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의 기적
요한복음 6장 오병이어의 기적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15 18:00:19
예수님은 유대인의 명절이면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지만 그의 사역의 주된 무대는 이스라엘의 변방 소외된 지역인 갈릴리 지방이었다. 갈릴리에서 늘 큰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는데 이는 병자들을 고치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었다. 예수님은 이 무리들에게 또 하나의 큰 표적을 행하셨는데 그것은 소위 오병이어의 기적이었다. 한 아이가 가진 보리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마리를 가지고 오천명을 먹이신 것이었다. 사람들은 예수께서 행하신 이 표적을 보고 말하되 이는 참으로 세상에 오실 그 선지자, 즉 모세가 말한 바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오신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그들은 예수를 억지로 붙들어 왕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큰 무리가 병고치는 표적을 보고 예수를 따랐고 오병이어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를 왕 삼으려고 하였지만 예수님은 오히려 그들을 피하여 산으로 떠나가셨다. 큰 무리들은 표적을 보고도 그 표적이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적 표적임을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 표적을 올바르게 해석하였다면 모든 질병을 고친 일이나 오병이어의 기적이 모두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나님나라가 도래하였음을 알리는 표적임을 알았을 것이다. 그리고 메시아로 말미암아 도래할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구약성경에 풍부하게 나타난 핵심계시였던 것이므로 그들이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었다면 충분히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의 의미를 깨달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모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고 하신 것이다.그러나 그들은 모세의 글도 믿지 아니하거든 어찌 내 말을 믿겠느냐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구약성경을 신주단지처럼 모시기는 했지만 결코 구약성경을 제대로 읽지도 않았고 깨닫지도 못했던 것이다.
예수님이 행한 병고침과 오병이어의 기적은 모두 예수님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이심과 구약에 예언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증거하는 표적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무리들은 이적의 현실적 유익만을 바라보며 자신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능력자로서 예수를 왕 삼으려고 했을 뿐이다. 무리들의 이런 무지는 결국 구약성경에 대한 그들의 무지를 입증하는 것이다. 구약성경을 늘 읇조리는 유대인들이지만 정작 그들은 구약성경에 계시된 메시아와 하나님나라의 계시를 알지 못하였던 것이다. 예수님은 그 무리들을 피하여 가셨지만 그들은 배를 타고 가버나움까지 예수를 좇아왔다. 가버나움 회당에서 이 무리들과의 대화를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바로 메시아 이심을 밝히 드러내신다. 그들이 예수님을 찾은 까닭은 표적을 깨달아서가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르기 위함이었다. 그런 무리들을 향하여 예수님은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고 책망하시면서 바로 자신이 그 영생하는 양식을 주시는 분이심을 밝히셨다. 무리들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였고 어떻게 하나님의 일을 하느냐고 물었다. 예수님이 바로 영생하는 양식을 주는 분임을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이런 질문을 한 것을 보아서 무리들은 예수님의 말귀를 못알아 들은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다시금 하나님께서 보내신 자신을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가르치셨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무리들은 그렇게 표적을 보고도 우리가 당신을 믿도록 행하시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반문하였다. 무리들은 자기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만나와 같은 표적을 요구한 것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주셨던 만나와는 비교도 안될 하늘로 부터 오는 참 떡, 곧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을 주실 것을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곧 생명의 떡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신다. 그리고 생명의 떡인 자신에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것이요 자신을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다.이제 예수님은 의혹의 여지가 없이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무리들이 자신이 행한 표적을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 자들임을 지적하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주시는자는 다 자신에게로 올 것이며 그들을 결코 내어쫒지 아니하실 것을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자신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함이신데 그 뜻이란 아버지가 아들에게 주신 자 중에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고 마지막에 다 살리는 것이었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자란 아들을 보고 믿는 자이며 그들에게 영생이 주어질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하늘에서 내려온 떡이라고 말하자 무리들은 그가 요셉의 아들 예수이며 그 부모를 자신들이 아는데 어찌하여 하늘에서 내려왔다 하느냐고 수군거렸다. 이들에 대한 예수님의 판단은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자신에게 올 수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이끄시는 자만이 아들에게 올 것이며 아들은 자신에게 온 자를 마지막 날에 다 살리실 것이다. 아들에게 오는 자들은 아버지께 듣고 배운 자들이라는 말은 구약성경의 계시를 깨달은 자들을 가리킬 것이다. 하늘 아버지를 직접 본 자는 오직 하나님에게서 온 자이신 아들뿐이시다. 예수님은 다시금 자신이 생명의 떡이며 믿는 자는 영생을 얻을 것이라 선포하신다. 광야에서 만나를 먹은 자들은 사망의 권세를 피할 수 없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온 떡은 사람으로 먹고 죽지 않게 하는 것, 즉 사망의 권세에서 해방시키는 생명의 떡인 것이다. 예수님이 자신을 영생케하는 떡, 세상의 생명을 위한 떡이라고 하신 것은 자신이 곧 아담의 범죄이후 모든 인간을 사로잡고 있는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시는 분이심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자신이 줄 떡이란 바로 세상의 생명을 위한 자신의 살이며 피라고 말씀하시자 이 말로 인하여 유대인들 가운데 다툼이 일어났다.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속에 생명이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무리들에게 갈수록 이해하기 어려운 수수께끼와 같았을 것이다. 예수님은 그 의미가 무엇인지 아무 설명도 아니하시면서 엄청난 계시를 비유로 퍼부으신 것이다. 자신의 살은 참된 양식이고 자신의 피는 참된 음료라며 자신의 살을 먹고 자신의 피를 마시는 자는 자신 안에 거하고 자신도 그의 안에 거한다는 대목에 이르렀을 때 아마도 무리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졌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위대한 은유를 멈추지 아니하시고 자신을 보내신 아버지로 말미암아 자신이 사는 것 같이 자신을 먹는 자도 자신을 인하여 살리라고 말씀하신다. 결론은 자신이 하늘에서 내려온 떡인데 이 떡은 조상들이 먹고 죽은 만나와 같지 아니하며 영생을 주는 떡이라는 것이다. 제자들도 이 말을 듣고 누가 이 말을 깨달을 수 있느냐고 수군거렸다. 예수님은 제자들에 대하여 이 말이 걸림이 된다면 장차 인자가 이전에 있던 곳, 곧 하늘로 올라가는 것보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하신다. 이 말씀은 물론 자신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승천을 가리키는 것이었지만 그 당시 누가 이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겠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오직 성령만이 생명을 주신다는 의미인 동시에 아직 제자들은 성령을 받지 못하고 생명을 얻지 못한 상태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라 하는 자들이라도 믿지 않는 자들이 있으며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지 아니히시면 누구든지 자신에게 올 수 없다는 엄중한 진리를 다시금 강조하신다. 이 말을 듣고 자칭 제자라하는 많은 자들이 예수를 떠나갔지만 예수님이 택하신 열두 제자들은 예수를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인줄 믿고 알았다는 신앙고백을 하게된다. 그러나 제자중의 가롯 시몬의 아들 유다는 마귀였다.
