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나라 연구- 오광만
2014-09-05 14:46:13
하나님의 나라 -오광만
I. 시작하는 말
최근 한국 교회에 번진 일대 유행을 들자면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관심과 그 연구라 할 수 있겠다. 이것은 불과 몇 년 사이에 부상된 흥미 거리였다. 이러한 사실은 1980년까지만 하더라도 한글로 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서적이 겨우 한두 권에 지나지 않았으나 이제는 상당수의 책들이 번역 또는 저술되었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제 개념들도 전통적인 미래 지향적 천당 사상에서 상당히 건전하게 바뀌어 가고 있음을 볼 때 더욱 확연해진다. 그래서 과거와는 달리 근자에 운위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는 단순한 어떤 ‘영역’이 아니라 성경적 개념인 ‘하나님의 왕적 통치’로 이해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대다수가 ‘하나님의 왕적 통치’에 대해 추상적으로 사유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음을 볼 때, 확실한 하나님 나라의 실재를 이해하는 경지에는 아직 이르지 못한 듯하다. 이러한 실상은 그 나라의 왕적 통치를 관념적 또는 사변적 차원에서 이해하는데 그치고 실생활 내지 전(全) 삶의 영역에서 증시하지 못하는 데서 드러난다.
또한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는 작금에 한국에 소개된 서적들의 신학적 특성을 파악하기가 어려워서 애써 읽어도 책에 담겨 있는 사상들은 간과하기 쉽다. 어느 경우는 신학 책이란 고도의 전문성을 띤 것이어서 평신도의 입장에선 읽을 엄두조차 못 낼 만큼 어려운 것이라고 속단을 내리고 아예 자신들의 희망 도서 목록에서 차치해 놓는 경향마저 지니고 있다.
이러한 추세와 상황에 직면하여 필자는 전문적으로 하나님 나라에 관한 사상을 논하기보다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서적들 - 대부분의 성도들이 서점에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 한글판 책들 - 을 간단히 분석․요약하려 한다. 아직 하나님 나라에 대한 성경적 개념에 생소하여 여러 책들을 읽을 때 의미 파악에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도움과 방향 제시가 될까 해서이다.
또한 여기서 서평할 책들은 사회 복음주의적 관점에서 본 하나님의 나라나 내세 지향주의적 천당 개념에서 고찰한 천국론을 피하기로 하고, 건전한 신학적 입장에서 성경 신학적으로 사고한 열 권의 책으로 한정하기로 하였다.
II.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개괄한 서적
하나님의 나라 연구에 있어서 서론격에 해당하는 서적을 꼽으라면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와, 근래에 갓 한국에 소개된 케리 인맨의 <신약에 나타난 천국 계시의 발전>을 들 수 있겠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나라 연구는 신약 - 그것도 특히 공관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의 가르침을 중심으로 진행되어 왔었다(주; 이에 관한 연구로서 안토니 후크마의 <개혁주의 종말론> 부록에 실린 “종말론에 관한 최근의 경향들”(pp.385-429)과 조오지 래드의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제 1장의 “종말론에 대한 논란”을 각각 참조하라).
존 브라이트의 <하나님의 나라>는 신․구약 성경 전체의 통일성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주제에 있음을 주안점을 두고 성경의 역사를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고찰하고 있다.
본서는 총 9장으로 되어 있는데 그 가운데 1~6장은 구약, 7~9장은 신약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모습을 각각 그리고 있다. 본서는 엄밀한 의미에서 신․구약의 역사라고도 불릴 만하다. 그런데 그 역사를 어떤 관점에서 관조하였는가 할 때, 저자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조망하고 있는 것이다.
