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요한복음 1장 말씀이 육신이 되어
Tolle Rege/요한복음
2012-12-08 16:30:14
다른 복음서와 달리 요한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거는 매우 독특하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태초에 계신 말씀으로 소개하기 시작한다.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홀로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면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이 아니신가? 여기에 대한 요한은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한다. 다시 말하면 태초부터 계신 말씀은 하나님이시면서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는 것이다.. 요한은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분명하게 말하면서도 예수 그리스도와 다른 신적존재이신 하나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그런데 요한은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고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다고 말함으로써 태초부터 계신 말씀이 또한 창조주이심을 증거하고 있다. 그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고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고 말한 것은 반대로 사람들은 사망과 어두움 가운데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한 것은 생명이 사망 가운데 들어왔지만 사망 가운데 있는 사람들이 생명이 자신들 가운데 들어온 것을 알지 못하였다는 말이다. 참 빛이 어두운 세상에 오셨고 각 사람을 비추셨지만, 세상을 지으신 그가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을 그를 알지 못하였고 그의 백성은 그를 영접하지 않았다. 그러나 참 빛을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진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다.
이어서 요한은 세례요한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면서 그는 빛에 대하여 증언하고 모든 사람이 자기로 말미암아 빛을 믿게 하려고 하나님이 보내신 자라고 소개한다. 요한이 세례 요한을 빛에 대한 증거자로서 잠시 언급한 것은 세례요한이 증거하는 바로 그 빛이 세상에 오셨고 각 사람을 비추셨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었다. 그리고 빛이 세상에 오신 방식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 가운데 가운데 거하신 것이었다. 육신이 되어 사람가운데 거하시는 그 말씀에게는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 있었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세례요한이 자기 뒤에 오시지만 자기 보다 먼저 계신이라고 증언한 그 분이 바로 이 분이었다. 그에게 충만한 은혜와 진리로 부터 우리는 은혜위의 은혜 곧 최고의 은혜를 받는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신 것이지만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다. 이 말은 율법과 은혜의 이원론을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근본적 법 정신이 은혜와 진리인데 이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실체인 은혜와 진리가 드러났다는 것이다. 여기서 드디어 요한은 자신이 지금까지 증거한 그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밝힌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시는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이라고 말한다. 육신을 입으신 하나님, 그 분이 바로 요한이 증거하려는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이다.
이렇게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웅장한 선언으로 복음서의 서두를 마친후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하는데 다른 복음서와 마찬가지로 세례요한에 대한이야기로 시작한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은 예수님이 오시는 길을 예비하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였기 때문이다. 그는 구약을 마감하고 신약을 여는 특별한 사명을 가진 선지자였다, 그래서 세례요한은 네가 누구냐고 묻는 예루살렘의 종교 권력자들에게 자신은 이사야가 예언한 바,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라고 하였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는 특이한 표현을 하였다. 그리고 그가 자신의 뒤에 오시지만 자신보다 먼저 계신 분이라고 증거하였다. 세례요한도 예수님을 알지 못하였지만 성령이 비둘기 같이 하늘로서 내려와 그 위에 머무는 것을 보고 바로 예수가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알게 된 것이다. 세례 요한이 물로 회개의 세례를 베푼 것은 바로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었다. 세례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의 제자가 된 사람이 안드레였고 안드레를 통하여 그의 형제인 시몬 베드로도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또 예수님은 안드레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인 빌립을 제자로 부르셨다. 이들은 모두 예수를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분, 곧 메시아이심을 믿었던 것이다. 나다나엘은 어찌 메시아가 나사렛에서 나올 수가 있는냐고 의심하였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즉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이스라엘의 왕이심을 고백하게 되었다. 예수님이 나다나엘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고 하신 말씀은 구약에서 야곱의 꿈에 나타난 천사의 모습을 연상하게 하는데 아마도 이것은 예수님을 통해 나타날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의미할 것이다.