[추기] 2019-11-06 17:32:12
요한복음 6장
디베랴의 갈릴리 바다 건너편, 유월절이 가까운 때에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났다. 큰 무리들이 예수를 따랐는데 이는 그들이 예수가 병자들에게 행하는 표적을 보았기 때문이다. 오병이어 기적 역시 예수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증거하는 표적이었다. 큰 무리들에게 먹을 것이 전혀 없는 상황은 로마의 압제 아래 있는 이스라엘의 무기력한 처지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병자를 고친 이적과 마찬가지로 먹는 문제를 해결하는 오병이어 이적 역시 하나님의 통치가 임할 때 일어나는 자유와 해방을 보여준 표적이다. 오병이어 표적을 본 무리들은 예수를 선지자로 여기거나 혹은 왕으로 삼으려고 했다.(14-15절) 그러나 무리들의 그런 반응은 표적에 대한 오해였고 예수는 단호하게 그들을 떠나셨다. 무리들은 배를 타고 예수를 찾으러 가버나움으로 가서 예수를 만났는데 그들이 예수를 부르는 호칭이 랍비였던 것으로 보아 그들은 예수가 보여준 표적이 하나님나라 표적임을 깨닫지 못한 것이 분명해 보인다. 그래서 예수는 그들이 예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고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라고 하셨다.(26절) 그들은 표적을 보았지만 표적이 의미하는 바를 깨닫지 못했다. 오병이어 이적을 통해 예수는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보여주었건만 무리들은 오직 썩을 양식만을 보았던 것이다.(27절) 오병이어 표적은 분명히 하나님나라를 보여주는 표적이었고 동시에 그 하나님나라를 도래케하는 메시아가 바로 예수임을 보여준 표적이었다. 그러나 무리들은 여전히 예수를 믿도록 행하는 표적이 무엇이냐고 묻는다.(30절) 그러면서 무리들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던 표적을 거론한다. 그러자 예수는 자신이 주는 떡은 이스라엘 조상들이 광야에서 먹은 떡과 달리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떡이라고 대답한다. 그리고 그 생명을 주는 떡이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말한다.(35절)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다시는 주리지 않으며 영원히 목마르지도 않는다. 그러나 무리들은 이 생명의 떡인 예수를 보고도 믿지 않는다. 이 장면은 "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고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는 요한복음 서문의 한 구절을 생각나게 한다. 예수는 무리들에게 이스라엘 조상들은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어도 죽었지만 하늘에서 내려오는 생명의 떡을 먹는 자는 영생할 것이라고 말한다.(49-51절) 이어서 예수는 그 떡은 곧 세상의 생명을 위한 내 살이라는 충격적인 말을 하는데, 이 말로 인해 유대인들 가운데 소동이 일어난다. 그러자 예수는 한술 더 떠서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셔야 영생을 얻는다고 말함으로써 유대인들 가운데 오해를 증폭시킨다. 표적을 보았지만 깨닫지 못하는 그들에겐 예수의 말은 점점 의혹을 증폭시킬 뿐이었다. 제자들도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되었다.(60-61절) 이 대목에서 요한복음 저자는 예수께서 제자중에 믿지 않는 자가 누구며 자기를 팔 자가 누구인지 아신다는 해설을 붙여 놓았다. 결국 "누구든지 내 아버지께서 오게하여 주지 않으며 누구든지 내게 올 수 없다" 예수의 선언으로 제자들 중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는 예수와 함께 다니지 않게 되었다.(66절) 예수를 떠나고 예수를 배반하는 것은 예수가 누구이신자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복음서의 주제는 바로 예수가 누구이신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며 증거이다. 그러나 예수 당시에 표적을 본 무리들이 그랬듯이 오늘날도 복음서의 대답을 듣고 증거를 보지만 정작 예수가 누구이신지 알지 못할 자가 많을 것이다. 오직 예수가 택한 제자들은 예수는 영생의 말씀이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자이심을 믿고 알았듯이(68-69절) 오늘날도 그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