본서는 또 하나의 큰 맥을 이루면서 등장하는 주제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언약’ 사상이다. 즉, 구약의 역사는 하나님과 그의 백성인 이스라엘과의 관계의 역사 - 여기에는 선택과 ‘계약’ (혹은 언약)의 요소가 개재되어 있다 - 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왕으로서 그의 백성들을 통치하시는 역사라는 것이다. 이 역사는 신정 정치를 발원으로 하여 사사, 열왕들, 선지자들 및 후기 포로에서 귀환한 백성들을 거쳐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와 교회를 통하여 나타났다고, 결국에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되는 역사이다. 저자가 하나님의 통치의 실현의 관점에서 구약 시대에 구현된 하나님의 나라를 조망하면서 제기하는 질문은 다음과 같다. 곧 “이스라엘 왕국이 하나님 나라와 동일시될 수 있겠는가?” 이에 대해 저자는 “그러한 위험성이 없지는 않았으나 실제로 그러한 사실은 없었다”(p.55)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전제로 하고 있기 때문에 저자는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왜 하나님의 백성들이 여러 차례 심판을 받고 심지어는 이방 나라에 포로로 잡혀가게 되었는지를 서술하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제2,4장).
그러나 또한 메시야가 도래하여 그 백성과의 언약을 갱신시키고 새로운 백성을 역사 속에서 정련시키리라는 메시야 대망 사상이 대두했다는 사실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이른바 선지자들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이것이었던 것이다. 제 7장은 신약 시대의 하나님 나라의 모습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때가 차매” 구약의 하나님의 백성들이 오랫동안 염원해 왔던 메시야가 임하셨고 그럼으로써 구약의 약속과 소망이 실현되었으며 현실화 되었다. 예수님은 구약이 예언해 왔던 메시야요, 인자(人子)요, 또한 유대인의 왕이었다. 그가 오심으로써 새 것이 임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는 현존하게 되었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의 원리가 있다.
제 8장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현존하게 된 천국에 사는 새로운 공동체 - 구약 이스라엘의 옛 공동체에 상응하는 - 인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그러나 이 공동체의 구성원은 세상 끝날 인자가 영광스럽게 오시기까지(제9장) 성취(fulfillment)와 극치(consummation) 사이에 사는 백성으로서 계속하여 “나라가 임하옵시며”라고 겸손히 염원하는 백성이라는 것이다. 여기에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 또한 두 시대 - 이 세대와 올 세대 - 사이의 긴장이 존재한다.
비록 개괄서이기는 하나 본서는 독자들에게 많은 통찰력을 제시할 것이다. 부분적으로 등장하는 저자 자신의 신학적 색채 - 성경 비평학적 해석이나 자유주의적 발언 등등 - 가 옥에 티이긴 하지만 성경의 전체 흐름을 왕적 통치로 조망한 훌륭한 개괄서이다.
두 번째로, 케리 인맨의 《신약에 나타난 천국 계시의 발전》은 원래 미국 정통 장로교(OPC)의 장년 주일 학교 공과용으로 저술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석 달을 주기로 공부할 수 있도록 간략히 구성되어 있으며(총13장), 각 장 마지막에는 복습할 수 있는 과제와 토론 문제가 각각 실려 있다.
Kingdom of Heaven:An Analysis of New Testament Theology 라는 제목에 나타나 있듯이 본서는 신약 성경 전체를 ‘하나님의 나라’의 관점에서 조망한 신약 신학 개론서이다.
저자의 신학적 입장이 언약 신학에 근거하고 있으므로 - 이 점에서 본서는 저자의 출신교인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신학적 냄새를 물씬 풍기고 있다 - 본서도 언약 신학적, 혹은 구속사적 입장에서 신약 성경의 가르침을 분석한 것이다. 언약 신학이란 하나님의 구원 계회의 일관성을 강조하며 신․구약의 연속성, 그리고 한 목표에로의 발전에 그 강조점을 두는 신학적 입장인데 저자는 제12장에서 세대주의와 언약 신학을 비교하여 설명함으로써 두 가지 신학 사조의 초심자들에게 방대한 사상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아량도 베풀고 있다.
