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12장 예루살렘 입성

메르시어 2023. 4. 19. 15:48

요한복음 12장 예루살렘 입성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24 00:14:32


  어느덧 해가 바뀌고 드디어 유월절 엿새 전이 다가왔다. 날이 서서히 저물고 세상의 빛은 이제 그 갈 길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다. 예수님은 이 때 베다니에 가셨고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를 할 때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한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닦았다. 이런 마리아의 행위는 이전에 어느 누구도 하지못한 예수님에 대한 전적인 사랑과 충성을 표시하는 것이었다. 가롯유다는 향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않고 낭비하였음을 책망하였지만 예수님은 마리아의 행위가 당신의 장례할 날을 준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마리아가 예수님의 장례를 의식하고 한 것은 아니지만 예수님은 자신의 죽으실 날이 임박했음을 말씀하신 것이다. 나사로의 살아남으로 인하여 큰 무리가 예수를 따르므로 대제사장들은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모의하였다.

  예수님은 이튿날에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는데 큰 무리가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다. 그들은 예수님을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불렀는데 이는 예수께서 메시야이심을 인정하는 호칭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이 가진 메시야 관이었지 예수님이 주신 계시에 근거한 것은 아니었다. 이 무리들은 나사로  사건으로 고무되어 예수님을 환영한 것인데 이들은 이전에 오병이어 이적을 보고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로던 바로 그 무리들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은 어린 나귀를 타셨는데 이것은 이스라엘의 왕과는 어울리지 않는 초라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요한은 예수님의 이 모습이 바로 구약의 메시야 예언의 성취라고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사람이 되어 낮아지신 하나님의 이미지와  이스라엘의 왕이지만 나귀새끼를 타신 예수님의 모습은 동일한 계시선상에 있을 것이다. 겸손하신 왕, 낮아지신 하나님 , 죽은 나사로를 살리셨고 오병이어의 이적을 행하신 분 그러나 무능하게 십자가에 달리신 분, 이분이 바로 성경이 계시하는 메시야 세상의 빛이요 생명으로 오신 구주이신 것이다.

 

  유월절에 예배하러 예루살렘에 올라온 헬라인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마도 유대교를 믿는 이방인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이 빌립에게 가서 예수를 뵙기를 청한 것이다. 이들은 유대인들이 가졌던 왜곡된 메시야 사상으로 부터 자유로웠을 것이고 그들이 예수님을 뵙고자 한 것은 이제 이방인들에게 예수님의 교훈이 퍼질 때가 이르렀음을 의미한 것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하시면서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고 하신 것은 자신의 죽음으로 하나님나라 복음이 이방에 퍼져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을 가리키신 것이다. 이어서 예수님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는 자는 생명을 잃어버릴 것이요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는 영생토록 보전한다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는복음이 열매를 맺는 방식은 예수님이 시작하신 것과 동일하게 진행될 것을 가르키신 것이다. 예수님이 자기 생명을 버리심으로 시작된 영원한 생명은 이 세상에서 자기 생명을 미워하는 자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마음이 괴롭다고 하시며 자신을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해달라고 하신 기도는 예수님이 철저히 인간이심을 보여주는 모습이다. 그것은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앞둔 나약하고 무능한 인간이 겪는 고통인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이 죽음을 위하여 오셨음을 자각하고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아버지의 이름이 영광스럽게 되기를 소원하셨다. 하늘에서 예수님의 기도를 들으신 아버지는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고 대답하셨다. 그러나 이 소리는 예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무리들을 위하 것이었다. 예수님은 이제 세상에 심판이 이르렀으니 세상의 임금이 쫓겨 나리리고 단언하신다,. 이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 사망의 권세 잡은 마귀가 내어쫒길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다는 말씀은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으로 이어지는 모든 일들이 바로 자신을 따르는 모든 신자들에게 동일하게 이루어질 일임을 계시하신 것이지만 누가 이 당시에 이 말씀을 깨달았겠는가?  무리들은 율법에서 메시야가 영원히 계신다고하였느데 어찌 인자가 들려야 하느냐고 반문한다. 그들의 메시야는 그 왕권이 영원한 인간 메시야이므로 죽어서는 안되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그들의 메시야관으로 예수님을 재려고 하였기 때문에 생명의 반석이신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에게 걸려 넘어지는 돌이 되어버린 것이다. 예수님이 이들이 어둠에 붙잡혀 있는 자들임을 지적하시며 빛이 아직 있을 동안에 빛을 믿으라고 권하신다. 이렇게 많은 표적을 그들 앞에서 행하셨지만 그를 믿지 않은 것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들을 귀와 볼 눈을 주지 않으심으로 그들의 마음이 완고하여 진 것이니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진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임을 강조하시며 자신을 믿는 것이 곧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자신을 보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보는 것이라고 무리들을 행하여 외치셨다. 이는 자신이 구약의 선자자와 같은 의미로 하나님의 보내신 자가 아니라 하나님과 동등된 자로서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분이심을 주장하시는 말씀이다. 그리고 자신은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빛으로 오셨으므로 무릇 자신을 믿느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다. 온세상은 어둠에 붙잡혀 있고 세상에는 빛이 없다. 그런데 주님은 유일하신 빛이시다. 그 빛은 세상의 빛 곧 세상을 비추기 위하여 오신 빛이시다 그러므로 그 빛을 믿는 자, 빛으로 나아오는 자는 어둠에 거하지 않고 빛의 아들이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세상을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려 오셨다. 그러나 예수님을 거부한 자들을 심판하실 이가 계시니 그는 예수님을 보내신 자 아버지이신 것이다. 예수님을 반대한 자들은 곧 하나님을 반대한 자들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자의로 말하신 것이 아니라 그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명령하신 것을 말하였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명령은 영생이시다. 그러므로 그 명령을 지키지 않는 자는 영생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심판을 받을 것이다.

