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2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에베소서 2장 그리스도와의 연합
Tolle Rege/에베소서
2013-05-06 21:47:14
" 죄와 허물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는 바울의 말은 앞의 계시와 연결된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의 지극히 크신 능력, 곧 성령의 역사를 말하던 중 이 말을 한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신 이는 바로 성령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안에서 역사하사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 살리신 성령이 이제 죄와 허물로 죽은 자를 살리신다는 의미이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들의 특징은 세상 풍조를 따르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르는 것인데 바로 이 공중의 권세 잡은 자기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다. 그것은 인간들에게 역사하여 하나님께 불순종하도록 만드는 불순종의 영이다. 불순종의 아들들은 자기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는데 바로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는 것 이것이 불순종의 본질이다. 하나님은 그들에 대하여 진노하시므로 이들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기도 하다. 죄와 허물로 죽은 자는 죽은채 가만히 있는 자가 아니라 자기 뜻을 추구하며 적극적으로 하나님에게 불순종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은 이들에게 진노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진노하신다는 것은 그들과 하나님사이에 어떤 관계를 전제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하나님이 그들을 향하여 진노하실 이유가 없을 것인데 그 관계란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어진 피조물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에게 순종하는데 그 존재의미가 있는 것이므로 불순종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이 진노하시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런데 바울은 성령이 허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사실 그리스도의 부활이 먼저요 허물로 죽은 자들을 살리신 것은 나중이다. 그런데 왜 함께 살렸다고 한 것인가? 이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단순히 그리스도만의 부활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들의 부활인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하면 그리스도의 부활은 장차 허물로 죽은 자들의 부활의 예표인 것이다. 뿐만 아니라 바울은 살리신자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히신다고 말한다. 이는 허물로 죽은 자들이 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통치에 함께 참여하는 권세를 누릴 것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그리스도인과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데 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바울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강조하며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니 누구도 스스로 자랑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그리스도안에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심으로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세대에 나타내려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성도란 하나님이 선한 일을 하도록 지으신 하나님의 작품이라고 한다. 여기서 선한 일이란 단순히 선한 행실의 의미라기 보다는 문맥상 하나님의 창조 경륜으로 보아야 한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한 일이란 하나님의 창조경륜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창세기는 하나님이 창조의 일을 하실 때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선하였다고 반복하여 기록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극히 풍성한 은혜를 베푸신 것은 하나님의 창조 목적을 이루시려는 경륜인 것이다.
이 편지의 수신자는 일차적으로 에베소의 성도들이다. 그들은 이방인으로서 유대인들이 무할례자라고 부르던 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는 아무 관계도 없었고 약속의 언약에서 배제된 자들이었으며 세상에서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부터 멀리 있던 자들이 이제 그리스도 예수의 피로 가까워진 것이다.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은 서로 상종할 수 없는 사이었지만 이제 예수의 피로 이방인과 유대인들이 가까워졌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리스도는 우리을 화평케 하시는 분으로서 유대인과 이방인을 하나로 만드사 원수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무셨다고 말한다. 유대인들과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 경륜이다. 유대인들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모든 계시는 유대인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위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유대인과 이방인간의 막히고 원수되었던 모든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게 한다. 그리스도는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하심이다. 이방인들에게나 유대인들에게나 모두 하나님의 샬롬을 전하심으로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게 하려하신다. 그러므로 바울은 에베소의 성도들이 이제는 외인도 아니요 나그네도 아니며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임을 강조한다. 그들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요 그리스도는 그 터의 모퉁잇 돌이 되셨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 터위에 지어진 건물들이 서로 연결되어 주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전이 되어 간다고 말한다. 이렇게 바울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세우시는 교회를 건축에 비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건축물은 하나님의 성전으로 비유된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된 교회에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실 것을 계시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이방인 신자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유대인과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추기 2014.11. 19
2장
바울은 이렇게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거창한 그림을 제시한 후에 2장부터 이 그림속에서 구속의 의미를 설명하기 시작한다. 하나님의 이런 거창한 그림에도 불구하고 인간 실존의 현실은 허물과 죄로 죽은 존재이다. (2장1절) 2-3절은 허물과 죄로 죽었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것은 죽어서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공중에 권세잡은 자를 따라 지내며 그 결과 육체와 마음에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인간은 독립적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을 순종하든지 마귀를 순종하든지 영에 순종하는 존재이다. 3절까지는 어두운 현실을 언급하고 나서 4절 부터 이 어둠에 빛을 비추는 하나님의 긍휼을 말한다. 하나님의 긍휼은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신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전부 :그리스도와 함께" 라고 강조한다. 그리스도의 살리심속에 우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구원은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그래서 자랑할 것이 아무것도 없다.(참고 롬8:24-27) 그리고 다시금 이런 구원의 목적은 선한 일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는데 이것은 1장 4절의 의미와 동일하다.
11-12절에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의 상황을 상기시킨다. 그 때 그들은 이방인이요 무할례자요 그리스도밖에 이스라엘 밖에 외인이요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던 자들이었다. 그런데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가까워졌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막한 담이 허물어졌다. 이제 이방인과 유대인이 차별이 없이 하나님 안에서 한 몸이 된 것이다.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울법이란 이방인과 유대인을 구별하는 사회적 율법일 것인데 이것이 폐지되었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16절에서 십자가로 이방인과 유대인이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된다고 말한다. 십자가는 모든 육체적 가치가 무의미함을 선포한다. 22절에는 성전이미지를 사용하여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로 지어져간다고 말하면서 이 일이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