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성경/누가복음

누가복음 6장 평지 설교

메르시어 2023. 4. 19. 15:22

누가복음 6장 평지 설교

Tolle Rege/누가복음

2013-06-12 23:00:48


   안식일 문제는 예수님과 유대인들간에 첨예한 이슈였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했다고 문제 삼았다.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을 안식일에 일을 한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이렇게 그들의 안식일 준수는 지극히 형식적으로 경직되어 있었다. 안식일 규례만이 아니라 다른 율법을 지키는 일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다윗이 제사장외에는 먹어서는 안되는 진설병을 먹었던 일을 말한 것은 일견 안식일 논쟁과 관련이 없는 듯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의 요지는 다윗이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이라곤  진설병밖에 없어 제사장외에는 먹어서 안되는 진설병을 먹었지만 그것이 죄가 되지 않았듯이 제자들이 굶주려서 안식일에 밀 이삭을 잘라먹은 것이 율법을 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님은 율법의 정신의 근본이 사람을 살리기 위한 것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것이 아님을 가르치신 것이다. 그리고 인자가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하신 것은 바로 예수님 자신이 율법을 만드신 주인이심을 계시하신 것이다.

 

  이후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더욱 예수를 주목하게 되었고 고발한 증거를 찾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실 때 거기 오른손 마른 사람이 있었다.  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고 있었는데 예수님은 병자를 아예 한 가운데 일으켜 세우고 그들에게 물으셨다.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것이 옳으냐는 질문이었다. 그들이 침묵하자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공공연히 병자의 손을 고쳐주셨다. 그들은 분노하였고 예수를 어떻게 처치할까를 모의하기 시작한다. 결국 여기서 보는 것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율법에 대한 맹목적인 태도는 율법의 정신은 잊어버리고 율법의 외적 행위만을 준수하려고 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위선이었다. 주님은 안식일의 정신, 즉 하나님이 안식일 계명을 주신 의도는 단순히 그 날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 날에 선을 행하고 생명을 살리는 것임을 밝히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기도하러 산으로 가사 밤이 새도록 기도하신 후 밝으매 제자들을 부르사 그 중에 열둘을 뽑아 사도로 세우셨다. 그리고 열두 사도의 이름이 거명되고 있다. 예수님이 밤을 세워 기도하신 내용을 무엇인가? 기도 후 날이 밝자 마자 제자들을 부르시고 사도들을 세우신 것을 보아서 아마도 예수님은 사도를 세우는 문제를 가지고 기도하셨을 것이다. 종교권력자들은 이제 예수를 처치할 음모를 세우고 있으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아버지께 돌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일 할 제자들을 사도로 세우는 일은 매우 중대한 일이었을 것이다. 이어지는 예수님의 평지 설교의 주된 대상은 바로 예수님이 세우신 사도들이었고 그 설교의 핵심은 결국 예수님이 기초를 놓으신 하나님나라의 일을 계승할 사도들을 위한 교훈이었다. 그래서 평지 설교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바라보면서 말씀하신 것이다.

 

    평지 설교는 가난한 자들과 부요한 자들의 날카로운 대조로 시작된다. 가난한 자들은 지금 주리고 울며 예수님으로 인하여 사람들의 미움을 받고 핍박을 받는 자들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자들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복음을 위하여 세상에서 고난을 겪는 자들을 가리킨다. 그러나 그들은 복이 있는 자들이다 왜냐하면 하나님나라는 바로 이런 자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요한 자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그들은 배부르고 웃는 자들이며 모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애통하며 울게 될 것이다. 그런데 설교는 갑자기 원수를 사랑하며 미워하는 자들을 선대하며 저주하는 자를 축복하며 모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는 명령으로 이어진다. 동일한 교훈이 길게 이어지는데 교훈의 결론은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교훈은 앞의 가난한 자와 부요한 자의 날카로운 대조와 무슨 관련이 있는 것인가? 이것은 결국 하나님나라를 소유한 가난한 자들 곧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속한 부요한 자들을 행하여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교훈하는 것이 아닐까? 이러한 태도는 분명 이 세상이 감당할 수 없고, 흉내낼 수 없는 하늘 시민의 탁월한 모습일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그들 자신의 본성으로 부터 오는 것이 아니라 하늘의 아버지의 자비하심의 반영인 것이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사랑하며 자기를 미워하는 자를 미원하는 것 이것이 세상 나라의 규칙이라면 원수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는 것은 하나님나라의 규칙인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고 용서하여야 한다. 그리고 그들에게 베풀어야 한다. 하나님은 이 모든 행위들에 대하여 넘치도록 갚아 주실 것이다.

 

  그러나 이런 교훈을 듣고 행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이어진다. 그들은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려는 것과 같고 제자가 선생보다 높이 되려는 것과 같이 어리석은 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기 눈속의 들보가 있는데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는 위선자들이다.  예수님을 제자들이 주여 주여 하면서도 주님의 교훈을 행하지 않았음을 지적하신다. 주님의 교훈을 듣고 행하는 자는 땅을 깊이 파고 반속위에 기초를 놓고 집을 지은 사람과 같다. 흥수가 나서 큰 물이 집으로 들이쳐도  그런 집은 무너지지 않는다. 그러나 듣고 행하지 않는 자는 주초 없이 흙위에 집지은 사람과 같으니 큰 물이 들이치면 곧 무너져 파괴되고 말 것이다.결국 문제는 열매이다.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알듯이 사람의 행위와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을 반영하는 것이다. 삶과 분리된 종교는 거짓임을 지적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