그것은 한 마음으로 굳게 서서 한 뜻으로 복음을 믿는 일에 함께 분투하며 무슨 일에 든지 복음을 대적하는 자들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빌립보 교회가 이렇게 복음에 합당하게 행하는 것, 이것이 바로 빌립보 교회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될 것이며 복음을 대적하는 대적자들에게는 거꾸로 멸망의 증거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증거는 사람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난 확실하고 변함없는 증거인 것이다. 이렇게 복음이 합당하게 행하게 될 때 거기에는 반드시 고난이 따르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한다. 바울이 싸우는 동일한 싸움이 그들에게도 있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

닥치고 성경/빌립보

2019-11-06 17:26:08


빌립보서 1장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없이 지내며(10잘 하반부) 하나님의 정의의 열매가 가득차서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을 드리게 되기를 기도한다.(11절) 문제는 어떻게 이렇게 할 수 있는가이다. 그것은 첫째로 그들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통찰력으로 더욱 풍성하게 됨으로(9절) 둘째는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가를 분별하여 알게됨으로(10절) 가능하게 된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을 위해 이 두가지를 간구한다.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감옥에 갇혔다는 사실로 인해 그리스도가 전파되는 것을 기뻐한다. 그들중에는 좋은 뜻으로 전파하는 사람도 있고 시기하고 다투면서 전파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식으로 하든지 결국 그리스도가 전해지는 것이므로 바울은 기뻐한다고 말한다.(18절) 바울은 자신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든지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일을 이루실 것이라는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만이 존귀함을 받으시길 소원한다.. 인간 역사의 악과 실패도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바울의 역사관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바울은 자신에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은 것도 유익하다고 말하는데(21절) 이것이 바울의 삶의 자세고 삶의 형식이었다. 도대체 무엇이 바울로 하여금 이런 삶을 살게한 것일까? 그것은 바울의 소명의식이다. 바울은 합리적 계산이 아니라 소명의식에 따라서 살았다. 소명의식이란 왕이신 예수 메시아에 대한 헌신이다. 이런 삶은 엄청나게 힘든 삶일 수밖에 없다. 바울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판단했고 그에게는 무엇이 그리스도에게 유익이냐는 점이 중요했다. 그래서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에 합당하게 살라고 권면하고 있다.(27절) 그것은 빌립보 교회가 한 정신, 한 마음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해 함께 싸우라는 것이다.(27절) 구체적으로 이 싸움은 대적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27절) 대적하는 자들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나타나지는 않지만 대적하는 자들은 로마제국으로 볼 수 있다. 빌립보 교회가 예수를 왕으로 고백하고 순종하는 것은 황제숭배 사상이 만연한 로마제국에서 반대와 핍박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바로 그들에게는 구원의 표징이고 대적자들에게는 멸망의 표징이라고 말한다.(28절) 그들이 대적자들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그들은 필연적으로 고난을 받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을 받는 것도 하나님이 주신 특권이라고 말한다(29절).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직면한 싸움이 바로 자신이 하는 싸움과 동일한 투쟁이라고 말한다.(3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