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고린도후서

고린도후서 3장 옛 언약과 새 언약

메르시어 2023. 4. 20. 07:51

고린도후서 3장 옛 언약과 새 언약

Tolle Rege/고린도후서

2013-10-07 15:50:43


 

   바울은 자신이 다른 거짓 선생들처럼 자천하거나 추천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인들이 바울로 부터 복음을 듣고 믿어서 그리스도인이 된 것 그 자체가 바로 바울에 대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교회 자체가 바로 바울 자신에 대한 추천서이며 그것은 사람이 먹으로 쓴 추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고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마음판에 새겨진 추천서라고 말한다.  다시 말하면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바로  하나님의 영으로 마음판에 새겨진 자신이 대한 하나님의 추천서라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진정한 권위는 말이나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는데 있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된다.

 

  바울은 자신의 이런 확신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고 하나님을 향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이 이런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자격이 있는 자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께서 자신을 일꾼으로 부르시어 그런 자격을 주셨음을 고백한다. 바울은 여기서 하나님이 자신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라는 자격을 주셨다고 말한다.  새 언약이란 율법 조문이 아니라 오직 영으로 세운 언약이며 옛 언약에서 사용한 돌에 새긴 율법 조문( 이것은 분명 시내산 언약에서 돌판에 새겨 주어진 십계명을 비롯한 구약 율법을 가리킬 것이다)은 죽이는 것이고 새 언약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영(생명을 주는 성령의 법)은 살린다는 것이다. 바울은 율법 조문의 직분, 곧 옛 언약의 일꾼이었던 모세에게도 그 얼굴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 이스라엘 자손들이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는데 하물며 영의 직분, 곧 새 언약의 일꾼된 것이 얼마나 더 영광스러운 직분인지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여기서 바울은 옛 언약과 새언약을 대조하는 다양한 용어- 율법조문의 직분과 영의 직분ㅡ 정죄의 직분과 의의 직분- 과거의 영광과 더 큰 영광- 없어질 영광과 영원한 영광-을 사용하고 있다. 바울의 이런 대조는 옛 언약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꾼 노릇하는 그리스도의 새 언약이 옛 언약에 비교할 수 없이 더욱 영광스럽고 탁월하다는 점을 말하는 것이다. 결국 옛 언약은 새 언약을 위한 예비적이고 일시적인 언약이었다. 바울의 이 말은 고린도 교회에 들어온 거짓선생들이 옛 언약의 의미를 알지 못하므로 옛 언약을 가지고 새 언약을 거스리는 무지한 자들임을 지적한 것이다.

 

  이렇게 영광스럽고 탁월한 새 언약에 대한 소망이 있기 때문에 바울은 담대히 말한다. 모세가 자신의 얼굴에 나타난 영광을 보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쓴 것은 그 영광이 장차 없어질 일시적인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늘까지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겨지지 않고 있는데 그 수건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없어진다는 것이다.이 말의 의미는 구약의 계시가 영원한 것도 궁극적인 것도 아니고 그리스도안에 나타난 신약의 계시를 위한 예비적이고 잠정적인 계시인데 그것을 알지 못하고 아직도 구약 계시를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신약의 계시를 판단하는 어리석음을 지적한 것이다. 그 수건은 주께로 돌아가야만 벗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주는 영이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때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밝히 보게되고 주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게 된다는 것이다. 옛 언약에서 희미하게 보던 주의 영광을 이제 새 언약에서는 밝히 보게된다.  새 언약이 나타나지 않았다면 옛 언약은 무의미했을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옛 언약이 없이는 새 언약이 나타날 수 없음도 알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여기기서 옛 언약과 새언약의 관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지고 성경을 보는 것이 매우 중요함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