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
요한복음 17장 대제사장의 기도
Tolle Rege/요한복음
2013-02-05 23:54:28
예수님은 아마도 이 기도를 겟세마네 동산에서 홀로 하셨을 것이다. 고난과 죽음을 문턱에 둔 절박한 시점에서 예수님은 땀이 피가 되도록 절박한 기도를 하신 것이다. 누구도 함께 갈 수 없고 예수님 홀로 가셔야 하는 그 사망의 어두운 길을 앞에 두고 이 기도를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둔 이 마지막 기도를 시작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내가 세상을 이기었으니 너희는 환란을 당하더라도 담대하라" 고 하셨다. 예수님이 가신 죽음의 길은 세상에 지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세상을 이기는 길이었다. 죽음으로 죽음을 이기셔야 하는 예수님, 온 세상의 죄를 다 끌어안고 가셔야 하는 그 길 , 바로 이 길을 가시기 위하여 예수님은 이 세상에 사람이 되어 오신 것이다. 그 길은 사망의 어두운 길이였지만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루시는 길이었기에 그 길은 아버지가 아들을 영화롭게 하시며 또 아들이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는 길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한 것이다. 아버지는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아들을 영화롭게 하실 것이며 아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를 영화롭게 할 것이다. 바로 그 때가 이른 것이다. 그 때는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성취되는 순간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영광을 위하여 천지를 지으셨으니 창조목적이 성취를 될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제 아버지는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아들에게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실 것이며 아들은 아버지가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실 것이다. 영생은 사망의 권세에 매여있던 사람들이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사망이 하나님을 떠난 것이라면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하라고 주신 일을 이루어 이버지의 영광을 이 세상에 드러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창세전에 자신이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그 영광을 아버지와 같이 누리게 해달라고 기도한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란 아들에게 주신 사람들에게 아버지를 알게하며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게 하는 일이다. 결국 예수님의 사명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를 드러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말을 가르친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주신 말씀을 가르치신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신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하신다.이제 예수님은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지만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있다. 예수님은 세상에 남은 제자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하여 주시길 간구하셨다. 그런데 그 보전이란 단순한 보호가 아니라하나됨이 없는 세상에서 그들이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들의 하나됨은 아버지와 아들의 하나됨을 본받는 하나됨이었다. 이렇게 그들이 하나가 될 때 그들은 아들이 아버지와 함께 누렸던 기쁨을 충만히 가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것 처럼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았으므로 세상은 그들을 미워할 것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 그들을 위하여 구하시지만 그들을 세상에서 데려가기를 구하신 것이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고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으로 그들을 거룩하게 하시길 구하신 것이다.
세상이 그들을 미워할지라고 그들은 세상에 남아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아버지께서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아들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시기 때문이다. 아들이 이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을 아버지께 바치는 것은 아 사람들도 참으로 아버지께 자신을 바치게 하시려는 것이다. 이들을 통하여 복음을 전파되고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아들을 믿는 사람들이 나타날 것인데 예수님은 이들을 위헤서도 기도하신다. 다시금 예수님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 처럼 그들도 다 하나가 될 뿐만 아니라 그들이 하나가 되어 아버지와 아들안에 있게 하시길 기도하신다. 이렇게 될 때 세상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영광을 아들은 그들에게 주신다. 그렇게 하여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이다. 그 하나됨은 아들이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는 아들안에 계심으로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시는 것인데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아들을 사랑하신 것 같이 이들도 사랑하셨음을 세상으로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들은 아들이 있는 곳에 함께 있어 아버지께서 창세 전부터 아들에게 주신 아들의 영광을 보게하실 것이다. 세상은 아버지를 알지 못하지만 아들은 아버지를 알고 그들도 아버지께서 아들을 보내신 줄을 알았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그들에게 이미 알게하엿고 또 알게 하실 것이니 이는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사랑이 그들 안에 있고 아들도 그들 안에 있게 하려 함이다.
[추기] 2019-11-06 17:42:30
요한복음 17장
이제 예수는 모든 가르치기를 마치신 후에 제자들을 위해 기도하신다. 기도의 첫 머리는 아들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으로 시작된다. 이제 아들이 영화롭게 되며 아들로 말미암아 아버지도 영화롭게 될 때가 이르렀다. 그 때는 곧 예수가 떠나 아버지께로 가는 그 때, 곧 십자가에 죽으시는 때이다. 여기서 영화롭게 된다는 것은 영광이 나타난다는 의미로 보아야 한다. 이미 언급했듯이 예수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아들의 영광과 아버지의 영광이 찬란하게 드러난다. 그것은 곧 십자가 죽음을 통해 나타나는 아버지와 아들의 언약적 속성인 은혜와 진리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주신 모든 사람들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다. 여기서 영생은 공관복음에서 말하는 하나님나라와 동일한 의미이다. 이 땅에 하나님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나라의 왕이 세워져야 한다. 하나님나라의 왕이 없이는 하나님나라는 존재할 수 없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란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가 왕이 되어 다스리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나라는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을 위한 나라이다. 그렇기에 그 나라의 왕은 그 나라의 백성을 창조한다. 하나님나라의 왕으로 오신 메시아는 그 나라의 백성들을 부르시고 그 나라에 들어오게 하신다.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이 말하는 영생이다. 그러므로 영생이란 문자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예수가 메시아 곧 그 나라의 왕이심을 아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예수에게 하라고 주신 일이고 예수는 이 일을 이루려고 세상에 오셨고 죽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예수가 기도하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예수에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다. 그들은 예수의 영광을 드러낼 자들이다. 그들의 증언을 통해 예수의 왕되심이 그리고 예수를 통해 드러난 하나님의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드러날 것이다. 예수가 제자들을 위해 구하는 일은 그들을 아버지의 이름으로 보전하여 그들이 우리와 같이 하나가 되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아들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의 사랑 안에 거하듯이 제자들도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지킬 때 그들도 하나가 될 것이다. 제자들이 새 계명을 지킬 때 세상은 그들을 미워할 것이니 이는 예수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그들도 세상에 속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가 구하는 것은 제자들을 세상에서 데려가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다만 악에 빠지지 않게 보존하는 것이다. 예수는 세상을 떠나지만 제자들은 세상에 남아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예수가 보낼 보혜사 성령과 함께 이 세상에 대해 예수를 증언하야 할 자들로 보냄을 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세상에 보낸 것 같이 아들은 그들을 세상에 보낸다. 그러므로 이들의 증언으로 인해 예수를 믿을 자들이 있을 것이고 예수는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그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가 된 것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아버지와 아들 안에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 세상은 아버지가 아들을 보내신 것을 믿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예수가 주신 새 계명을 지킬 때 그들은 하나가 될 것이며 이것이 바로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맺기를 원하는 열매일 것이다. 예수가 자신의 영광을 제자들에게 보여준 것은 바로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된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