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13장 새 계명

메르시어 2023. 4. 19. 15:49

요한복음 13장 새 계명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25 22:23:17


  이제 유월절이 임박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히시기 전날 밤, 제자들과 유월절 저녁을 함께 하셨다. 이 자리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는데 예수님의 이런 행동은 당시 유대인 사회에서도 매우 이례적이었던 같다. 그래서 베드로는 자신의 발을 씻지 못하시리이다 라고 거부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들이 발을 씻기는 자신의 행위의 의미를 지금은 알지 못하겠지만 이후에는 알게되리라 하신다. 심지어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내가 너를 씻어 주지 아니하면 내가 너와 상관이 없다고 발 씻기는 행위의 깊은 의미를 말씀하신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신 이유는 제자들에게 본을 보이게 하시려는 것이니 곧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준 것 처럼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라는 교훈을 하신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선생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었으니 제자들도 서로 발을 씻어주는 것이 옳다고 하신 것이다. 발을 씻어주는 행위는 주인을 섬기는 종의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이 제자들을 사랑하고 섬기는 행위임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과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다. 예수님이 제자들을 사랑하신 방식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준 것이고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을 요구하신 것이다. 형제를 위하여 종처럼 자신을 낮추어 섬기며 자기 목숨을 내어주는 사랑, 이것이 예수님이 요구하시는 신자들간의 관계이다. 세상은 절대 흉내낼 수도 없고 가능하지도 않은 인간 관계 ,이것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 공동체에서의 인간 관계인 것이다.  결국 예수님의 교훈은 신자들이 서로 발을 씻기는 상호 사랑이다. 이것이 바로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요 예수를 영접하는 자는 바로 예수 보내신 자를 영접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중에 가롯 유다는 예수를 팔 자였다. 예수님은 이는 내 떡을 먹는 자가 내게 발꿈치를 들었다한 성경을 응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유다가 떡 조각을 받고 밤에 나간 후에 예수님은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고 하신다. 이제 유다의 배신은 돌이킬 수 없게 확정되었고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역시 이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님이 자신의 십자가 죽음의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하다. 비참한 십자가 죽음을 예수님은 인자가 받는 영광이라고 하신 이유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죽으시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이니 인자가 영광을 받는다는 말은 십자가 죽음이 예수님이 오신 목적을 완전히 이루시는 사건임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인자의 영광은 동시에 인자를 보내신 아버지의 영광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나님의 창조목적이 회복되는 시간이며 동시에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순간인 것이다.

 

  이 대목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새계명을 주신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새 계명은 예수의 죽음으로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의 근본적인 성격이 어떤 것인가를 잘 보여준다. 그 나라는 예수의 사랑에 기초한 나라이므로 그 나라의 백성들은 예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나라인 것이다. 제자들은 지금은 예수님을 따라올 수 없으며 예수님이 가는 곳에 갈 수 없다. 그러나 후에는 따라올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으로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으신 후라야 제자들도 그 길을 갈 수 있는 것이다. 베드로의 부인사건은 예수님이 이 길을 열어 놓이시기 전에는 누구도 예수 가신 그 길을 따라 갈 수 없음을 보여준 것이다.

 

