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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

하나님의 형상- 리챠드 L. 프렛

하나님의 형상- 리챠드 L. 프렛

2013-12-05 22:26:54


원제 : Designed for Dignity

        What GOD Has Made It Possible For You To Be 

 

 1.  균형있는 자아상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를 지으신 분의 계시로 돌아가야 한다.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인간 존재의 양면성 즉 인간의 겸손과 존귀를 강조한다.  인간은 하나님이 아니라 형상일 뿐이다. 즉 인간은 창조주를 반영하는 피조물일 뿐이다. 그리고 인간이 흙으로 지어졌다는 성경의 계시는 인간은 자기 한계를 벗어날 수 없는 유한한 피조물임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여야 한다. 그러나 인간은 형상이지만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점에서 존귀한 존재이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인간의 보편적 존엄성은 우리의 인간관에 중대한 도전을 준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면 하나님을 무시하는 것이며 우리가 부당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공격하면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 계시는 우리에게 인간 존재의 양면성 즉 겸손과 존귀를 가르쳐 준다.

 

2. 하나님은 인간에게 문화명령(cultural mandate)을 주셨는데 이 명령에는 두개의 기본 책임 즉 번성(multiplication)과 통치(dominion)가 포함되어 있다. 이 두 명령은 서로 분리된 것이 아니다. 번성은 통치를 포함하고 성공적인 통치는 번성을 요구한다. 하나님은 이 이중적 부름인 번상과 통치 개념은 인간 정신 깊은 곳에 새겨놓으셨다. 인간의 이중적 사명을 부인하는 것은 우리의 인간성을 부인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는 모든 일에서 하나님이 세상의 주인임을 선포하는 특권을 주셨다. 우리는 세상을 채우고 다스림으로써 우리 인생의 참된 목표를 이룬다. 타락한 세상에서 번성하는 것은 육체적 차원과 함께 영적 차원을 갖는다. 우리의 영적 유산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우리가 해야할 일의 중심이 되기 때문이다. 영적인 번성이 없이는 문화명령을 이땅에서 이루지 못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하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이 땅을 채우는 것이다. 우리는 복음 전파의 사명으로 문화적 사명을 이루게 된다. 인생의 모든 영역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하나님의 형상을 번성시키는일은 누구나 자기 인생의 중심에 두어야 할  영광스런 책임이다.

 

3.  번성하라는 명령에는 목적이 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이 땅을 다스리라고 명하셨다. 번성은 하나님의 종들이 세계적인 통치를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통치한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어떤 창조적인 일도 마다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의 일에 하나님의 정하신 목적이 있다는 이 관점은 오늘날 재확인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저주로 여기지만 죄가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도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일하도록 명령하셨다. 통칠하는 일은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특권이다. 우리는 동물처럼 생존하기 위하여 일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노동은 하나님이 주신 명예이며 특별한 임무이다. 일은 우리의 특권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봉사이다. 일을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골3:23-24) 고 말하였다. 우리는 이 땅을 통치함으로써 우리의 왕을 영화롭게 하도록 지음 받은 피조물이다.

 

4. 아담과 하와의 타락은 그들이 잘못된 자아상에서 비롯되었다. 인간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계시는 겸손과 존귀라는 이중적 자아상을 가르쳐 준다. 동산 나무의 모든 실과를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존귀한 존재면서 동시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고 명하신 하나님 앞에 겸손해야 할 존재였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이 두가지 자아상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 앞에 교만하였으며 그들에게 주어진 존귀를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 결과 인간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에 빠진 것이다. 역사상 모든 인간이 가지고 있는 두가지 문제점은 바로 거짓된 자아상의 문제이다. 인간은 자신의 존귀함을 모르고 스스로  무가치하게 여기거나 하나님 앞에 겸손할 줄 모르고 스스로 교만한 것이 그것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거짓된 자아상을 심어주고 죄를 부추킨다.