[추기] 2019-11-06 17:29:30
요한복음 1장
모든 복음서의 주제는 예수가 누구인가에 대한 증언이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라고 선언한다(1-2절). 그뿐 아니라 요한은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며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다고 말한다.(3절) 요한복음의 이런 선언은 분명 공관복음서의 예수에 대한 증언과는 현격하게 다르다. 여기서는 분명하게 예수의 선재성과 신성을 주장하고 있다. 어떻게 요한복음의 기독론이 공관복음서의 기독론과 현격한 차이를 보이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요한복음의 독자들에게 예수에 대한 이런 신앙은 자명하였던 것 같다. 그런데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이런 초월적인 선언은 이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초월적인 존재인 예수가 어떻게 이 세상과 관련되는지를 말하고 있다. 그 말씀 안에는 생명이 있었는데 이 생명이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 되었다는 것이다.(4절) 문제는 빛이 비추었지만 사람들이 그것이 자신들에게 생명을 주는 빛인줄 깨닫지 못한다는데 있다.(5절) 그래서 그 빛에 대한 증인이 필요했고 그 증인으로 보냄을 받는 사람이 바로 세례 요한이다.(6-8절)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은 각 사람을 비추는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지만 세상은 그를 알지 못했다. 요한복음은 그 빛이 먼저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오셨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예수가 먼저 이스라엘의 메시아로 오셨음을 의미할 것이다. (9-11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예수를 거부하였고 이제는 (이스라엘을 넘어)누구든지 예수를 영접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이스라엘이란 민족적, 혈통적 권리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을 믿는냐 여부로 결정된다.(12-13절) 그렇다면 태초부터 계시던 말씀은 어떻게 사람들을 비추는 빛이 되셨으며, 어떻게 세상에, 특별히 자기 땅, 자기 백성에게 오셨는가? 요한복음은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다(장막을 쳤다는 의미) 고 말한다.(14절) 이 표현은 구약에서 이스라엘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던 성막이나 성전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 그러니까 구약에서 성막이나 성전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가 상징적으로 나타났다면 이제 그 상징의 실체로서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어 이스라엘 가운데 오신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구약에서 성막이나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났듯이 이제 육신이 되신 말씀에도 영광이 나타났는데 그 영광은 이전에 나타난 영광과 비교할 수 없이 충만한 영광이리고 말한다. 그런데 요한복음은 그 영광을 아버지의 독생자(유일하신 아들, 곧 독자라는 의미) 곧 예수의 영광이라고 말하는데 이는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의미할 것이다.(14절) 그리고 그 영광에는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다. 출애굽기에 보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영광을 보여주시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선포하시는 장면이 나타나는데(출34장 6절) 거기에 인자와 진실(은혜와 진리)이 많은 하나님이란 말이 나온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은 은혜와 진리라는 언약적 신실함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어진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다고 말한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진리가 율법으로 나타났다면 이제 구약 율법에 나타났던 은혜와 진리, 그 실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왔다는 것이다.(17절) 여기서 "우리가"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하는데(14절, 16절) 이들은 예수 안에 나타난 영광을 본 자들이고(14절) 그 영광안에 충만한 은혜와 진리를 본 자들이다.(16절) 그러므로 그들은 그 영광과 그 은혜와 진리를 증언할 책임을 가진 자들이 되었다.(15절) 누구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데 이제 그들은 아버지의 독생자, 예수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을 보게 된 것이다. (18절). 당시 유대 세계는 그리스도에 대한 기대나 그리스도에 앞서 올 것이라 믿었던 엘리야나 그 선지자에 대한 기대가 팽배했던 시대였다. 그러나 요한은 사람들의 그런 기대와는 달리 자신이 그리스도가 아니며(20절) 엘리야나 그 선지자도 아니라고 말한다.(21절) 그렇다면 왜 요한은 사람들에게 세례를 베푸는가? 이것이 바리새인들이 보낸 자의 질문이었다.(25절) 요한은 자기가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를 나타내려함이라고 말한다. 그러니까 요한의 세례는 이사야의 말대로 주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처럼 예수가 오시는 길을 준비하는 세례인 것이다.(23절) 예수에 대한 요한의 최초의 증언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이었다. 요한이 왜 예수에 대해 이런 톡특하고 암호와 같은 표현을 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말은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곧 그리스도라는 의미였다. (34절) 이는 요한이 당대의 메시아관과 매우 다른 메시아관을 가지고 있었음을 암시한다. 세례 요한이 예수를 보고 자기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어린 양'이라고 했을 때 그들이 그 말을 듣고 예수를 따랐으며(36-37절) 나중에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고 말한 것으로 보면(41절) 요한이 말한 '하나님의 어린 양'은 메시아를 가리키는 호칭인 것으로 보인다. 예수를 따르는 자들은 안드레에서 시작하여-베드로-빌립- 나타나엘로 확대되었고 그들은 모두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이스라엘의 왕, 곧 메시아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들의 메시아관은 당시 유대인들이 공유하던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메시아관였지 요한복음 1장에 선포된 바,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으로서의 메시아관을 가진 것은 아직 아니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