[추기] 2019-11-06 17:40:31

요한복음 13장

이제 장면은 예수가 십자가에 죽으시기 하루 전날 곧 유월절 이틀 전날이다. 이 장면에서는 오직 예수와 그의 제자들만이 등장하고 예수가 제자들에게 하는 말과 기도가 17장까지 5장에 걸쳐 길게 이어진다. 이제 더 이상 대중을 위한 표적도 유대인들을 향한 메시지도 등장하지 않는다. 요한복음의 기자가 이 대목을 아주 자세하고 길게 묘사한 것은 그만큼 이 장면이 중요하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 대목은 요한복음 전체에서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인가? 그것은 앞에서 표적과 가르침을 통해 보여준 하나님나라, 그리고 임박한 예수의 죽음을 통해서 이루어질 하나님나라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보인다. 가롯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는 인자가 영광을 받았고 하나님도 인자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셨다고 말한다.(13장 31가롯 유다는 이제 제자 공동체를 떠났고 그의 배신으로 이제 예수는 십자가에 달리게 될 것이다그러므로 인자가 영광을 받았다는 말은 예수 자신의 죽음을 암시하는 말일 것이다그렇다면 왜 예수의 죽음이 예수에게 영광을 받는 일이 되는 것인가십자가에 달려 죽는 일은 치욕이 될지언정 영광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더구나 예수의 죽음으로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신다는 말은 또 무엇인가요한복음에서 영광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1장 서문이다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므로 그의 영광을 보았는데 그 영광은 독생자의 영광이고 그 영광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말했다.(1장 14이 말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오신 독생자를 통해 나타났다는 것이고 나타난 그 영광 안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는 것이다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언약적 속성인 은혜와 진리가 독생자를 통해 보일 수 있게 나타났다는 의미다이렇게 영광에 대해 말하는 요한복음의 맥락에 의하면 우리는 왜 예수가 자신의 십자가 죽음을 통해 영광을 받았으며 하나님도 영광을 받는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다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독생자에게서 나타난 것과 마찬가지로 이제 동일한 은혜와 진리가 예수의 십자가 죽음에서 찬란하게 나타날 것이다그러니까 말씀의 성육신과 마찬가지로 예수의 십자가 죽음 역시 하나님의 언약적 행동으로 이루어진 일이기 때문에 그 두 가지 사건에는 하나님의 (언약적)은혜와 진리가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고 이것이 바로 인자와 아버지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 영광을 받는다고 말한 의미일 것이다가롯 유다가 나간 후에 예수는 자신이 장차 제자들을 떠나갈 것을 말씀하시고(13장 33제자들에게 새 계명을 주셨다그것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며 이렇게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줄 알리라는 교훈이었다. (13장 34-35예수님의 마지막 교훈의 주제는 바로 새 계명이었다그런데 왜 이 교훈을 굳이 새 계명이라고 칭한 것일까그것은 아마도 구약의 모든 계명을 대치한다는 의미라기보다는 구약의 모든 계명을 집약하고 완성한다는 의미로서의 새 계명일 것이다이것은 공관복음에서 예수가 구약의 율법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요약한 것과 동일한 맥락일 것이다예수는 구약의 율법을 폐하러 오신 분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신 분이다그래서 요한 복음도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여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했을 것이다.(1장 17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는 퍼포먼스를 보여준 일도 바로 이 새 계명에 대해 가르치기 위함이었다그러니까 여기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은 추상적 개념이나 내면적이고 개인적인 감정을 의미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예수가 제자들의 발을 씻긴 것은 비록 예수는 선생이고 주였지만 선생과 주 노릇을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제자들을 주인으로 섬기는 종노릇을 한 것을 의미했다그렇다면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의 새 계명은 서로 종노릇하라는 요구를 의미한다자신이 높아지고 대접받으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고 남을 섬기는 구체적이고 공동체적인 행동이것이 바로 예수가 말하는 사랑이었다이 세상에서 모든 사람은 자신을 높이려고 하고 남을 낮추려고 하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을 낮추려 하고 남을 높이려고 할 것이다예수의 새 계명이 실천되는 나라가 바로 예수가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가 아니겠는가 예수는 그 하나님나라에 대해 제자들에게 길고 자세히 가르치고 있다. 왜냐하면 제자들이 바로 그 나라를 구성할  최초의 백성들이기 때문이다. 제자들이 없이는 하나님나라는 역사 가운데 실현될 수 없다. 하나님의 통치는 그 백성들을 통해 드러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나라는 단순히 하나님의 통치로 환원되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구체적으로 그 통치를 받는 백성들의 순종을 통해 실현되는 나라이다. 예수가 보여준 표적들이 아무 소용이 없는 듯 보이지만 사실 그것은 제자들에게는 그렇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서 예수가 행하신 표적들 그리고 가르침들이 있었기에 이제 제자들만 모인 자리에서 주어진 예수의 길고 자세한 가르침이 의미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예수가 가장 먼저 보여준 퍼포먼스가 제자들의 발을 닦아준 일이란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그것은 단지 겸손하고 서로를 섬기라는 윤리적 교훈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가 세우실 하나님나라의 근본 원리를 보여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말한다(15절) 그러면서 새 계명을 준다고 하면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서로 사랑하라고 그리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사람들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고 말한다.(34-35절) 결국 이 두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가 세우실 하나님나라가 어떤 나라인지를 보여준다. 그 나라는 서로 높아지려고 하고 상대를 낮추려고 하는 나라가 아니라 서로 낮아지려고 하는 나라, 나보다 남을 더 높여주려고 하는 나라다. 예수는 하나님나라의 왕으로서 그 백성들의 발을 씻기신 분이고 하나님나라의 왕으로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되 자기 목숨을 내어주어 사랑하였다. 그 나라의 왕이 그리했듯이 그 나라의 백성도 그렇게 하는 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 나라임을 예수는 지금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세상의 왕은 압제하고 군림하지만 그 나라의 왕은 자기 목숨을 내어준다. 세상 나라의 백성들은 자신을 높이고 남을 낮추려 하지만 그 나라의 백성들은 그 반대다. 예수가 보여준 하나님나라는 이 세상 나라가 상상할 수도 흉내낼 수도 없는 나라였다. 이 세상의 어떤 정책이나 프로그램이나 사상으로도 이룰 수 없는 그 나라가 이제 예수의 임박한 죽음으로 이루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