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6장 영적 전투의 무기
에베소서 6장 영적 전투의 무기
Tolle Rege/에베소서
2013-05-18 21:11:27
바울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에 이어서 여러 인간 관계를 가지고 부르심에 합당한 삶이 무엇인가를 가르친다. 바울은 부모공경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임을 상기시키면서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여야 함을 가르친다. 또한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여야 한다. 종과 주인의 관계에서도 종들은 그리스도께 복종하듯이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성실한 마음으로 자기 주인에게 순종하여야 한다.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눈가림으로만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답게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 바울은 종들이 주인의 종이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종이므로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을 섬긴다고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주인을 기쁘게 섬겨야 한다. 왜냐하면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주님은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주인들도 종들에게 위협을 그쳐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의 모든 주인된 자들과 종된 자들의 주인이신 하늘의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차별없이 대하시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마지막 권면으로 편지를 마무리 하고 있는데 그것은 성도들이 주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 지고 마귀의 간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로 무장하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싸움은 혈과 육을 가진 인간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무기로 무장하여야 한다. 그래야 악한 날에 성도들은 능히 이기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설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도들이 무장해야 할 하나님의 무기란 무엇인가? 바울은 완전 무장을 한 군사의 모습으로 그것을 묘사하고 있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 의로 가슴판을 차고 평안의 복음의 신을 신고 믿음의 방패를 들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을 가지라고 한다. 다른 것들에 대해서는 부연설명이 없는데 특별히 성령의 검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다. 다른 무장들이 방어용이라면 하나님의 말씀은 공격용 무기인데 이는 성도들의 싸움에는 방어와 공격이 아울러 중요함을 의미한다. 그런데 방어용 무장도 사실은 모두 하나님의 말씀에 터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국 성도들의 영적 전투에 하나님이 주시는 무장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결론지울 수 있다.
성도들이 싸워야 하는 싸움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무장외에 성도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하여야 한다. 모든 기도와 간구를 하되 항상 성령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ㄷ고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여야 한다. 그리고 바울은 성도들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할 것을 당부한다. 그것은 자기가 입을 열때 마다 하나님이 자신에게 말씀을 주시어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전파하도록 기도해 달라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전파하는 복음의 비밀이 하나님이 주신에게 주시는 말씀이므로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없이는 그 일을 감당할 수 없음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바로 복음의 비밀을 알게하는 일을 인하여 쇠사슬에 묶인 사신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 말은 바울이 로마 옥중에서 에베소서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하는 문구도 되지만 바울이 편지의 다른 곳에서 자신을 그리스도의 죄수라고 한 표현의 다른 표현 일 수도 있다. 그렇게 보면 바울은 자신이 복음의 비밀을 전파하는 일을 수행하도록 그리스도께 사로잡힌 자임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바울의 이 편지를 에베소 교회에 전한 사람은 주안에서 사랑하는 형제요 신실한 일꾼이라고 소개된 두기도였다. 바울의 편지는 다음과 같은 간절한 축복의 기도로 마친다. "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제들에게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을 내려 주시며 또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를 부어주시길 기도합니다. 아멘"
[추기] 2014. 10. 26
바울의 마지막 당부는 주 안에서 그리고 그 힘의 능력안에서 강건하라고 당부한다. 그것은 구체적으로 마귀의 간계를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 것이다. 바울은 마귀의 간계를 대적한다는 것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 권세자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그리고 높은 곳에 있는 영적인 악과의 씨름이라고 말한다. 아마도 이 말은 마귀의 간계가 세상의 통치자들, 힘있는 권세자들을 통하여 나타남을 의미할 것이다. 마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이지만 그의 간계는 마귀의 수하 노릇을 하는 인간들의 활동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다. 그들은 세상의 통치자들이요 권세자들이다. 세상의 통치자, 권세자는 다 마귀의 수하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마귀의 간계가 주로 그들을 통하여 세상에 나타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혈과 육의 씨름이 아니라는 말을 단순히 육체적이 아니라 영적씨름이라고 생각한다든지 일상의 삶의 자리가 아니라 종교적인 영역으로 국한하는 것은 바울의 뜻이 아닐 것이다. 마귀의 간계가 나타나는 자리는 인간의 일상의 삶의 자리이고 역사의 현장이므로 그 간계를 대적하는 것도 그 자리 그 현장에서 일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는 것은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전신갑주에 대한 묘사는 진리의 허리띠, 의의 호심경, 평안의 복음으로 준비한 신발, 믿음의 방패, 구원의 투구, 성령의 검으로 표현된다. 특별히 성령의 검은 유일한 공격용 무기인데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말한다. 마귀의 간계를 무찌르는 유일한 공격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나머지는 방어용 무기인데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이 그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의 기초도 역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말씀은 마귀를 대적하는 방어용 무기이며 공격용 무기인 셈이다. 결국 우리의 과제는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예민하고 풍성하게 우리 삶의 자리와 역사의 현장으로 가져가는냐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추기 2015. 1. 27]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고 통치자들, 권세들,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신자들의 씨름이 근본적으로 영적 차원임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 씨름을 상대하여 악한 날에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려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신자들의 씨름이 근본적으로 영적이라는 말이 그런 영적 씨름이 신자들의 일상의 삶과 무관한 어떤 신비한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오히려 그런 영적 전투는 혁과 육의 모습을 취한 우리의 일상적 삶의 현장에서 나타날 것이다. 마귀의 간계는 우리 일상의 삶을 떠난 고독한 사막이나 골방에서 역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의 삶 가운데 역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의 모습을 보아도 분명히 그러하다. 마귀는 우리가 일상에서 늘 부딪히는 먹는 문제와 세상의 부귀에 대한 유혹으로 예수님을 시험하였다. 그리고 에수님은 그 시험을 하나님의 말씀과 믿음으로 이겨낸 것이다. 이렇게 영적 전투는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것이지만 그 싸움은 본질적으로 영적 차원에 속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싸워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열거된 전신갑주의 목록을 보면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구원,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목록들은 공통점은 그것들이 전부 우리의 일상적 삶을 넘어서는 영적인 것이라는 점이고 이 목록들의 출처는 모두 성령의 역사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영적 전투는 일상의 삶의 현장에서 성령의 인도를 따라서 분투하는 삶의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