제 1장에서는 성경 신학에 대한 기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면서 신약의 단계를 세례 요한의 사역, 예수님의 사역, 그리고 사도들의 사역으로 나누어 개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은 계시 역사를 세 단계 - 즉 구약 시대, 예수님의 생애 시대, 그리고 사도 시대로 각기 분류해야 함을 일컫는 것이다. 제2장은 신약 성경을 낳게 한 신․구약 중간 시대의 역사적 정황, 그중에서도 특히 그리스도 당대의 유대주의 분파들을 간략히 소개한다.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제3~6장은 공관복음서의 가르침의 핵심인 천국을 논하고 있다. 세계 요한을 포함한 구약에서 예언으로 논의되었던 축복의 때가 예수께서 오심으로써 현재화되었다. 저자는, 현재적 천국의 양상은 구원의 시대, 치유, 축복의 시대라는 특징으로 나타난다고 묘사한다. 그리고 이것이 점차 발전하여 미래의 완성된 천국으로 향하게 되고 그 극치는 심판으로써 임한다는 것이다.
제7~장은 사도들의 설교 내용을 다루면서 예수 그리스도 후 시대에 전파된 사도들의 메시지의 핵심과 계시 역사의 중심점이신 예수께서 전파한 메시지의 동질성을 논구한다. 사도들의 메시지의 핵심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였고 그리하여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는 사실이 있다. 비록 예수께서 선포하신 내용과는 다른 용어들 - 구원, 고난, 승리 등등 - 로 표현되었으나 예수의 메시지의 내용과 사도들의 메시지의 내용은 동일한 맥락에서 통일성을 유지하고 있다. 이것으로 보아서 신약 신학의 통일성과 다양성이 동시에 견지되고 있는 것이다.
제10,11장은 히브리서를 중심으로 구약과 비교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과 영원하심을 서술하고 있다. 또한 구약과 신약 교회 사이에는 유비(analogy)되는 점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기독교의 역사관도 아울러 제시하고 있다. 그것은 곧 과거 구약 시대에 대망되어 오던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으나 우리는 아직도 만물이 복종할 때를 기다리면서 “이미(already)" - 하나님 나라의 성취의 차원에서 - 와 ”아직 아니(not yet)" - 극치에 달할 하나님의 나라는 여전히 미래에 속하였다는 의미에서 - 사이의 긴장 속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약 계시의 절정이 요한계시록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천국 계시 또한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승리의 날에 있다는 점이 견지되고 있다(제13장).
본서는 신약의 핵심 메시지를 공부하기 위한 교회 학교 교재용으로 적합하게 꾸며져 있으면서도, 초심자의 신약 신학 연구 입문으로 적절하고 훌륭한 서적이다. 게다가 저자의 신학적 입장이 매우 건전하기 때문에 안심하고 읽을 만한 책으로 사료된다.
Ⅲ.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전문 서적
이 부분에서는 복음주의 신학 노선에 있으면서 하나님 나라 연구에 영향을 끼친 서적들을 다루는 동시에, 그 책들을 하나하나 개관하면서 매 책마다 두드러지게 나타난 신학적 입장을 살펴보기로 하겠다.
먼저 한국에 널리 알려진 풀러 신학교의 죠오지 엘돈 래드의 책들부터 개관해 보도록 하자.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중요한 문제들》은 래드의 비교적 초기 작품이지만 하나님 나라 연구 전반에 걸친 제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본서는 저자의 여섯 차례의 강연을 정리한 것으로, 총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장에는 초대 교회부터 지금까지의 하나님 나라 연구사를 개략적으로 다루고 있다. 그간의 하나님 나라 연구는 일방적 관점으로만 다루어졌다. 가령 하나님의 나라는 철저하게 종말론적(혹은 내세적)이든지, 아니면 가시적 교회와 동실시하여 그 나라를 현재적 통치 또는 도덕적(혹은 내재적) 실체인 것으로만 이해하려 하였다는 것이다.
