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위기 19장 거룩한 삶의 규례
레위기 19장 거룩한 삶의 규례
Tolle Rege/레위기
2011-06-07 21:55:29
이것도 18장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온 회중을 향하여 주신 명령이다.
18장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그들의 악한 풍속을 본받지 말것을 경고한 것이라면 19장은 가나안 땅에서 언약적 삶을 사는데 적용할 규례가 십계명의 틀을 따라서 주어지고 있는데 십계명의 모든 계명들이 인용되거나 암시되어 나타나며 때로는 십계명이 해설되고 있다. 18장이 소극적이고 부정적인 차원에서 주어진 규례라면 19장은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차원에서 주어진 규례라고 볼 수 있다. 역시 거룩한 삶의 규례에서 먼저 선언되는 것은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언약적 관계이다. 즉 하나님이 거룩하시니 하나님의 언약백성인 이스라엘도 거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인간의 모든 도덕과 윤리의 존재 근거와 정당성은 하나님을 떠나서 그 자체에서 발견될 수 없는 것이다.
먼저 십계명이 그대로 반복되는 것은 3절에 부모경외와 안식일 준수, 4절의 우상을 섬기지 말것과 신상을 부어 만들지 말라는 명령, 그리고 11절의 도둑질하지 말며 속이지 말며 서로 거짓말 하지 말라는 명령, 12절의 거짓맹세함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말씀이다. 이외에 화목제물을 먹는 규례를 범하므로 여호와의 성물을 더럽히지 말라는 명령은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히지 말라는 3계명의 적용인 것 같다.
특별한 것은 언약공동체로서 이웃을 행한 배려가 적극적으로 길게 권고되고 있는데 이것은 이웃에게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의 적극적인 적용인 듯한데 가나안에서 정착한 후 언약공동체로서의 삶의 규범으로 주어지는 것이리라. 사회적 약자인 가난한 이웃과 장애자를 위한 배려의 요구가 현저하다. 그것은 밭의 곡식이나 포도원의 열매를 가난한 자를 위하여 남겨두며 이웃을 억압하지 말고 품꾼의 삯을 즉시 지불하라 그리고 장애를 가진 이웃을 보호해주며 재판할 때 가난한 자에게 불의를 행하지 말고 이웃을 비방하지 말며 이웃의 피를 흘려 이익을 도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웃에 대한 계명을 주시고 "나는 여호와니라"는 선언이 이어지는 것은 결국 이웃에 대한 배려가 단순한 동정심이 아니라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인 이스라엘의 구체적인 언약적 삶인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17, 18절의 명령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넘어선 이웃에 대한 배려가 신약적 차원으로 까지 발전된 것을 보여주는데 형제를 미워하는 외적 행동만이 아니라 미워하는 마음도 갖지 말며 원수를 갚지 말고 원망하지 말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하라는 것은 구약적 차원을 넘어서는 놀라운 계명이 아닐 수 없다.
19절에서 내 규례를 지키라는 명령과 함께 주어진 가축의 이종교배, 이종 작물의 교배, 두 재료 직물의 제조를 금지한 것은 창조규례에 따른 것이라가 보다는 아마도 하나님이 주신 이 규례를 혼잡시키지 말고 순수하게 준수하라는 의미로서 주어진 규례로 추측 된다.
20절의 여종과의 동침의 문제는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의 적용일 것인데 여종의 경우 자유의사를 갖지 못한 종의 신분임을 고려하여 죽임을 당하지 않고 속건제로서 그 죄 용서함을 받을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흥미로운 것은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얻는 과목의 열매는 삼년동안은 먹지 말고 4년차에 하나님께 드리고 5년차에 비로서 그 열매를 먹으라는 명령을 하시면서 그 열매는 삼년동안은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기고 먹지 말라는 점이다. 이것은 그 열매를 하나님과 아무 관계가 없는 이방인 처럼 여기고 멀리하라는 의미인데, 아마도 하나님께서 땅을 더럽힌 가나안 족속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혐오의 표현이며 동시에 이스라엘이 기나안 족속의 죄에 대하여 경각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인 것 같다.
26절부터 나열되는 금지조항들은 역시 가나안 족속의 풍습과 관련된 것 같다. 가나안족속의 행위를 본받지 말라는 부정적인 명령에 이어 언약백성으로 합당한 긍정적인 명령이 이어진다. 그리고 부정적인 명령이든 긍정적인 명령이든 예외없이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의 선언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이 모든 규례가 하나님과의 언약관에서 흘러나온 것임을 가르치는 것이다.
피채 먹지말고 점을 치치말며 술법을 행하지 말고 머리가를 둥글게 깍지 말며 수염 끝을 손상하지 말며 죽은 자 때문에 살에 문신을 하지 말라
나는 여호와니라
네 딸을 더럽혀 창녀가 되게 말라
내 안식일을 지키고 내 성소를 귀하게 여기라
나는 여호와니라
신접한 자와 박수를 믿지말며 추종하지 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거류민을 자기와 같이 사랑하라
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니라
재판할 때 불의를행하지 말라
나는 너희를 인도하여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너희는 내 모든 규례와 내 모든 법도를 지켜 행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레위기 19장
닥치고 성경/레위기
2019-10-21 19:48:59
레위기 19장
어떤 규례를 명하시면서 반복하여 후렴구처럼 등장하는 말이 바로 "나는 여호와이니라"라는 말씀이다. 왜 이렇게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이 동일한 말씀을 수없이 반복하시는 것일까? 반복되는 것은 그만큼 그 말이 중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명하시는 규례에 순종해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백성이기 때문이다. 또한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어떤 규례를 명하시는 것은 여호와가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기기 때문이다. 결국 하나님나라에서 규례나 계명이란 도덕이나 윤리적 차원이기 전에 언약적 차원인 것이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맺은 언약관계로부터 모든 규례와 계명이 흘러나오며 그 규례와 명령에 순종해야되는 이유도 거기에 있는 것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규례와 계명을 주시는 이유는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백성 답게 살게하시려는 것이며 이스라엘에 그 규례와 계명에 순종해야 하는 것 또한 그들이 여호와의 언약백성 답게 살기 위함이다. 그래서 우리는 규례와 계명을 윤리나 도덕이 아니라 언약법이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언약법을 통해 언약관계는 유지되고 발전되는 것이고 만일 언약법을 어길 경우 그 언약은 후퇴하거나 심지어 파기되기도 하는 것이다. 여기서 주어지는 모든 규례 역시 장차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때 그곳에서 하나님나라를 건설하기 위한 규례요 계명인 것이다. 이스라엘은 결코 가나안 풍습을 따라서는 안된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이스라엘은 존재 이유를 상실하고 말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가 과목을 심으면 삼년동안은 할례받지 못한 것으로 여길 것이고 사년 째 과실은 거룩하니 여호와께 드려 찬송할 것이며 다섯째 해에는 그 열매를 먹으라고 하신 것을 보면 하나님이 얼마나 가나안 족속의 죄악을 미워하시며 이스라엘이 그들의 죄악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 것을 강조하시는지 알 수 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모든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여호와는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이시요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언약백성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