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5장 안식일 논쟁

메르시어 2023. 4. 19. 15:43

요한복음 5장 안식일 논쟁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15 17:59:21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님은 다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예루살렘 양문 곁에 베데스다 연못에는 많은 병자, 맹인, 다리 저는 사람, 혈기마른 사람들이 누워 물이 동하기를 기다렸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움직이는데 움직인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이든지 낫게된다고 풍설을 듣고 온 사람들이다. 허망한 풍설이지만 지푸리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기다리는 이 들의 모습은 무능하고 절망적인 인간군상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예수님은 거기서 38년된 병자에게 주목하신다. 그는 병을 고치겠다는 일념으로 연못에 들어가기를 기다렸지만 아무도 그를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38년이란 긴 세월을 철저한 무능과 절망가운데 지내온 사람이었다. 예수님은 즉시 그를 고쳐주셨으니 종교의 중심지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첫 표적이었다. 예수님이 성전에서 병나은 자를 만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이 사람이 38년이나 병에 시달려 온 것은 그의 범죄로 말미암은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이 병자의 상태는 범죄한 인간이 범죄의 결과로 고통해온 인간 역사의 오랜 질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 같다. 그리고 예수님이 그런 병자에게 주목하고 그를 즉시 고쳐주신 것도 예수님이 병든 인간 역사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치료하는 분이심을 암시한다. 이 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유대인들과 본격적인 갈등과 대립속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와냐하면 예수님이 병자를 고치신 날이 안식일이었고 안식일에 이런 일을 행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박해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이다. 안식일에 병자를 고치신 일에 대하여 예수님은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을 들은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시한다고 생각하였고 더욱 예수를 죽이려고 하였다.

 

  예수님은 자신을 박해하는 유대인들을 향하여 일장의 설교를 하셨는데 거기에는 의미심장한 계시들이 풍성하게 드러나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대인들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설교이었으며 그들의 분노와 적개심을 가일층 자극하였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설교는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며 하나님과 동등된 자로 주장하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신 것은 안식일을 범한 문제를 놓고 하신 말씀인데 이는 예수님이 하신 일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고 그대로 행하신 것이라는 의미이다. 즉 안식일에 불쌍하기 그지없는 병자를 고쳐주신 것은 하나님이 이 땅에 내려오셨다면 행하셨을 바로 그 일을 예수님이 행하였다는 것이다. 이제 예수님은 본격적으로 자신이 누구이신지를 계시하기 시작하신다. 물론 당시에 유대인들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지만 이런 말씀은 유대인들의 전통적인 메시아 사상을 뛰어넘는 놀라운 설교였다.   먼저 예수님은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자신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대로 행한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는 자신의 말과 행동의 신적 권위를 주장하신 것이었다. 그러므로 아들인 자신은 하나님처럼 죽은 자도 살리며 세상을 심판하는 권세도 가진 자이이므로 아들을 공경하지 않는 자는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는 자라고 규정하심으로써 자신과 하나님을 동등시 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그런 신적 권위를 가졌지만 스스로 심판하지 않고 듣는대로 심판하며 자신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한다고 하심으로써 자신의 권세가 철저히 하나님에게 복종된 권세임을 천명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에 대한 증언도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고 하늘의 아버지가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 증거는 자신이 이루는 역사 자체가 아버지게서 자신을 보내신 것을 증언하는 것이며 또 자신을 보내신 하나님께서도 친히 자신을 위하여 증언하신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구약성경이 바로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것이므로 모세를 믿었더라면 또 자신을 믿었을 것이라고 말씀하심으로서 모세를 떠받드는 유대인들이 사실은 모세도 믿지 않는 위선자들임을 지적하신다.

 

[추기] 2019-11-06 17:31:38


요한복음 5장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었다고 하니(1절) 이는 아마도 2장13절 유월절에 이어진 초막절일 가능성이 높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는 유대교의 명절이 되면 예루살렘에 올라간 것으로 묘사된다. 베데스다 못에 들어가 보려고 기다리는 그러나 들어갈 가능성은 거의 없는 38년 된 병자를 예수가 고쳐주는 사건이 등장한다. 이 사건 역사 하나님나라를 드러내는 표적일 것이고 그렇다면 38년된 이 병자 역시 스스로는 어찌할 수 없는 절망적인 이스라엘을 암시할 것이다. 누가 자기를 베데스다 못에 넣어주길 바라는 병자에게(7절)  예수는 그의 기대를 뛰어넘는 놀라운 말을 하신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는 놀라운 명령이다.(8절) 그리고 그 사람은 즉시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갔다.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것임을 이 치유사건은 보여준다. 하나님을 떠나 스스로는 어찌해볼 길이 없는 절망적인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을 즉시 회복시키시는 하나님, 그분이 바로 메시아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신 것이다.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돌아오신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고 이것이 바로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는 것이다. 메시아가 오시지 않고는 하나님나라는 도래하지 않는다. 메시아의 도래가 곧 하나님나라 도래다. 문제는 병자를 고친 날이 인식일이라는 점이었다. (9절) 예수가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일이나 병자에게 안식일에 짐을 지고 걸어가라고 한 것은 유대인들이 보기에 명백히 안식일 계명을 범한 것이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했다(16절) 그런데 예수는 자신이 안식일에 병자를 고친 일이 하나님이 자신을 통해 하신 일이라고 주장했다.(17절) 예수의 이런 주장은 안식일을 범한 죄에 더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은 죄를 더한 것으로 간주되어 유대인들은 이제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18절) 이 때를 기점으로 예수와 유대인들 간의 본격적인 갈등이 시작되었고 예수는 죽음에 이르게 되는 그 갈등을 의도적으로 일으키셨다. 내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는 예수의 주장은 곧 안식일에 병을 고친 그 일이 바로 하나님이 행하신 일이라는 주장이었다.  이 주장은 유대인들에게 대단히 신성모독적인 말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하신 분이 하나님이신데 예수는 안식일 계명을 범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안식일 계명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게 된다. 안식일 계명은 시내산 언약에서 주어진 십계명에서 처음 등장하는데 이 계명에 여호와께서 모든 창조를 마치고 제7일에 쉬셨기 때문이라는 조건절이 이어진다.(출20장 11절)그러니까 여호와께서 창조를 마치시고 제7일에 안식하셨으므로 이스라엘도 안식하라고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안식이 단순히 일을 마치고 휴식을 한 것으로 이해해서는 안된다. 오늘날 구약학자들 중 다수는 여기서 하나님의 안식은 신들이 성전이 지어진 후에 그 성전의 주인으로서 좌정하는 고대근동의 신화를 반영한다고 본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안식은 이제 창조가 끝난 후 창조세계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하나님나라)가 시작되었음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보여주는 표적으로서 병자를 고친 사건이 안식일에 일어난 것은 당연하고도 의미심장한 것이라 볼 수 있다. 예수는 의도적으로 안식일을 택하여 병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을 통해 도래하는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신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 사건으로 인해 예수를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려고 했다. 38년된 병자처럼 절망적인 처지에 빠진 이스라엘에게 이 표적은 진정한 복음이요 빛이었지만, 이스라엘은 그 빛으로 나아오지 않고 오히려 빛을 미워했던 것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긴 설교(19-47절)는 빛이 비치되 빛을 깨닫지 못하는 어둠(요한 1장 5절)을 향해 빛의 증언하는 절절한 목소리였다. 이 설교의 결론은 유대인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는 그들이 모세를 믿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떠받들고 있지만 정작 그들은 모세를 믿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이 이 설교를 통해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