제2장에는 보수주의 학자들의 하나님 나라 연구가 소개되어 있다. 여기에는 네 가지 견해가 있는데, 후천년적 해석, 전천년적 해서, 세대주의적 해석 그리고 무천년적 해석이 바로 그것이다. 저자는 전천년적 해석을 취한다. 저자는 입장은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를 의미하나, 그 통치는 ‘종말론적이며 그리스도의 재림 후 이 지상에 도래할 황금시대’ - 곧 천년 왕국 시대 - 에라야 비로소 이루어진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pp.48.49).
제3,4장에서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도래한 신약의 하나님 나라가 현재적이면서 동시에 미래적일 수가 있겠느냐는 물음을 제기한 후, 그 나라가 궁극적으로는 미래적이므로 우리는 영광스럽고 종말론적인 그 나라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고 대답한다. 저자가 이처럼 미래적인 하나님 나라에 강조를 둔 데는 하나님 나라를 구원으로서의 ‘통치’와 ‘왕의 능력’ 그리고 ‘권세’로 이해해야 한다는 저자 자신의 전제와 신학적 입장에 기인한다. 그렇다고 그는 현재성을 철저히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과의 조화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즉, 하나님 나라에 있어 왕적 통치 행사의 절정은 ‘구원’으로 나타나는 까닭에 그 나라는 ‘구원론적’이라는 결론에 도달하는데, 이것이 현재적인 의미로 이해되는 이유는, 구약의 예언적 성격과는 달리 신약 시대에는 구원을 이룩하는 장본인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간은 하나님의 ‘구원의 영역’이요 ‘축복의 영역’ 안에 지금 들어왔다는 데에 있다(p.107). 그러나 이 구원의 완성과 충만한 상태는 미래 - 즉 천년 왕국의 황금시대 - 에 있다는 것이다.
제 5,6장은 하나님 나라의 현재와 미래적인 특징 사이의 긴장을 다루면서, 특히 역사적 전천년기설을 주장하는 핵심 성구인 요한계시록 20장을 주해하는 데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래드의 두 번째 책으로서 소개할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총 9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저자의 설교와 성경 공부 시간에 행했던 강설들을 정리한 것이다. 따라서 본서는 학술적이거나 사변적이기보다는 강해적이다.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중요한 제 주제들이 다루어지고 있다. 즉, 하나님 나라의 정의(定義), 그 나라의 미래성, 현재성, 그 나라의 비밀, 생명, 의(義), 하나님 나라의 요구, 하나님 나라와 이스라엘과 교회와의 관계 그리고 그 나라의 완성의 시기 등의 주요 주제들이 포함되어 있다.
본서에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바는 시대(ages) 이해에 대한 저자의 독특한 신학적 구조이다. 저자는 오스카 쿨만과 게할더스 보스의 시대 구분을 소개한 후(pp.32,41-46), 시대에 대한 저자 자신의 의견을 밝힌다. 그는 기본적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그 이전을 이 시대(this age), 그 후를 오는 시대(age to come)로 구분한 후, 오는 시대인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천년 왕국 시대를 더 삽입하였다.(p.52). 그럼으로써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이중적 재림 - 첫째 재림과 마지막 재림 - 으로 설명하였다. 이것을 통하여 저자는 하나님의 나라가 실현되는 과정을 세 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 첫째 단계는 그리스도의 초림 혹은 부활과 더불어 시작된 하나님의 나라가 역사 가운데 개입한 사건으로서, 그리하여 인생들이 하나님 나라의 전조를 맛보게 되는(foretaste) 단계이다. 이 단계는 그리스도의 첫째 재림 때까지 계속되며 ‘교회 시대’로 불린다. 그리고 둘째 단계는 거룩한 능력과 영광스러운 하나님 나라가 발휘되는 그리스도의 첫 번째 재림을 계기로 천년 동안 영광스러운 나라를 만끽하는 ‘천년 왕국’ 시대이다. 그 후 천년이 끝나고 그리스도의 두 번째 재림과 함께 세 번째 단계가 시작되는데, 그때는 역사도 끝이 나며, 그리스도는 그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고, 마귀에 대한 최종 승리를 거두게 된다는 것이다(p.54)
제8장은 ‘하나님의 나라와 이스라엘과 교회의 관계’를 서술하고 있는데, 저자는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거룩한 구속 통치이며……거룩한 통치로 인한 축복이 경험되어지는 영역”(p.155)인 반면,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생명을 받아들이고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는 임무를 띠고 헌신하는……제자들이 나누는 친교”(p.157)라고 정의함으로써, 두 실재를 구별하고 있다. 또한 교회는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연속이 아니라, 오순절 성신 강림을 기점으로 탄생한 것이기 때문에, “교회는 하나님의 나라가 아니다”(p.158)고 결론짓는다. (*주: 이 점에 대해서는 후론할 서적《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제 11장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를 참고하면 래드의 입장을 좀 더 분명히 간취할 수 있을 것이다.)
