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12장 위선과 염려의 문제
누가복음 12장 위선과 염려의 문제
Tolle Rege/누가복음
2013-06-22 20:52:08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꾸짖으신 주님은 제자들에게 그들의 외식을 조심하라고 경계하신다. 위선이란 감추어진 것이고 숨겨진 것이지만 결국은 드러날 것이며 알려지게 될 것이다. 위선자들이 어두운데서 은밀하게 말한 것들 골방에서 귀에 대고 말한 것들이 광명한데서 들릴 것이며 지붕위에서 선파될 것이다. 주님은 위선의 뿌리는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두려워하는 것임을 지적하신다. 그래서 주님은 사람들이 두려워 주님을 부인한다면 주님도 그들을 부인할 것이라고 엄중히 경고하신다. 예수님은 이 교훈을 지금 바리새인들에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제자들에게 하고 계신다. 위선의 문제를 극복하는 길은 오직 하나 마땅히 두려워하여야 할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것 즉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함으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다.
이 때 무리 중의 한 사람이 자기 형에게 명하여 유산을 자신과 나누게 해달라고 예수님에게 청을 하였다.유대시회에서 유산을 배분하는 일에 분쟁이 일어날 경우 일반적으로 랍비들이 결정을 하였으므로 이 사람은 예수님을 랍비라 부르면서 이 일을 부탁한 것 같다. 그렌데 주님은 그가 자신을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여기는 부당함을 말씀하시며 그의 탐심을 지적하신다.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교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하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진리를 생각나게 한다. 밭에 소출이 풍성한 부자에 대한 비유는 진정한 부요는 세상의 재물을 쌓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있음을 가르친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제자들에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러므로 목숨이 음식보다 몸이 의복보다 중요하지 않느냐는 예수님의 반문은 먹고사는 문제에 대한 염려는 바로 그 당연한 사실을 모르는 것임을 지적하신 것이다. 염려는 결국 목숨의 주인이고 몸을 지으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결핍에서 나오는 것이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울 들풀인 백합도 하나님이 아름답게 가꾸시며 공중의 까마귀는 집도 없고 창고도 없지만 하나님이 기르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돌보지 않으시겠는냐라고 반문하신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며 구하는 것은 하나님을 일지 못하는 세상 백성들이 구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여야 한다. 그리하면 생존에 필요한 모든 것을 더하실 것이다. 이 대목은 분명 하나님나라를 구한 후에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주기도문의 사상을 반영한다. 그러나 이런 자들은 적은 무리들이다. 그러나 이 적은 무리들에게 하나님은 그 나라를 주시길 기뻐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를 구하는 자들의 것이며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며 염려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는 엄중한 교훈을 발견하게 된다. 결국 위선의 문제와 염려의 문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의 문제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주인을 기다리는 종의 비유는 신자의 삶이 종말론적인 삶인 것을 가르친다. 신자의 삶은 이 세상에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종말론적으로 완성되는 것이다. 주인이 언제올지 모르므로 깨어 기다리는 종말론적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 위선과 염려의 덪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던지시려는 불은 무엇이며 또 예수님이 받을 세례는 무엇인가? 예수님은 자신이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분쟁하게 하려함이고 심지어는 집안 식구들끼로도 분쟁하게 된다고 하신다. 갑작스런 이 말씀의 의미는 매우 분명치 않다. 그러나 이어지는 말에서 외식하는 자들이 천지의 기상은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는 분간하지 못한다고 책망하시는 말로 보아 이 말씀은 예수로 말미암아 도래하는 하나님나라와 관련된 말인 듯 하다. 앞에서 지적한 위선과 염려의 문제도 결국은 하나님나라에 관한 교훈이었듯이 예수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들이 새로운 하나님나라가 도래하는 것을 분간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신 듯하다. 그 나라는 불과 같이 임할 것인데 아직 그 불은 붙지 않았다. 그 불은 예수님이 받으실 세례를 통하여 붙을 것이다. 그러므로 주님은 그 불이 붙기를 간절히 고대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일단 그 불이 붙으면 세상에 화평이 아니라 분쟁이 일어날 것이다. 그 불은 화평의 불이 아니라 분쟁의 불이다. 그 불은 위선과 염려를 태우는 불이며 그 불이 붙으면 세상의 위선과 염려과 분쟁할 것이다. 그러나 위선하는 바리새인들은 천지의 기상은 분간하면서도 하나님나라의 도래는 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