 

[추기] 2019-11-06 17:35:08

요한복음 12장

때는 유월절 엿새 전이고 장소는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7장에서 예수는 초막절에 예루살렘에 올라오셨고  그 다음해 유월절이 임박한 때까지 계속 예루살렘과 부근에서 머물러 계신 것으로 보인다. 베다니에서 예수를 위한 잔치가 벌어졌고 마리아는 예수에게 비신 향유를 부었다. 예수는 마리아의 그런 행위가 자신의 장례할 날을 위한 준비로 해석했다. 이제 12장 부터는 예수의 임박한 죽음에 대한 암시가 본격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12절 이하에는 예수가 예루살렘 성에 들어가는 모습이 그려지는데 공관복음에서와 마찬가지로 이 모습은 예수의 예루살렘 성 입성이 이전의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모습과는 다르다. 그것은 분명히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왕이 거처하는 곳이고 예수가 입성하는 모습은 자신이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예루살렘에 들어가고 있음을 암시한다. 그리고 예수를 환영하는 사람들도 그 의미를 분명히 인식하고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부르고 있다. (13절) 흥미로운 것은 유월절에 예배하려 예루살렘에 온 헬라인들이 예수를 뵙기를 청했다는 점이다. 이미 그들에게도 예수의 명성은 잘 알려져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는 그 소식을 듣고 인자가 영광을 얻을 때가 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영광을 얻는다는 것은 분명히 자신의 죽음을 암시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는 헬라인들이 예수를 뵙자고 청하는 소식을 듣고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이어지는 말씀들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 헬라인들을 포괄하는 하나님나라가 이루어질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죽임을 당하는 메시아는 유대인들은 상상할 수 없었다. 그들의 메시아관에 의하면 메시아는 영원히 계셔야만 했다. 자신들의 메시아관과 맞지 않는 그러나 자신을 메시아로 주장하는 예수, 이 사이에서 유대인들은 의혹을 거듭하고 있다(34절) 그러나 예수는 자신이 어둠을 비추는 빛이라고 주장하며 빛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이 어둠에 사로잡힌 자들임을 지적하고 있다.(35-36절) 아무리 많은 표적을 행해도 유대인들은 예수를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요한복음 기자는 이것이 바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응한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어진 예수의 설교(44-50절)은 유대인들을 향한 마지막 설교였다.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겐 어떤 표적도 메시지도 주어지지 않는다. 예수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믿는 것은 자신을 메시이로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것이며 자신을 보는 자는 자신을 보낸 하나님을 믿는 것이라고 외쳐 이르셨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지 않는 유대인은 곧 그들이 하나님이라 떠받드는 분을 믿지 않는 것이라는 말이 된다. 하나님을 믿는 것과 예수를 믿는 것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에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며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은 곧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