본서에서 우리는 후론하게 될 보스와 신학적 입장이 다른 래드의 특성을 발견하게 된다. 약술하자면, 보스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적인 측면에 더 강조점을 두고, 또한 그 나라의 극치(consummation)는 한 번뿐인 그리스도의 재림에 있다고 한 반면, 래드는 미래, 그것도 천년 왕국과 최종적인 완성이라는 이중적인 미래에 강조점을 두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양자간의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에 대한 해석장의 차이로 발전된다.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래드의 사상이 집대성되어 서술된 책은 《예수와 하나님의 나라》 - 그 후 이 책은 The Presence the Future 《미래의 현존》이라는 표제로 출판되었다 - 라 할 수 있다.
본서는 총 14장으로 구분되어 있으나, 저자의 사상이 집약된 부분은 4~12장에 해당하는 제3부이다. 이곳에는 ‘약속의 성취’라는 제목하에 하나님 나라의 본질적인 것으로, 역동적 능력, 구원의 새 시대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밀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미래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현재적이 되었고 예언이 성취되었다는 것이 그 요지이다.
그런데, 래드의 다른 서적에서와는 달리 본서에서는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이 구약의 신적 임재(혹은 신의 현현적 방문-theophanic visitation)의 관점으로 조망되었다. 제2,3장에서 다루고 있는 ‘하나님의 약속’이란 곧 구약에 나타난 일련의 역사를 통하여 현시되는 통치권을 가지신 하나님의 자기 백성들을 찾으시는 행위 속에서 표출되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래드는, 죤 브라이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 나라 사상을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관계에의 신항 - 즉 언약 신학 - 을 반영하고 있다. 그리고 메시야라는 이러한 구약의 ‘하나님의 찾아오심’의 성취라는 것이다. 이러한 신약의 하나님의 나라 사상에는 통치적 요소와 미래 묵시적 질서, 인간사에서 지금 활동하는 구원의 능력, 또한 현존하여 사람들이 지금 들어가고 있는 현재적 영역 등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점에서, 지금까지 하나님 나라 연구사에서 하나님 나라의 한 가지 양상만을 뽑아내어 다른 모든 말들의 의미나 개념에 혼란을 초래했던 것과는 달리, 하나님의 통치의 다양성을 제시한 래드의 공로는 높이 평가된다.
하나님 나라의 이해에 있어 래드와 같은 노선을 취하면서도 약간 다른 양상을 제시한 이로서 여기 소개할 사람은 게할더스 보스이다. 보스는 《하나님의 나라》 - 원제는 The Teaching of Jesus concerning the kingdom of God and the Church - 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 이해에 있어 ‘통치’가 올바른 출발점인 것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통치는 “삶의 영역으로서의 왕국”인 점을 더욱 강조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나라의 구현체로서의 이스라엘과 교회를 중시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각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형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된다는 것이다.