 

5. 그러나 인간의 타락이 인간을 짐승으로 전락시키지는 못했다. 인간은 치명적 실패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아있다. 비록 하나님의 형상이 지행하는 바른 방향으로 살지 못하지만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으로 남아있다. 그래서 인간은 여전히 이성적이고 언어학적 능력을 가지고 있으며 도덕적이고 종교적 기질을 가지고 있다. 죄는 우리 영혼의 여러 국면을 심각하게 손상시켰지만 그것을 완전히 소멸시키지는 못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은 여전히 번성과 통치를 수행하도록 요구받고 있다. 너아의 홍수후에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에게 주셨던 명령을 다시 주신다.(창9:1-2) 그러나 문제는 타락한 인간은 이 명령을 바르게 수행할 능력을 대부분 상실하였다는 점이다.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인 인간에게 무서운 저주를 선언하심으로 인간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여야 하며 인간사이의 갈들을 피할 수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인간에게 궁극적인 소망을 주셨으니 그것은  인간을 파멸로 이끈 사탄과의 싸움에서 반드시 승리를 보장한다는 약속이었다. 이 놀라운 약속은 두번째 아담으로 오신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취되었다." 지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심은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하시며(히2:14)"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 부활하시어 죽음의 권세잡은 사탄을 이기시고 승리하셨다.

 

6. 타락한 세상에는 악이 준동하며 인간을 지배하고 있다.죄는 단지 인간이 스스로 선택하여 짓는 것이 아니라 인간 영혼안에서 강력하게 활동하는 세력이다. 악의 세력을 인식하는 것은 죄의 영향을 극복하는데 필수적이다. 우리가 죄를 단순한 내적 투쟁 곧 우리 안의 도덕적 결핍정도로 생각하는 한 우리는 결코 죄를 심각하게 다루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를  타락시키고 지배하려는 사탄에 대하여 인식하여야 하며 우리 스스로 방어진지를 구축하고 반격 전력을 세워야 한다. 죄가 우리를 다스리기 전에 우리가 죄를 다스리도록 애써야 한다. 악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다. 죄가 우리를 정복하든지 우리가 죄를 정복하든지 둘 중의 하나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기 위하여 어떤 계획을 고안할 필요는 없지만 우리가 방심하는 순간 죄는 무서운 일격을 가해온다. 노아의 홍수로 인한 인간 전멸은 하나님의 놀라운 진노를 보여주지만 노아의 식구가 보존된 것이나 홍수후에 약속하신 삶의 일상적 안정은 하나님의 자비를 보여주신다. 하나님은 자기 형상의 연약함을 아시며 사람의 마음에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 부터 악함을 아신다. 그래서 자기 형상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경이 보여주는 인생의 일상적 안정은 아무리 지루할지라도 축복이다. 삶의 일상적 안정은 우리가 죄의 파괴적인 영향을 극복할 수 있는 기회이며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이다.노아의 홍수이후 하나님은 노아에게 번성과 통치를 계속할 것을 언급하심으로 인간을 지으신 목적을 다시 천명하셨다.  "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바다의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웠음이라(창9:1-2)"  하나님은 노아에게 일상적 삶의 안정을 약속하시면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그가  이루어야 할 책임을 상기시키신 것이다. 비록 세상이 타락해도 하나님은 자기의 형상으로 하여금 그 안에서 번성과 통치를 위해 일하도록 명하신다. 

