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요한복음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

메르시어 2023. 4. 19. 15:42

요한복음 2장 가나의 혼인잔치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08 22:17:25


   갈릴리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든 사건은 예수님이 행한 첫 표적이었고 이 표적을 통하여 자신의 영광을 나타내셨다. 연회장이 첫 포도주 보다도 좋은 포도주를 나중에 내었다고 신랑을 칭찬한 말은 마치 하나님이 더 좋은 은혜를 예수님을 통하여 예비하신 것을 연상케 한다. 아마도 예수님은 자신이 자발적으로 행한 표적은 아니지만 포도주 표적을 통하여 자신을 통하여 하나님이 더 큰 은혜를 준비하셨음을 계시하신 것이 아닌가 한다.

 

  유월절이 가까운지라 예수님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다. 오순절, 장막절과 더불어 유월절은 모든 유대인 남자들이 의무적으로 예루살렘의 성전으로 모여야 하는 절기였다. 당시에 성전 바깥 뜰에서  제사 제물로 바칠 짐승들을 팔았고 그 거래를 위하여 돈 바꾸는 곳도 있었다. 이것은 희생짐승을 끌고 올 수 없는 먼거리에 있는 사람들을 위한 편의로 운영되고 있었던 관습이었다. 그런데 예수님은 채찍으로 짐승들을 성전 뜰에서 내어쫒고 돈 바꾸는자들의 돈을 엎으시는 과격한 행동을 하셨다.  내 아버지의 집으로 장사하는 집을 만들지 말라고 하신 것으로 보아 예수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성전내에서 장사하는 일에 분노하신 것같다. 여기서 유대인들과의 최초의 갈등이 벌어지는데 그것은 예수님이 그런 행동에 대하여 유대인들이 무슨 권세로 그리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성전을 헐면 사흘만에 일으키겠다는 기이한 대답을 하신 것이 발단이 되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이 말씀은 성전된 자기 육체가 죽은 후 사흘만에 살아나실 것을 미리 예언한 말씀이라고 해석을 덧붙이고 있다.

 

[추기] 2019-11-06 17:30:02

요한복음 2장

예수의 등장은 가나의 혼례 잔치와 더불어 시작된다. 거기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표적이 나타나고 이 표적을 통해 예수의 영광이 나타났다고 말한다.(11절) 요한복음에는 표적이 많이 나타나는데 요한은 특별히 이 표적을 첫 표적이라고 칭하며 이 표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요한은 왜 이 표적을 처음에 배치하고 특별히 이 표적을 강조한 것인가? 그리고 이 표적을 통하여 어떻게 예수의 영광이 나타났으며 또 나타난 그 영광은 무엇인가? 포도주 사건에 이어 바로 등장하는 사건이 성전사건이다. 그런데 이 사건은 공관복음서에서는 예수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들어갈 때 있었던 사건으로 묘사된다. 아마도 성전 사건이 한 번이 아니라 두 번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요한이 의도적으로  성전 사건을 여기에 배치했을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떤 것이든지 포도주 사건에 이어 바로 성전 사건을 배치한데는 어떤 의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다. 혼례 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다는 것은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으며 이것은 잔치를 망쳐버릴 수도 있는 절박한 상황이다. 그런 상황에서 질좋은 새 포도주가 공급된다는 것은 잔치에 벌어진 심각한 문제를 일거에 해결하는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포도주 사건을 하나의 은유로 해석해 본다면 포도주가 떨어진 잔치는 아마도 절망적인 상태에 있던 이스라엘의 상황을 의미할 수 있고 질 좋은 새 포도주가 공급된다는 것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신 예수가 이스라엘의 문제를 일거에 그리고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분이심을 암시한것으로 보인다. 이어지는 성전 사건도 포도주 사건과 유사한 은유라고 볼 수 있다. 성전에서 예수님이 행하신 상징적인 행동은 성전으로 상징되는 타락한 유대교에 대한 심판을 의미할 것이다. 특히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에 일으키리라(19절)는 말로 보아 예수님의 상징적 행위는 성전이 심판을 받고 무너질 것에 대한 예고로 보인다. 그러나 예수님은 성전을 무너뜨린 후에 다시 세우실 것을 암시하고 있다. 그러니까 성전사건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가 타락한 유대교를 무너뜨리고 새롭게 세우실 것을 보여주는 상징이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보면 포도주 사건이나 성전 사건은 모두 메시아로 오신 예수가 절박한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 혹은 타락한 유대교의 문제를 해결하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실 메시아이심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두 사건을 이렇게 해석하게 되면 비로소 우리는 왜 포도주 사건이 예수의 영광을 나타낸 사건이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요한복은 1장14절에는 영광이란 말이 처음 등장하면서 그 영광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라고 그 은혜와 진리는 이미 모세의 율법에 나타났던 것인데 이제 그 실체가 예수로 말미암아 충만하게 나타났다고 말한다.(1장 17절) 그렇다면 포도주 사건을 통해 나타난 예수의 영광이란 바로 충만한 은혜와 진리, 곧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절망적 상황에 빠진 이스라엘, 타락하여 심판을 받아야 할 유대교를 하나님은 그대로 방치하시는 것이 아니라 메시아를 보내어 고치시고 새롭게 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맺은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나 혼인 잔치의 포도주 사건은 은혜와 진리, 곧 예수의 영광이 나타난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영광은 충만하게 나타난 것이 아니라 희미하게 나타났을 뿐이다. 왜냐하면 아직 예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다.(4절) 그 때가 이르면(요한복음에서는 예수가 들릴 때, 곧 예수의 죽음의 때) 예수의 영광, 곧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찬란하게 나타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