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5장 제자를 부르심
누가복음 5장 제자를 부르심
Tolle Rege/누가복음
2013-06-11 22:18:14
이제 예수님은 제자를 부르신다. 처음으로 부르신 제자들은 갈리리의 어부들인 베드로와 그의 동업자인 야고보 그리고 요한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부르시는 방식은 특이하다. 그들은 밤새도록 수고하였지만 고기를 잡지 못하자 이제 포기하고 그물을 씻고 있었다. 주님은 그들에게 깊은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고 권하셨다. 사실 고기잡는 전문가인 그들에게 예수님의 말씀은 받아들이기 어려운 권고였지만 베드로는 그 말씀에 순종하여 그물을 내렸고 놀랄 정도로 엄청나게 많은 고기를 잡게 되었다. 당연히 베드로와 그의 동역자인 어부들은 갈릴지 지방 여기저기를 다니시며 가르치시던 예수님에 대하여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가 베푸시던 이적도 보거나 들어서 알았을 것이다. 베드로가 예수의 무릎아래 업드려 자신이 주님을 감히 가까이 할 수 없는 죄인이라고 고백한 것으로 보아 베드로는 예수의 가르침에 별로 마음을 두지 않았는데 그런 놀라운 이적을 보고서 예수님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깊이 뉘우친 듯 하다. 주님은 그들이 이제는 고기 대신에 사람을 낚을 것이라는 이상한 말씀을 하셨고 그들은 자신들의 생업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기로 작정하였다.
나병들린 사람이 치유를 받는 사건이 일어났다. 원래 유대 사회에서 나병환자는 격리되어 사람들앞에 나올 수 없는데 이 사람은 아마 죽을 각오를 하고 예수님에게 필사적으로 나온 것 같다. 그는 예수님이라면 자기 병을 고칠 수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예수님은 일부러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며 병을 고쳐주셨다. 이렇게 예수의 소문은 더욱 퍼졌고 수많은 무리가 몰려들었다. 이어지는 중풍병자 치유사건에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 사람의 죄사함을 선포하셨다.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말을 듣고 이는 하나님을 모독하는 말이라고 간주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외에는 죄를 용서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이런 말은 분명히 자신의 신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음을 알게하시려고 의도적으로 이런 말을 하신 것이다. 이 때 예수님은 처음으로 자신을 가리켜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고 칭하셨다.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대신에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셨다. 예수님이 즐겨 쓰신 인자라는 호칭에 대하여 우리는 다음 두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 호칭은 예수님의 중보적 직분을 보여주는 것 같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의 보내신 자로서 하나님을 대표하는 직분이라면 사람의 아들은 사람을 대표하여 하나님 앞에 선 직분을 의미할 것이다.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유일한 중보자로서 주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과 함께 사람의 아들이라는 호칭을 사용하신 것 같다. 둘째는 예수님은 자신을 가리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호칭보다는 인자라는 호칭을 즐겨 사용하셨다. 성경은 예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세상에 오신 메시야라고 증거하는데 이는 예수님이 바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약속하신 메시야이심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자 곧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은 자신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후손으로 온 바로 그 메시야이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호칭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갈릴리의 어부들을 제자로 부르신데 이어 이번에는 레위라 하는 세리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당시에 유대 사회에서 세리는 로마의 앞잡이 취급을 당하여 죄인 중의 죄인으로 사람취급을 하지 않고 멸시를 하였다. 주님은 이런 세리를 제자로 부르신 것이다. 별볼일 없고 무식한 어부들이나 멸시받는 세리를 어부로 부르셔서 교만하고 잘난척하는 종교권력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레위는 기쁨으로 예수를 위하여 자기 집에서 큰 잔치를 벌렸고 그 자리에는 당연히 새리들이 많이 모였을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에게 심히 거술리는 일이었다. 건강한 자에게 의사가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듯이 주님은 자신이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신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나 사실은 위선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주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자들이다. 스스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인정하는 겸손한 자들에게 주님은 그들이 회개할 수 있는 은혜를 베푸실 것이다.
이번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왜 예수의 제자들은 금식하지 않고 먹고 마시느냐고 시비를 걸어온다. 그들은 자신들의 잣대를 가지고 사사건건이 문제를 삼으려고 한다. 에수님은 그들의 시비에 대하여 두가지 중대한 진리를 계시하여 주신다. 첫째의 혼인집 신랑의 비유를 들어 지금은 금식하며 슬퍼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기쁘고 좋은 때라는 것이며 둘째는 새 옷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고 새 포도주를 낡은 부대에 넣는 자가 없듯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적 잣대를 가지고 하나님의 새로운 구원의 경륜을 재려고 하는 것은 심히 어리석음을지적하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