 

7. 하나님의 형상으로 우리가 회복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선택하셨을 때 그에게 힘(power), 인내(patience), 견인(perseverance) 이 세가지가 필요함을 보여주셨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한 목적지에 이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힘이 있어야 한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부터 위대한 약속과 특권을 받았지만 그것을 이룰 힘이 없었다. 그는 번성하거나 통치할 힘이 없었다.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에게 힘이 필요했다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우리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우리의 목표( 번성과 통치)에 도달할 힘이 없다. 아브라함 언약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 힘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하나님은 쪼갠 고기사이로 지나가심으로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약속을 이루실 것을 보증하셨다. 이 언약을 통해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완성되기 위하서는 자신의 무능에서 눈을 떼고 하나님의 능력을 전적으로 의지해야 한다는 중대한 교훈을 얻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의 씨를 번성시키실 능력이 있으며 그에게 통치력을 부여하신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이 믿음을 요구하셨으며 아브라함을 이 믿음으로 이끌어 가신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받는다는 것을 아브라함에게서 배워야 한다.

 

8.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약 이후에 일어난 일련의 사건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모든 일을 이루시는 동안 자신은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기대한 시간에 맞추지 않으셨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정하신 때를 인내로 기다려야 했지만 그렇지 못했다. 구체적인 현실에서 믿음은 인내를 필요로 한다. 우리도 인생에서 동일한 위험을 만난다. 우리가 삶 가운데 어떤 특별한 필요에 부딪히면 우리는 인내하지 못하고 우리의 방법을 추구하게 된다. 우리의 소원을 옳을지 모르지만 우리는 잘못된 계획을 따르게 된다. 시간이 가면  하나님은 우리를 결코 속이지 않는다는 사실이 자명해진다. 하나님은 단지 자신의 시간계획에 따라 일하신다. 우리에게 인내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기 위해 필수적이다. 15장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위대한 약속을 주신 후에 17장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적 책임을 요구하신다.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창17:9)" 그들이 약속된 축복을 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신실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약속은 일방적이고 값없이 주어진 것이지만 그 약속의 성취에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인내 그리고 신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부과된 할례는 만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이 언약을 배반하면 가죽을 벤 것 처럼 베임을 당한다는 맹세의 요구인 것이다. 

 

9. 하나님께서는 자기 형상을 회복하시기 위하여 전쟁을 하도록 자기 백성을 부르신다.  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가나안 정복 전쟁을 명하셨는가?  이스라엘이 가나안에 정착하면 그들은 거기서 헤아릴 수 없는 번성을 하고 온 땅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채울 수 있으며 그 땅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으로 다스릴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형상의 두가지 책임인 번성과 통치가 실현되는 장소인 것이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구출되어 가나안을 향해 나아갔듯이 우리는 죄에서 구원을 받고 새하늘과 새 땅을 향하여 나아간다.이런 면에서 모든 그리스도인은 여호수아가 섰던 전쟁의 자리에 서 있다. 물론 우리의 전쟁은 여호수아 처럼 물리적 전쟁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영광중에 다시 오실 때까지 싸우게 되는 거룩한 영적 전쟁이다. 하나님은 모든 신자들을 이 전쟁에 참여하도록 부르셨다. 그는 위대한 약속을 주셨지만 그 약속은 싸워서 이길 준비가 된 자들에게만 해당된다. 하나님의 형상이 가진 책임인 번성과 통치를 실현하는 것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것은 오직 영적 전쟁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다. 영적 전투에 임할 때는 확실한 전략이 있어야 한다. 첫째 여호수아에게 주어진 전쟁 지침은 모세 율법이었다. 전쟁 승리의 관건은 율법에 순종하는 여부였다. 오늘날 교회안팍에는 율법에 대한 부정적 시각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의 이중목적을 주목하여야 한다. 율법은 죄인에게는 저주이지만 구원받은 신자들에게는 삶의 귀중한 지침이 된다. 율법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답게 살게 위하여 주어진 것이다. 율법이 인간에게 정죄가 되는 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에서 타락하였기 때문이다. 두번째 전쟁 지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다. 하나님은 여호수에게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여호수아가 예배와 제사와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현존을 경험하여야 할 것을 말씀한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 신자들이 영적 전투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준다. 여호수아가 성막에서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를 누린 것 처럼 우리도 기도와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누려야 한다. 행동 이전에 기도와 예배가 우리의 노력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