본서는 총 11장으로 나뉘어져 있다. 제1~3장에는 하나님 나라에 관한 이해와 정의, 제4~9장에는 본서의 핵심적인 내용인 하나님 나라의 본질들 - 구원, 의, 축복 등 - , 그리고 제9~11장에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 그리고 그 나라에 들어갈 조건 등이 각각 서술되어 있다.
보스 역시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과 미래성을 강조하고 있으나 - 이에 관해서는 그의 또 다른 대표적 저서인 The Pauline Eschatology(바울의 종말론)의 두 시대에 관한 그의 논의(p.1~41)를 참조하라 - 본서는 그 중에서도 하나님 나라의 본질에 더욱 가세를 두고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나오는 모든 특권과 축복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하나님의 나라는 최소한의 영역으로서 생명의 영역으로 이해될 수 있으며, 이 영역은 각 시대마다 경험할 수 있는 가시적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영역이란 세 가지로 표출되는 바, 곧 구원하는 능력으로서의 영역(제6장), 의의 영역(제7장), 그리고 축복의 상태(제8장)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영역에 속하여 그 속성들을 향유할 수 있는 적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회개와 신앙으로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된 자라야 한다는 것이다(제10장).
그는 하나님의 나라와 교회의 관계(제9장) 역시 이러한 하나님 나라의 가시적 구현체로 설명한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추상적, 영적인 영역만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것으로서, 구약 시대에는 이스라엘로, 신약 시대에는 교회로 각각 나타났다는 것이다. 이 가르침에 따르면, 신자는 지금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말미암아 외형적, 가시적 영역으로 나타난 그 나라를 향유하고 있으며, 교회사는 이러한 하나님 나라가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역사인 것이다.
바로 여기에, 래드와는 달리, 하나님 나라와 교회의 관계를 설명한 보스의 사상의 독특성이 있다. 보스도 래드처럼 기본적으로는 교회가 하나님 나라의 “유일한 외적 표현이 아니다”는 점을 인정하기는 했으나(p.107), 그는 그 나라와 교회의 동일시에 더욱 강세를 둔다. 그것은 바로 구약의 신정 정치에서 구현되었던 여러 속성들이 신약 교회 속에서 표출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보면, “교회가 그 나라 개념과 가장 밀접히 관련되었음”이 분명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99). 특히 교회의 일원이 되는 요건에 관한한, 그것도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조건과 동일하며(요 3:3-5), 교회는 오로지 예수님의 메시야성을 인정하는 자들만으로 이루어진 단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p.97,101).
물론 보스 역시 하나님 나라의 미래성을 언급하며, 그것이 하나님 나라의 극치인 것을 인정한다. 미래의 나라에서야말로 그리스도의 초림과 더불어 도래한 현재적 실재들이 영적, 가시적 그리고 궁극적으로 실현될 것이며, 이런 점에서 종말론적 왕국이 ‘절대적 왕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그때에 나타날 속성이 동등하게 현재적인 하나님의 나라에도 나타나 있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보스에게 있어서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와 미래적 하나님의 나라는 “별개의 두 나라가 아니라 동일한 나라의 두 양상들”로 이해된다.
이 점에서 지상 교회의 존재 의의는 지대하다 할 것이다. 따라서 지상의 교회 즉 가견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특성들이 미래 불가시적 교회에만 나타나는 것들이라고 생각하여 지금 이곳에서 그 나라의 특성을 증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만일 가견교회가 불가견 교회의 특징들을 지니지 않고 또한 이에 무관심한 채로 있다면, 존재 의의는 상실될 것이기 때문이다.
래드와 보스의 저서들을 읽어 가노라면, 우리는 비단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만 아니라 교회관에 대해서도 그들의 이해가 상반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의 강조점과 신학적 관점의 상이함에 연유한 것이므로 독자가 이 점을 염두에 두고 그들의 저서들을 읽는다면 유익한 교훈을 얻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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